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바이오 산업, ‘잘나가는 현실’에 안주하지 말아야
2024-09-10 이용 기자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바람의 나라, 카트라이더, 테일즈위버, 리니지, 카르마... 20대 후반~40대 초반 연령대라면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고전 게임들이다.
20세기만해도 국내외 게임 시장은 일본-미국산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부터 국내에 게임 개발 붐이 일더니, 2000년대 초반에는 국산 온라인 게임이 시장을 장악해내는 기염을 토했다. 일부는 중국과 미국 시장에서도 호평을 받으며 한국 경제에 이바지했다. ‘재밌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1세대 게임 개발자들의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이다. 초반에는 정부와 언론들은 게임의 유해성을 지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당시 국민들은 게임에 대한 탄압을 반대하며 게임사의 편을 들었다. 그렇게 국민의 지지를 얻고 성장한 게임사들은 어떻게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90년대보다 퇴보한 게임성으로 소비자의 지탄을 받고 있다. 과거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무장했던 개발자들이 다 어디갔나 싶을 정도다. 현질만 유도하는 국내 게임사에 이골이 난 소비자들은 이젠 정부의 게임사 규제에 힘을 실어주는 ‘적’으로 돌아선 형국이다. 현재 차세대 산업으로 각광받는 바이오 산업도 국내 게임 산업의 뒤를 잇지 않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아니, 이미 그 조짐이 슬슬 보이기 시작한다. 의약품위탁생산산업(CDMO) 전문 기업들은 이미 전통 제약사의 매출을 훌쩍 뛰어넘은 상황이다. 글로벌 사회에서 의약품 부족 현상이 가중되고 있는 현재, CDMO산업은 미래가치가 매우 큰 산업이다. 특히 국내사는 높은 생산력과 더불어 ‘안전한’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덕분에 글로벌 클라이언트들에게선 우리 기업보다 생산력이 몇 수 위인 중국과 인도의 기업보다 더 훌륭한 파트너로 인식되고 있다. 90년대의 게임 산업과는 달리 정부와 국민들에게서도 좋은 대접을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 당시도 바이오 산업은 주요 지원 분야 중 하나였으며, 윤석열 정부는 아예 배터리, 디스플레이, 반도체와 함께 차세대 주력 산업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현재 대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바이오 산업의 내부를 살펴보면, 단지 타사의 의약품 및 백신을 대신 생산하거나 바이오시밀러에 치중돼 있다. 이렇게 생산된 바이오 약품은 주로 외국에 팔린다. 사실상 코로나19와 같은 글로벌 감염병 위기가 터졌을 때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낼 수준은 아닌 셈이다. 실제로 코로나19 당시 백신을 먼저 개발했던 곳은 제약사 화이자와 소규모 연구소였던 모더나다. 우리나라는 타사의 백신을 위탁생산만 했을 뿐이다. 또 해외 클라이언트의 제품을 생산하는 사업인 만큼, 여차할 경우 우리 국민이 활용할 수 있는 제품도 아니다. 대기업 바이오사 중에서 글로벌 사회에서 인정받는 블록버스터 치료제를 만든 사례는 아직 없다. 조단위 매출에도 불구하고, 인류 건강에 기여할 수 있는 혁신 의약품 연구개발 분야에선 글로벌 사에 비해 뒤처진 것이다. 백신 위탁 개발 생산사였던 SK바이오사이언스만이 이미 자체적으로 코로나19 백신을 만들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한 상태다. 아직까진 바이오 산업이 높은 경제적 가치로 찬사를 받고 있지만, 게임 산업처럼 발전 없이 ‘돈이 되는 사업’에 치중한다면 언젠간 국민들의 외면을 받게될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현재 셀트리온,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그동안의 수익을 바탕으로 신약 개발사로 거듭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바이오산업 후발주자인 롯데와 CJ도 신약개발과 관련된 비전을 내놓았다. 한국의 바이오 산업이 단순히 생산기지라는 한계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류의 보건의료에 기여할 수 있는 ‘제약바이오 기업’으로 거듭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