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청탁금지법 입법 취지마저 금지될라
2023-08-21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매일일보 |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공직사회의 청렴성을 높이기 위해 한 법으로 약칭 ‘청탁금지법’이라고 하고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발의해 ‘김영란법’으로도 불린다.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 청탁과 이들의 부당한 금품 수수를 규제해 공정한 직무 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취지로 2015년 3월 27일 제정해 2016년 9월 28일부터 시행해 오고 있다. 이 법은 제1조 목정이 규정하듯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 청탁 및 공직자 등의 금품 등의 수수(收受)를 금지함으로써 공직자 등의 공정한 직무 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하고 있다.
2010년 10월 부장판사 출신 최 아무개 변호사가 내연관계의 이 아무개 여검사에게 선물로 벤츠(S350) 리스 요금을 내주고 샤넬 핸드백 등을 사주며 법무법인(로펌)의 신용카드를 제공면서 청탁을 했다가 들통났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일명 ‘벤츠 여검사’ 사건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5년 3월 12일 최 변호사와 이 검사는 연인 관계이므로 무죄라는 판결을 내렸다. 둘 사이에 오간 것이 ‘사랑의 징표’일 뿐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1심은 “내연관계에 있는 변호사로부터 청탁과 함께 알선의 대가를 받아 죄질이 매우 나쁘다.”라며 징역 3년 및 추징금 4,462만 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에선 “주임 검사에게 전화를 건 것은 내연남을 위해 호의로 한 것이지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은 아니다.”라며 “벤츠 승용차 외 이 전 검사가 받은 샤넬 백, 최 변호사의 신용카드 사용 등도 사건 청탁 시기와 경위 등에 비춰 보면 청탁과 관련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라고 벤츠 여검사의 무죄를 판결했다. 이렇게 대법원의 벤츠 여검사 무죄 확정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벤츠 여검사 무죄 확정에 대해 “왜죠”, “이럴 수가”. “충격적이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네티즌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당시의 현행법의 이러한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이른바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다. 2016년 7월 28일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까지 받아 가며 시행된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은 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으로 상한선을 정했지만, 시행 초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당초 공무원과 공직 유관 단체, 공공기관 임직원만 대상으로 하려던 것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교사, 언론사 임직원까지 확대됐다. 이들의 배우자까지 포함하면 무려 400여만 명이 대상이다. 정작 국회의원은 쏙 빠졌다.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은 부정청탁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공직자와 언론인 등에게 허용되는 식사비와 경조사비, 선물 가액 등의 범위를 규정한 법으로 명절만 되면 단골 메뉴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른다. 물론 공직자 및 공직 후보자의 재산등록, 등록재산 공개 및 재산형성 과정 소명과 공직을 이용한 재산취득의 규제, 공직자의 선물 신고 및 주식백지신탁, 퇴직공직자의 취업제한 및 행위제한 등을 규정함으로써 공직자의 부정한 재산 증식을 방지하고, 공무집행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등 공익과 사익의 이해충돌을 방지하여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가져야 할 공직자의 윤리를 확립함을 목적으로 제정한 「공직자윤리법」과 공직자의 직무 수행과 관련한 사적 이익 추구를 금지함으로써 공직자의 직무 수행 중 발생할 수 있는 이해충돌을 방지하여 공정한 직무 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정한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과 더불어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 「경찰공무원법」, 「소방공무원법」, 「교육공무원법」, 「외무공무원법」 등에서 규정한 청렴의 의무, 품위 유지의 의무, 영리 업무 및 겸직 금지 등의 보충적 보완 법령으로 밝고 맑고 투명한 공직사회 구현 및 이를 구체화하고 강제하기 위한 근거 법령으로 순기능을 다해온 것도 사실이다.