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분법적 사고가 대한민국 건설업 망쳐

2024-08-29     안광석 기자
안광석

매일일보 = 안광석 기자  |  유년 시절 시골에서 생활하면서 어르신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지’였다. 정보가 발달한 지금이야 이런 말을 쓰는 경우가 드물고, ‘확실한 것을 선호한다’는 과학적인 통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확실한 것은 필자가 겪은 대부분의 한국인은 어중간함을 싫어한다.

정치권에서는 모든 것이 보수 아니면 진보로 귀결된다. 직장에서는 과정보다는 ‘된다 혹은 안 된다’가 바쁘신 상사들에 먹히고, 우리 언론인은 미괄식보다는 두괄식을 사랑한다. 심지어 연예를 할 때도 좋아한다면 고백이지 소위 ‘밀당’은 본인 일이 아니어도 답답하다. 무량판 구조 아파트 주차장이 무너진 지 4개월이다. 이번 사고는 무량판 구조 자체 문제가 아닌 설계·시공·감리·인력 등 구조적 문제임이 드러났음에도 여전히 무량판 구조 건물은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 건설업자들이나 조합들은 무량판 구조 건물에 대한 신규계약을 꺼리고, 인터넷 까페에는 블랙리스트라고 하여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단지 명단이 돌아다닌다. 과거 삼풍백화점이나 지난해 1월 광주 신축아파트가 무너진 것도 건물설계가 아닌 감리 소홀이나 부실양생 등으로 유발된 인재(人災)였다는 학습효과에도 말이다. 물론 ‘무량판 구조=부실건물’ 공식을 부추긴 것은 전수조사 대상을 굳이 무량판으로 특정 지은 정부다. 동시에 무량판 구조는 유럽 등 선진국에서 보편화됐고, 국내 대부분의 아파트단지에서 채택하고 있는 벽식구조보다는 한 단계 더 안전한 공법임을 강조하는 과정도 소홀했다. 무량판 구조를 무조건 배척하는 풍토가 위험한 것은 앞으로도 자주 만나야 할 사이라는 점이다. 이번 사태로 무량판 구조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은 윗단계 공법인 ‘라멘식 구조’다. 확실히 다른 공법보다 튼튼하고, 오래 가고, 친환경적이기까지 하다. 더욱이 이미 널리 알려진 공법이다. 그럼에도 선진국과 달리 국내에서 환영받지 못했거나 앞으로도 그럴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다. 라멘식 구조는 다른 공법 대비 공사비가 최대 5% 이상 더 든다. 결국은 분양가가 비싸진다는 의미인데 분양 타겟층은 주택 구입 시 대출이 필요 없는 상위 5% 부자들로 좁아진다. 라멘식 구조 적용 건물이 대부분 고급단지라는 점인 것도 이 때문이다. 동시에 오래 가는 라멘식 구조 건물 특성상 재건축이 필요 없다. 정비사업으로 짭짤한 수익을 내온 국내 건설사들로서는 라멘식 구조 설계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벽식 구조는 시공비용이 싸지만 소음 등 불편함이 많아 지양되고 있는 방식이다. 결국 라멘식 구조보다 비용이 덜 들고 공간활용도가 좋아 재건축이나 리모델링하기도 편한 무량판식이 양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불호’가 압도적일지라도 무량판 구조가 한국인의 메인 러닝메이트가 될 수밖에 없다면 해답도 간단하다. 부실시공을 안 하면 되고, 불법하도급 등을 없애고 원청 책임을 강화하고 감리·감독을 강화하는 등 원인을 제거하면 된다. 하지만 그게 어렵다. 관련법과 제도를 손질해야 할 정치권부터 이분법적 사고에 빠져 있다. 부실공사가 전·현 정권 탓이라며 관련 법안 처리를 않는 여야는 둘째치자. 윤석열 대통령부터 인천 검단 사태 이후 정부 출범 전 설계 오류나 부실시공, 부실 감리가 횡행했다고 운을 띄웠다. 어떤 정책을 펼쳐도 매카시즘에 눈이 멀어 부실시공의 본질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주기 십상인 상황이다. 이념적인 문제와는 거리가 멀지만 부실시공에 대한 전 정권 탓은 과거에도 있었다. YS도 90년대 집권 시절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것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급한 개발로 부실시공이 횡행했었는데 어쩌라는 식이었다. 시스템적 측면에서 부실시공에 대한 해답은 거의 매년 반복된 시행착오로 뻔히 나와 있다. 남은 것은 우리네 몸 속 이분법적 DNA를 제거하는 것 뿐인데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