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진정한 공화국의 시작…대통령실 이전으로 왕조시대 마감
‘공화국(共和國)’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제1조⓵항이다. 국민 누구나 알고 있는 문장이다.
공화국이란 단어를 깊게 파고들면 정말 무시무시한 뜻이다. 헌법 제1조에 명시할 만큼 강렬하다. 특히 위정자에게는 경고의 의미를 담았다.
‘오늘날 공화국가의 의미는 민주국가와 다름이 없다. 국가와 지배의 정당성이 국민에 있고, 국민은 모든 공동체의 구성원을 의미하고, 그 지배의 정당성이 확보되는 국가를 공화국가라고 한다’(헌법학개론 226p,정종섭,박영사)
공화국은 말 그대로 공화 정치를 하는 나라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의미로 국민이 선출한 대표자 또는 대표 기관의 의사에 따라 주권이 행사되는 정치다. 대통령, 국회의원, 시도지사 등이 있는 이유다.
대한민국의 공화국 출발은 헌법이 제정 공포된 1948년이다. 하지만 그동안 무늬만 공화국이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초대 대통령부터 독재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군사정권에 이어 문민정부 국민의정부 등으로 명칭만 변경되었을 뿐 진정한 공화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중심제로 정치의 핵은 대통령이다. 그러다 보니 정치의 모든 게 대통령에게 쏠린다.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제왕적(帝王的) 대통령이란 말도 나온다. 대한민국은 엄연히 공화국인데 왜 대통령에게 왕(王)을 갖다 붙였을까. 공화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과거 왕조시대 왕의 모습이 엿보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보면 대통령 관저였던 청와대(경무대)는 조선 왕조에서 일본 강점기로 이어진다. 1392년 조선 왕조시대가 열린 뒤 1395년 경복궁을 1차 창건해 태조가 궁궐로 집들이를 했으니 경복궁 나이도 이제 거의 630살이다. 고종이 경복궁을 떠난 뒤 궁궐 한쪽에 있던 경무대는 행사장 등으로 쓰이다가 일본이 1939년 이곳에 총독 관저를 지었다. 총독 관저는 해방 뒤 주한미군 사령관이 잠시 사용했고, 윤보선 대통령이 1960년 경무대에서 청와대로 이름을 바꾼다.
궁궐의 일부였던 청와대가 일본 조선 총독이 머물고 대한민국 대통령이 일하고 잠자는 권부의 심장이 된 것이다.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가기만 하면 변한다는 얘기가 많았다. 원래 궁궐터에 자리 잡은 청와대니 대통령이 궁궐에 사는 왕처럼 느껴지는 건 당연지사다. 궁궐 속에 살았으니 대통령 스스로 조선 시대의 왕이라고 착각하지 않았을까. 궁궐에 파묻혀 국민과 소통하기는커녕 불통이 되어 버린 건 아닐까.
대통령이 공화국이란 미명 아래 왕 노릇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윤석열정부는 궁궐인 청와대에 아예 입주하지 않고 용산 시대를 열었다. 대통령실 이전을 단순히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왕조시대의 고리를 끊어내고 공화국가의 문을 활짝 연 대한민국의 기념비적 사건이다. 세간에 떠도는 풍수지리 때문에 옮겼다는 설이 있으나 대통령실의 엄중함을 무시한 말이다.
대통령실 이전은 진정한 공화국 탄생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크다. 조선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우리는 여전히 ‘헬조선’ ‘조선의 4번타자’ 등의 명칭을 붙이며 조선 시대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정부 앞에 놓인 역사적 과제는 막중하다. 공화국 시대를 열었고, 공화 정치의 꽃을 피울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용산 대통령실 개막이 주는 무게감을 느껴야 한다. 대통령의 출근길 기자회견인 도어-스테핑(door-stepping)도 동선과 방식을 달리하더라도 속히 재개해 공화국 시대의 상징으로 만들어야 한다.
윤 정부가 출범한 지 거의 1년 반이다. 국민과의 소통이 여전히 서툴고 국정 운영은 다소 거칠다. 그러나 ‘공화정’ 정신으로 국민에게 다가간다면 역사는 윤 정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