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나라살림 예산 657조…2년 연속 허리띠 바짝 졸라 맸다
국무회의서 '2024년도 예산안' 의결…23조원 대규모 구조조정 작년 대비 2.8% 늘어…2005년 이후 역대 최저 증가율 추경호 "누적 국가채무 1000조원, 세수 상황 녹록치 않아"
2024-08-29 문장원 기자
매일일보 = 문장원 기자 | 정부가 내년도 나라 살림 예산을 지난해 본예산 대비 2.8% 증가한 656조 9000억원으로 편성했다. 2005년 이후 역대 최저 지출 증가율로 경제 부진과 감세 정책에 따른 세수 부족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1000조원 이상 누적된 국가채무로 재정 상황도 허리띠를 졸라매게 한 요인이라는 지적과 함께 지나친 긴축 기조가 오히려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2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러한 내용의 '2024년도 예산안' 및 '2023~2027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의결했다. 내년 예산안의 총지출 규모는 2023년 638조 7000억원에서 2.8% 늘어난 656조 9000억원으로, 지출 증가율은 지난해 5.1%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재정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로 20년 만의 최소 증가 폭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의 재정 확대 정책으로 1000조원 이상 누적된 국가채무 탓에 어려워진 재정 상황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예산안 발표에 앞서 진행된 브리핑에서 "윤석열 정부는 첫 예산인 2023년 예산을 건전재정 기조로 전면 전환했지만 그동안 확대된 재정수지 적자폭과 1000조원 이상 누적된 국가채무로 우리 재정 상황은 여전히 어려운 가운데 금년과 내년의 세수 상황도 녹록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 정부의 대대적인 감세 정책과 경기 악화에 따른 역대급 '세수 펑크' 여파가 결정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총수입이 줄었기 때문에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년도 총수입은 지난해 대비 2.2% 줄어든 612조1000억원으로 국세 수입은 전년 대비 33조 1000억원이나 쪼그라들었다. 법인세 역시 2023년 예산안 대비 27조 3000억원 줄고, 소득세와 부가가치세도 각각 6조원, 1조 8000억원 덜 걷힐 것으로 전망된다. 자산시장 침체가 이어지면서 양도소득세도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 부진→세수 감소→긴축 재정→경기 회복 둔화'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법인세와 종합부동산세 감세로만 올해 6조4000억원, 내년 7조 3000억원 등이 줄어든다. 씀씀이를 줄이면서도 모든 재정사업의 타당성과 효과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23조원 규모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지난해에는 역대 최대인 24조원에 이어 2년 연속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한 바 있다. 정부는 2년 연속 20조원대 구조조정을 통해 확보한 예산으로 약자 복지 강화와 미래 준비 투자, 경제활력 제고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 국가의 본질 기능 뒷받침 등 4대 중점 분야 투자를 늘렸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는 내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받는 생계급여를 4인 가구 기준 13.2% 늘렸다. 현재 월 162만원에서 183만 4000원까지 증가한다. 또 지원 대상을 3만9000가구 확대한다. 노인 일자리는 내년 103만개로 올해 대비 14만7000개 늘리고, 여러 금융기관에서 빚을 진 소득 하위 30% 미만 자영업자 1만명의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갈아탈 수 있게 5000억원을 신규 지원한다. 부부 합산 소득이 연 1억3000만원 이하인 출산 2년 이내 가구에는 저금리 주택 구매·전세자금 대출을 지원하고 공공 분양·임대주택 우선 공급을 함께 추진한다. 육아휴직 급여를 받는 유급 지원 기간은 기존 12개월에서 18개월로 연장하고, 대중교통비를 20∼53% 할인해 주는 'K 패스'를 내년 하반기에 출시한다. 추 부총리는 20조원대 지출 구조조정에 대해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이번엔 '제로 베이스'에서 봤다"며 "2.8% 지출 증가율로 확보한 18조원, 지출 구조조정으로 확보한 23조원 등 총 41조원을 민생 안정과 국민 안전 등에 재투자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흔히 말하는 보수정권이 하기 쉽지 않은 약자 복지에 파격적으로 많은 예산을 넣었다"며 "전반적인 틀과 구조를 바꾸고 관행을 타파하고 총량 결단도 내리면서 통상적인 예산편성의 접근과는 달랐다"고 했다. 부처 예산에서는 폐지론이 나온 통일부와 여성가족부의 희비가 엇갈렸다. 내년도 통일부 예산은 올해 예산보다 22.7%(3271억원) 줄어들었다. 감소 폭은 최근 10년간 가장 크다. 남북 관계 경색 국면 속에서 예산안 총액의 80%가량을 차지하는 남북협력기금 중 '개성공단 등 남북경제협력' 예산이 4550억원에서 2620억원으로 42.3% 감소했다. 남북 대화·교류·협력 조직을 해체 수준으로 대폭 통폐합하는 조직 개편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여가부의 내년 예산 규모는 1조 7153억원으로 올해 1조 5678억원보다 9.4% 증가했다. 2023 새만금 세계 잼버리 대회 파행의 여파로 청소년 정책 분야에서 6.9%가 삭감됐지만, 사회적 약자 보호 및 저출산 대응 예산과 성폭력, 가정폭력, 스토킹 등 폭력 피해자 지원 및 위기청소년 지원 예산 등이 집중적으로 편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