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안전마저 무너진 불안한 한국 사회 이대론 안 된다
2024-08-23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매일일보 | 잇단 ‘묻지마 칼부림’ 사건 연발에 따른 경찰의 대대적인 ‘특별치안활동’ 기간 중인 지난 8월 17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공원 인근 둘레길에서 대낮 성폭행 살인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30대 남성인 최 아무개는 금속 너클((Knuckle)을 양손에 끼고 일면식도 없는 30대 여성 피해자를 폭행·성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의 잔혹함에 치가 떨린다. 이튿날인 18일에는 대전 시내 신협에 헬멧을 쓴 남성이 소화기를 뿌리며 침입해 은행 직원을 흉기로 위협하고 3,900만 원을 빼앗은 뒤 오토바이를 타고 달아났다. 19일에는 50대 남성이 서울지하철 2호선 열차 안에서 쇠붙이 공구로 승객 2명의 얼굴을 공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대낮에 도시 곳곳에서 흉악범죄가 잇따라 발생해 시민 불안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이 속출한 번화가뿐 아니라 공원·지하철 등 일상 곳곳에서 안전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의 참담함이 도를 넘어 극에 달한다. 현장에서 붙잡힌 범인 최 아무개는 4개월 전 범행 목적으로 금속 재질의 너클을 구입했고 현장에 폐쇄회로(CC)TV가 없는 사실까지 미리 파악했다고 한다. 지난달 21일에는 30대 남성이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다”라는 이유로 전철역 부근을 지나던 행인들을 무차별 공격했고, 이달 2일 저녁 8시 10분쯤에는 강남구 압구정역 인근에서 향정신성의약품에 취한 운전자가 5억 원에 달하는 롤스로이스 차량을 운전하던 중 인도로 돌진해 길을 걷던 20대 여성이 뇌사 상태에 빠졌으며, 이달 3일 오후 5시 58분쯤에는 퇴근길 백화점에서 20대 남성이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렀고, 지난 4일 오전 10시쯤에는 대전시 대덕구 한 고등학교 2층 교무실에서 이 학교 40대 교사가 20대로 추정되는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찔렸다. 이쯤 되면 세계 최고 수준의 치안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맞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치안 상황이 이렇게 엄중하다 보니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8월 4일 긴급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국민 불안이 해소될 때까지 흉악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한다.”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인파가 밀집하는 광장이나 지하철역, 백화점 등을 중점으로 전국에 247개 장소를 선정, 경찰관 1만 2,000여 명을 배치하고, 전국 15개 시·도 경찰청에 소총과 권총으로 이중 무장한 경찰특공대 전술요원(SWAT) 127명도 배치,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하면 신속 대응할 방침이다. 또 검문검색은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현장 경찰관이 매뉴얼에 따라 필요 최소한 범위로 실시하고, 실제 흉기난동 범죄가 발생하면 총기나 테이저건 등 경찰 물리력을 적극 활용키로 했다. 그러나 보란 듯이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이 속출하고 있다. 중무장한 경찰특공대와 장갑차를 동원하고 엄벌주의를 내세우는 등 ‘보여주기’식 대책만으로는 흉악범죄를 예방하고 근절하는 데 한계가 있음이 드러난 셈이다. 사각지대 없이 일상의 치안을 강화할 실효성 있는 대책이 조속히 마련되고 서둘러 실행되어야 한다. 이번 강간살인 혐의로 지난 19일 구속된 최 아무개는 치안 상황의 빈틈을 노렸다. 순찰이 집중된 곳이 아니라 폐쇄회로(CC)TV가 없는 곳을 물색해 범행 장소로 택했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치안연)는 최근 ‘CCTV 및 Geo Pros(지리적 프로파일링)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선진국 사례연구’를 진행해 CCTV를 설치한 지역은 미설치 지역보다 범죄율이 평균 16%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실제로 골목의 조명을 밝게 바꿨더니 범죄율이 뚝 떨어졌다는 보고는 이를 방증하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공원·골목길 등에 CCTV와 조명을 촘촘히 배치해 범죄 사각지대를 최소화해야 한다. 