[기자수첩]산업은행의 애매한 HMM 매각 시점
2023-08-17 박규빈 기자
매일일보 = 박규빈 기자 | 한국산업은행이 국내 최대 해운사 HMM을 매각한다는 방침을 밝힌 시점의 전후로 점입가경의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HMM 인수 후보 기업들의 면면을 보면 대체로 자체적 역량이 부족해 보인다. 1조원대 새우들이 최소 5조원, 최대 8조원짜리 고래를 삼키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희한하게도 HMM 인수전에는 현대자동차·포스코 등 대형 원매자들은 모두 일찌감치 발을 뺐고, LX그룹·동원그룹·SM그룹·글로벌세아그룹 등 중견 그룹사들만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계열사들을 모두 동원해도 주머니 사정이 다소 궁한만큼 재무적 투자자(FI)들과 컨소시엄을 이뤄 HMM 인수를 추진할 것이라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실제 하림그룹은 오랜 기간 인연을 이어온 JKL파트너스와 손잡아 거론되는 기업들 중에 유일하게 FI를 구한 상태다. 저마다 해운업과의 연관성을 주장하며 HMM에 대해 군침을 흘리고 있는 것은 단숨에 기업 규모를 키울 수 있다는 기대 때문으로 보인다. 더 구체적인 이유는 HMM이 보유한 현금이 탐나서라고 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1년 내 현금화가 가능한 유동자산을 기준으로 HMM이 보유한 현금은 14조2809억2700만원으로 집계된다. 이는 시가총액인 8조6511억원을 한참이나 뛰어넘는다.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기업들은 높은 확률로 하나같이 인수 자금이 모자랄 경우 HMM의 곳간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대한민국 해운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좋은 길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2001년에 인수할 회사의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며 자기 자본을 거의 투입하지 않은 채 건설회사 신한을 인수했던 한 금융사의 행위가 대법원에서 배임죄로 인정되는 판례를 봤다. 또한 현금 사냥꾼에 불과한 사모펀드들이 인수전에 끼어들 경우 혈세를 들여 겨우내 살려낸 국적 최대 해운사가 벌어오는 이익이 손틈 새로 새어나가 한줌 가루가 되는 형국을 목도하게 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그런 만큼 배당만 노릴 것이 분명한 사모펀드 컨소시엄에 HMM을 넘기게 된다면 산은과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상당한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HMM 주가가 상한가를 치던 때와 비교해 조바심이 날 산은의 입장도 이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한 원매자가 나타날 때까지 입찰 시기를 기다려도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시장 개입을 최소화 하는 작은 정부 기조를 이해하고, 환영하지만 급하게 진행할 이유는 없다. 성급함은 일을 그르치는 법이다. '급할 수록 돌아가라'는 오랜 격언을 명심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