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중대재해 방지 관련법, “국회서 잠자거나 유명무실”

징벌적 손해배상에 등록말소 의무화 등 법 표류 재논의 불 붙었지만 여소야대 정국 혼란 우려도

2024-08-20     이소현 기자

매일일보 = 이소현 기자  |  건설업계 중대재해가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대다수 중대재해 원인인 불법하도급 등을 방지하기 위한 관련 법들은 국회에서 장기간 표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현장 책임자를 엄벌하자는 차원에서 지난 2022년 초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도 애매한 법규정으로 사실상 제 기능을 못하고 있어 신속한 개정 및 강화가 요구된다. 20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건설산업기본법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산업안전보건법 △주택법 △건축법 등 건설현장 안전사고 관련 책임 및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개정안 10여건이 최대 1년간 국회에서 계류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위원회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은 공중 3명 이상 또는 공중과 건설근로자를 포함해 5명 이상 사망사고를 발생시킨 경우 건설사 등록말소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또 광주를 지역구로 둔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 또한 같은 내용의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두 법안은 지난해 8월과 2월 각각 발의됐지만 현재까지 국토위 법안소위 심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불법하도급으로 인한 부실시공 때문에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원도급자 및 하도급사 모두 책임을 묻는 법안(엄태영 의원) △적정임금을 보장해 불법하도급을 막고 직접시공비율을 높이도록 유도하는 법안(송옥주 의원) △발주처가 적정한 공시 기간과 비용을 제공하도록 하고 지자체가 이를 검토하는 법안(김교흥 의원) △발주처가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 공법을 변경해 사망자가 발생한 경우 처벌하도록 하는 법안(강은미 의원) 등도 모두 관련 상임위 계류 중인 상태다. 문제는 거듭된 여야 정쟁으로 향후에도 처리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최근 무량판 구조 단지 부실시공 및 잇따른 건설현장 근로자 사망사고로 재논의 조짐이 일고는 있지만 여야의 정치공방 소재로 활용되면서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연말부터 본격적으로 총선 국면이 시작되면 해당 법안들의 처리가 후순위로 밀려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건설현장 사고 책임자 처벌 강화를 내용으로 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시행 1년이 지났으나, 결과적으로 사고 감소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법은 사고 책임자 처벌 만 명시하고 있을 뿐 회사 오너나 원청에 책임을 문다는 조항은 찾아볼 수 없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대형사들은 조직개편을 통해 최고안전책임자(CSO) 등을 별도로 두는 방법으로 꼬리자르기를 하든지, 막대한 자금력으로 관련 법률자문을 따뤄 둬 법망을 빠져나가는 게 일상이 됐다"라고 말했다. 최근 무량판 구조 아파트 부실 사태로 중대재해처벌법 맹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는 있으나, 이 또한 이뤄지기 힘든 실정이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 측은 중대재해처벌법을 '킬러 규제'로 지목하며 오히려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야당과 노동계는 근로자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며 여권 개정안을 적극 반대하고 있다. 국회 계류 중인 중대재해 방지 법들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처벌 수위가 높아질 경우 사고 예방에 힘쓰기보다 책임 면피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부작용이 지적된다. 또 안전은 결국 비용의 문제임에도 이같은 논의는 함께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최수영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실장은 "최소한의 규제는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규제와 처벌 중심의 한계는 분명하다"면서 "최선은 처벌에 앞서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규제가 최근 다양하게 강화돼 사업장에 투입되는 비용은 늘 수밖에 없다"면서 "이로 인해 안전 관련 연구 개발에 쓰일 투자금이 줄어드는 점도 문제"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