좁고 어두운 골목길, 낡고 칙칙한 담장, 방치된 공터 등 범죄 취약 지역의 디자인을 개선해 범행 기회를 심리적·물리적으로 차단하고 지역 주민에게 심리적 안전감을 주는 범죄 예방 환경 디자인(CEPTED │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을 이용한‘범죄 예방 환경 조성사업’도 눈여겨보고 적극적으로 추진해 볼 필요가 있다. 또 최 아무개는 손가락에 끼는 금속제 무기인 ‘너클’을 4개월 전에 구입해 소지하고 다니다 범행에 사용했다. 너클을 낀 채 피해자가 사망에 이를 정도로 폭행을 가한 것이다. 이처럼 살상력이 강한 무기가 국내법상 호신용품으로 분류돼 구매·소지에 제한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영국과 미국 일부 주는 너클을 치명적 무기로 간주해 소지·판매를 규제하고 있다. 너클의 판매·휴대를 규제하는 방안도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최아무개는 사회와 단절된 이른바 ‘은둔형 외톨이’였다. ‘은둔형 외톨이’는 “6개월 이상 사회에서 고립된 채 혼자 지내며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데 부모와 함께 거주는 했지만, 일정한 직업 없이 집 근처 PC방 여러 곳에서 하루에 많게는 6시간 넘게 게임을 했고, 이 중 한 곳에선 약 2년 동안 570시간 넘게 게임을 했다고 한다. 친구로 추정되는 인물과 통화한 기록은 드물고, 통화 기록 거의 전부가 음식점에서 배달을 시켜 먹은 것이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우리 사회 은둔 청년이 2021년 기준 53만 8,000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했다. 2019년 33만 4,000명에서 코로나를 거치며 20만 명이나 늘었다고 한다. ‘은둔형 외톨이’를 잠재적 범죄자라고 볼 수는 없다. 왜냐면 ‘은둔형 외톨이’는 취업 실패, 학업 중단 등으로 다양한 형태를 보이기 때문에 이들을 모두 흉악범죄와 결부시켜 낙인찍어선 안 된다. 사회적 시선이 힘들어 숨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사회적 우려에 그치고 범죄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 큰 문제인 것만은 분명하다.게다가 사회적 고립이 길어지면 정신 건강이 악화되고 사이코패스 성향을 강화시켜 ‘성폭행 사건’이나 ‘정유정 사건’처럼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 전체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부족한 현장 치안 인력 문제도 조속히 해소해야만 한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현재 경찰의 인력구조는 매우 기형적이다. 팔다리는 부실한데 반해 머리만 큰 구조다. 지구대에서 치안을 담당하는 순경은 정원의 절반이 결원인데, 반면 고위직인 경감은 정원의 두 배가 넘는다. 물론 하위직 처우개선의 일환으로 근속승진제도 도입이 주원인이긴 하지만 조직을 떠나는 젊은 경찰이 늘어나면서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경찰 인력난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의무경찰 제도가 폐지되면서 현장 인력 부족 현상이 가중된 측면도 있다. 의무경찰 제도를 폐지했으나 새로 뽑는 경찰관 수는 기존 의무경찰 규모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무엇보다도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무차별 살상 범죄가 속출하면서 시민들은 안전 불안은 물론 ‘치안 부재’ 상황에 좌절하고 심지어 패닉(Panic) 현상까지 느끼고 있다.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라는 기본으로 돌아와 치안 인력을 보강하고 장비를 확충하는 등 약화일로(虚化一路)를 치닿는 위기의 치안 인프라를 강화할 때 ‘치안 청정국’의 위상도 되찾을 수 있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따라서 정부는 ‘특별치안활동’에도 흉악범죄가 끊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현실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냉철히 진단하고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이번 경찰의 ‘특별치안활동’은‘무기한’이라고 하지만 결단코 ‘무기한’이 될 수 없다는 것도 너무나도 자명한 현실이다. 지금은 범죄 예방을 위한 실효성 있는 방법을 찾아 고민하고 실행으로 옮길 할 때이다. 순찰 취약지대나 단속의 사각지대를 철저히 점검해 치안 공백을 메우고, 호신용품이 범행 도구로 악용되지 않도록 하는 등 법과 제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은둔형 외톨이’ 청소년을 보호·지원하는 제도와 시스템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시민들이 외출하기 두렵다고 하소연하는 상황이 장기화할수록 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덩달아 붕괴할 우려는 더욱 가속화되고 더욱 가중된다. 안전마저 무너진 불안한 한국 사회 이대론 안 된다. 국민이 안전한 안심 사회가 그립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