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만기' 수요 몰리자…5대은행 가계대출 폭증

가계대출에 기름 붓자 대출잔액 21개월내 최대 증가 '막차' 수요에 8월 1.6조↑…연체율은 2년새 두배로

2024-09-03     이광표 기자
서울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이 1년 9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고, 전체 대출 연체율까지 지난해의 약 두 배에 이르면서 한국은행과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가계대출 잔액은 680조8120억원으로 집계됐다. 7월 말(679조2208억원)과 비교해 한 달만에 1조5912억원 늘었다 5월 이후 4개월 연속 증가일 뿐 아니라, 8월 증가 폭(1조5912억원)은 2021년 11월(2조3622억원) 이후 1년 9개월 만에 최대 기록이다. 특히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를 주도하는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8월에만 2조1122억원(512조8875억원→514조9997억원)이나 뛰었다. 2조원대 주택담보대출 월별 증가액은 2022년 12월(2조3782억원) 이래 8개월 만에 처음이다. 이런 추세로 미뤄 전체 은행권과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세도 4월 이후 8월까지 5개월 이어졌을 것이 확실시된다. 지난달 은행권과 금융권 가계대출은 각 6조원, 5조4000억원 불어난 데 이어 8월 증가 폭이 더 커졌을 가능성도 있다. 8월 가계대출 급증에는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논란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은행권의 분석이다. 우선 5대 은행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7월 말 8657억원에서 지난달 24일 2조8867억원으로 2조원 넘게 불었다. 지난달 10일 당국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최근 가계대출 증가의 주범으로 지목한 뒤 은행권은 스스로 50년 만기 상품에 '만 34세 이하' 등 연령 제한을 두거나 아예 잠정적 판매 중단 방침을 밝혔다. 여기에 같은 달 하순에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 기준 조정에 따른 50년 만기 상품의 실제 한도 축소가 임박했다는 소식까지 더해지면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주택담보대출 수요까지 몰렸다. 이달 말까지만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하겠다고 예고한 NH농협에서 지난달 25∼31일 주택담보대출이 5천82억원이나 폭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가계대출이 빠르게 다시 늘어나는 가운데 연체율 등 건전성 지표까지 계속 나빠지면서, 부실 위험에 대한 우려와 긴장이 더 고조되고 있다. 5대 은행의 7월 말 기준 단순 평균 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0.31%(가계대출 0.28%·기업대출 0.34%)로 집계됐다. 한 달 전 6월 말의 0.29%(0.26%·0.31%)보다 0.02%포인트(p) 높아졌다. 고정이하여신(NPL)비율도 한 달 사이 평균 0.25%에서 0.29%로 0.04%p 상승했다. 각 은행이 건전성 지표 관리 차원에서 6월 말 부실 채권을 집중적으로 상·매각을 통해 털어내면서 잠시 주춤했던 연체율 등의 오름세가 다시 시작되는 분위기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50년 만기 상품 수요 증가는 원인이 아니라 현상일 뿐"이라며 "주택담보대출 급증의 더 근본적 원인은 주택담보대출 LTV(담보인정비율) 상한 완화, 부동산규제지역 해제, 민간택지 내 분양가상한제 지정 해제, 특례보금자리론 도입 등 부동산 경기 경착륙을 막기 위한 정부의 규제 완화"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