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우량 은행채’ 범람에 채권시장 경색…이자 올려도 회사채 안 팔려
은행채 이달 들어 순발행 전환, 은행 기업대출 창구도 활기 대내외 악재로 안전자산 몰려…“은행채, 한전채보다 인기”
2024-08-28 김경렬 기자
매일일보 = 김경렬 기자 | 회사채 시장의 ‘돈맥경화’가 우려된다. 초우량 은행채가 넘쳐나는 반면, 회사채 발행시장은 싸늘하다. 심지어 이자를 올린 회사채도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는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전문가들은 “대내외적으로 불경기가 이어지고 있어 당분간 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산을 찾게 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28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기업의 직접금융 조달실적’에 따르면 7월 회사채 발행 규모는 15조4282억원을 기록했다. 전월 대비 34.4% 줄어든 수준이다. 일반 회사채는 2조740억원으로 전월 대비 41.4% 감소했고, 금융채는 12조1910억원으로 전월 대비 27.5% 줄었다. 단기사채 발행 규모 역시 58조8749억원으로 전월 대비 18.1% 축소했다. 은행채는 불었다. 이날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은행채는 이달초부터 28일까지 1조4100억원의 순발행을 기록했다. 은행채 순발행은 5월(9595억원 순발행) 이후 석 달 만이다. 은행채는 올들어 1월 4조7100억원 순상환 △2월 4조5100억원 순상환 △3월 7조410억원 순상환 △4월 2조6000억원 순상환 △6월 1조5005억원 순상환 △7월 4조6711억원 순상환 등 대체로 상환이 많았는데 돌연 발행이 늘었다. 은행 대출을 찾는 기업들도 늘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대기업의 은행 대출 잔액은 올해 들어 7월까지 20조3000억원 불었다. 월별 잔액 증가분은 1분기 평균 2조5000억원에서 2분기 평균 3조2000억원으로 증가했다. 기업 자금 조달 창구로 은행이 활용된 데는 대내외 불경기로 인한 고금리 상황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회사채 지표 금리인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올해 5월 하순부터 우상향하기 시작했다. 이달 25일 기준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연 3.789%를 기록했다. 특히 은행채뿐만 아니라 은행 대출 창구까지 분주했던 이유는 기업들이 2~3년짜리 회사채를 발행하는 것보다 은행에서 단기자금을 융통해 시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려 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업계에서는 “통상 여름 휴가철까지는 회사채 비수기고, 이달 중순까지는 반기보고서 제출 기간으로 회사채 발행이 줄어들어 9월부터는 발행량이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9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에 따라 시중 금리가 낮아질 수 있어, 국고채 3년물 금리가 안정되기 전까지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에 큰 관심을 갖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8월 들어 회사채 수요예측은 뜸하다. 최근 동원F&B가 회사채 공모에 나서 1550억원 자금을 조달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발행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 계절적인 비수기를 감안하고도 회사채 발행시장이 위축된 것은 시장에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부동산 PF 등 악재가 주변국의 상황을 흔들고 있다는 소식이 불안감을 키운다. 중국 내 회사채의 디폴트(채무불이행)는 올 초 이래 최고 수준이다. 최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의 채권 발행업체들은 지난 6월과 7월에 총 75억위안(1조4000억원)을 갚지 못했다. 디폴트 위기 사태를 촉발한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은 만기 연장을 모색하고 있다. 월가의 국제 중개회사인 제프리스 파이낸셜 그룹은 비구이위안 주식 등급을 ‘매수’에서 ‘보유’로 강등했다. 부동산 시장 침체와 지방 정부의 재정적 압박으로 인한 투자 심리가 ‘급전직하’ 하면서 회사채 시장에 위기가 불어 닥친 셈이다. 복합적인 요인이 맞물린 가운데 투자자들은 안전한 곳을 찾아 자금을 돌리는 분위기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실물 경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미국 장기 국고채 영향을 받아 시장금리는 오르고 있다”며 “국내 기준금리 자체가 변동이 없기 때문에 영향은 어느 시점부터 안정을 찾을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은 안전 자산 쪽으로 선회하는 모습이 뚜렷하다. 은행채는 안정적이고, 일반 채권에 비해 금리도 높아 매력적인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당국은 작년 하반기 회사채 시장의 숨통을 틔우기 위해 연일 대책을 쏟아냈다. 당시 초우량 채권인 한전채로 수요가 몰리면서 시장을 압박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한전은 원가가 높다보니 상황이 계속 좋지 않다. 원전 가격이 오르다보니 수익구조는 계속 부담된다. 이 경우 투자자들이 한전채가 은행채보다 안전하다고 확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며 “올해는 경기 불확실성이 뚜렷해 상대적으로 안전해 보이는 은행채로 수요가 몰릴 전망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