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재앙 수준 비혼·저출산 위기, 비혼 동거·출산 포용 진지한 검토를
2024-08-30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매일일보 |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청년 비중이 10년 전보다 20%포인트 이상 감소한 36.4%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결혼자금 부족’과 ‘고용 상태 불안정’ 등 경제적 이유가 압도적이었다. 게 다가 결혼을 한다 해도 아이를 낳을 필요가 없다는 청년이 무려 53.5%에 달했다. 결국 청년 10명 중 3.64명가량만 결혼을 원하고 5.35명이 출산을 기피하고 있는 셈이다.
이대로라면 획기적 저출산 대책이 없는 한 반전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주목할 건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다는 ‘비혼 동거’에 대해서는 80.9%가 동의했고,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출산할 수 있다는 ‘비혼 출산’에 39.6%가 답했다는 점이다. 결국 ‘비혼 동거’와 ‘비혼 출산’ 장벽을 허무는 것이 저출산 문제를 푸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의미가 더 분명해 보인다. 통계청이 지난 8월 28일 내놓은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의 의식변화’를 보면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 변화는 암울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인 0.78명으로 떨어졌다. 그중에서도 서울시는 0.59명을 기록했다. 정부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2006년부터 2021년까지 16년 동안 무려 280조 원이나 쏟아부었는데도 출산율 반등은커녕 이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출산율인 1.59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지경까지 추락했다니 눈앞이 캄캄하다. 이 와중에 결혼에 긍정적인 청년은 10년 전인 2012년 56.5%에서 2022년 36.4%로 무려 20.1%포인트나 떨어졌다. 결혼을 해도 53.5%는 자녀가 필요 없다고 여긴다. 정부가 저출산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런 흐름을 뒤바꾸기엔 역부족일 것 같다. 이번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의 의식변화’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비혼 출산 동의율’이 10년 전인 2012년 29.8%에서 2022년 39.6%까지 무려 9.8%포인트나 올라선 데 있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만 낳고 싶은 청년이 늘고 있는 현실이 투영된 대목이다. 하지만 지난해 한국의 ‘비혼 출산’ 비율은 2.0%에 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42%(2021년 기준)이고, 유럽연합(EU)의 평균도 41.9%에 달한다. 아이슬란드가 69.4%, 프랑스 63.8%(2022년 기준), 노르웨이 58.5%, 스웨덴이 54.5%, 덴마크가 54.2%에 달하는 것과는 현격한 격차다. 특히 프랑스는 한때 저출생을 고민했다. 1950년 2.93이었던 합계출산율이 1993년 1.65까지 꺾이자 적극적으로 출생률 부양책을 폈다. 가장 효과를 본 것이 ‘혼외 출생을 제도적으로 차별하지 않는 정책’이다. “시민연대계약(Pacte civil de solidarité │ PACS)”을 맺은 동거 커플에게 결혼한 커플과 똑같은 출산·육아 지원을 하는 정책이다. 사회 인식이 포용적 법률을 만들고, 법률이 포용적이고 개방적 가족과 출산 인식을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다. ‘비혼 출산’은 말 그대로 혼인하지 않은 상태로 아이를 낳는 것을 말한다. 결혼하지 않은 커플이나 사실혼 관계에서 아이가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동성커플이나 비혼주의 여성이 정자은행을 통해 공여받은 정자로 인공수정을 실시해 출산하는 경우도 포함된다.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씨가 지난 2020년 11월 자국에서 기증받은 정자로 아들 ‘젠’을 낳으면서 한국에서도 ‘비혼 출산’이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지만, 한국에서 정자 공여 시술을 통한 비혼 여성 출산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으로 이를 제한하고 있다. 현행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상 비혼 여성의 단독 출산을 금지하는 규정은 없다. 다만, 대한산부인과학회는 보조생식술(인공수정, 시험관시술)을 이용한 ‘비혼 출산’을 금지하는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을 병원들에 내려보내고 있다. 인공ㆍ체외수정과 같은 보조생식술의 시술 대상을 법률혼ㆍ사실혼 부부로 한정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모자보건법」상 난임(難姙)은 부부가 정상적 성생활을 하고도 1년 이상 임신이 되지 않는 상태를 뜻하기 때문에 동거 커플이나 비혼 여성은 난임 치료를 위한 시술 대상이 아니라는 게 학회의 입장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5월 “자의적 기준”이라며 지침 개정을 권고했지만, 학회는 “사회적 합의와 관련 법률 개정이 우선”이라는 이유 등으로 거부했다. 보건복지부 역시 “난임 부부 지원을 위한 법일 뿐”이라며 ‘비혼 출산’이 불법은 아님을 인정하고 있다. 비혼·저출산 위기를 바로잡지 못하면 나라의 존립 자체를 위협받는 재앙적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이제는 청년들의 인식 변화에 발맞춰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한다. 대한산부인과학회의 지침을 뻔히 알면서도 정부가 불법이 아니라는 소극적 입장만 밝히고 있음은 면피에 가까운 무책임이다.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David Coleman) 옥스포드대 교수는 “최소한 출산의 30% 이상이 비혼 출산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어떤 선진국도 1.6 이상의 합계출산율을 기록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현재 국회에는 비혼 동거ㆍ비혼 출산을 지원하는 법안들이 발의돼 있지만 기독교계와 보수단체의 비혼출산을 지원하는 것임에도 ‘사실상 동성혼을 합법화한다’라는 의혹의 시선에 의한 반대가 거세 입법까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하지만 이제라도 비혼 동거와 비혼 출산을 포용하려는 진지한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 학회와 병원들이 움직이도록 적극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놓아야 한다. 논란 자체를 불식시키려면 국회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비혼도 보조생식술을 이용할 수 있도록 법에 명시하는 「모자보건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저출산을 걱정하면서 아이를 낳고 싶은 이들조차 막는 것은 ‘인구절벽(Demographic cliff)’을 넘어 인구지진(Age quake)을 향해 쾌속 질주하는 ‘인구재앙’ 대처 의지마저 의심케 한다. 또한 청년들은 남녀 모두 육아 부담(46.3%)을 여성 취업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꼽았다. 여성이 출산 등과 상관없이 취업 상태를 유지하기를 원하는 청년은 74%에 달했다. 청년 취업난을 해결해야 저출산 문제가 완화될 수 있으나 현실은 되레 역행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8월 27일 발표한 ‘경제활동인구 조사 청년층 부가 조사’에 따르면 5월 기준 15~29세 청년 중 126만 1,000여 명이 학교를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잡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을 하고 싶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청년 백수’가 넘쳐나는 암울하고 참담한 현실에서는 출산율 반등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재정을 더 강력하고 효율적으로 투입해 청년들이 출산 동기를 가질 수 있도록 다각적·다층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는 출산율 급락이야말로 국가를 역동성을 잃고 쪼그라드는 ‘수축 사회’로 걸음을 재촉하는 거센 회오리바람임을 각별 유념하고, ‘국가소멸’을 막을 특단 대책을 강구해 실행으로 옮겨야만 한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