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은 법 제정 1년 만인 2018년 설날을 앞두고 2017년 12월 시행령 개정으로 선물 가격 상한액(5만 원)이 농축수산품에 한해 농·축·수산물 선물 가액을 10만 원으로 올렸다. 한우·화훼업 매출 하락이 심각하다는 이유에서였다. 2021년에는 설날·추석 기간 가액을 2배로 상향했다. 2022년 설날 직전부터 ‘명절 전 24일부터 명절 후 5일까지’는 20만 원 선물도 가능해졌다. 선물 품목에 따른 가격 상한액은 물론, 날짜에 따른 가격 상한액까지 법이 정한 기준에 따라야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현행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은 제8조(금품 등의 수수 금지)에서 공직자 등은 직무 관련 여부 및 기부ㆍ후원ㆍ증여 등 그명목에 관계 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 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아니 된다. 또한 시행령 제17조(사교ㆍ의례 등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ㆍ경조사비 등의 가액 범위 등) 제1항과 별표 1에서 음식물(제공자와 공직자 등이 함께하는 식사, 다과, 주류, 음료, 그밖에 이에 준하는 것)은 3만 원, 경조사비(축의금ㆍ조의금)는 5만 원(화환ㆍ조화는 10만 원), 선물(금전, 유가증권, 음식물 및 경조사비를 제외한 일체의 물품, 그밖에 이에 준하는 것)은 5만 원. 다만, 농수산물 및 농수산가공품은 10만 원(설·추석 명절 기간에는 20만 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관련 업계의 어려움을 덜어주겠다는 명분을 내걸었으나 법의 취지에는 역행한다는 지적은 지금도 여전히 강하다. 농수산물 및 농수산가공품 선물은 기존 10만 원에서 15만 원으로, 명절 선물은 2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높이자는 것인데, 특히 수해와 폭염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수축산 업계에는 당연히 도움이 될 것이다. 물품으로만 가능했던 선물 범위가 공연 관람권과 모바일 쿠폰으로 확대되는 것도 문화예술 업계는 당연히 반길 것이다. 식사비 상한 3만 원과 축의금과 조의금 상한 5만 원도 마찬가지다. 법 제정 당시인 2016년 95.46이었던 생활물가지수(CPI for living necessaries)는 올해 7월 112.96으로 무려 18%나 상승했지만, 식사비와 경조사비는 7년째 그대로다. 물가는 뛰었는데, 법은 그대로인 탓에 식사비 한도와 경조사비를 어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요즘 누가 경조사비를 5만 원만 내느냐”는 푸념도 쏟아진다. 누군가 신고하지 않으면 걸릴 일이 없다는 점에서 무용론도 제기된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은 251만여 명에 이르지만 지난해 제재 처분을 받은 공직자는 416명에 불과했다. 2021년 제재 처분을 받은 공직자는 321명에 불과했다. 위반 신고 건수도 2018년 4,386건에서 2020년 이후 연간 1,000건 대 수준으로 급감했다.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법을 만들어놓고,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 뿐만 아니라 사문화되고,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을 받아온 지 오래다. 게다가 명절 때만 되면 선물 가격 상한을 높이거나 품목을 추가하는 것은 생색내기용 미봉책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비용 낭비이기도 하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도 기대하지 않고 오로지 사심 없는 순수한 마음으로 10만 원·20만 원 상당의 선물을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는지 의문일 뿐만 아니라 농수산물 선물이 청탁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한 제한이 금품수수 등을 금지하기 위한 제도임은 분명 하지만 오히려 상한을 정해 놓음으로써 상한 범위 내에서 금품수수 등을 하라는 금품수수 권유법이나 장려법으로 본말이 전도될 우려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지난 8월 18일 농·축·수산물 선물 가액을 15만 원으로 더 높이는 내용의 시행령 개정에 합의했다. 이번에도 관련 업계 지원 필요성을 내세웠지만 꺼림칙하기는 마찬가지다. 공직사회 등의 청렴성과 직무 공정성을 해칠 수도 있는 이런 수단 말고는 마땅한 지원책이 없는 것인지 의문이 앞선다. 이제는 성숙한 국민 의식 수준도 기대를 해 볼 필요가 있다. 의당 더 많은 도덕성과 더 큰 윤리 덕목이 필요한 일이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