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반복되는 위기가구 '참담 비극' 없앨 촘촘한 복지안전망 구축을
2023-09-18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매일일보 | 지난 9월 8일 전북 전주시 한 빌라에서 생활고에 시달려온 것으로 보이는 40대 여성이 숨진 채로 발견됐다. 그 옆에는 아들로 추정되는 4살 안팎 미등록 아이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이 아들은 병원에서 가까스로 의식은 회복했으나 출생신고가 돼 있지 않아 신원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4년 엄마와 두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로도 위기가구의 ‘참담한 비극’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2018년 ‘증평 모녀 사망 사건’, 2019년 ‘봉천동 모자 사망 사건’, 2020년 ‘방배동 모자 사망 사건’, 2022년 ‘창신동 모자 사망 사건’, 같은 해 ‘수원 세 모녀 사건’, 같은 해 ‘신촌 모녀 사건’ 등 잊을 만하면 복지 사각지대의 아픔이 판박이처럼 반복됐지만 위기 가정을 발굴하는 시스템은 여전히 미흡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위기가구로 인지했으나 죽음을 막지 못했던 2022년 ‘수원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복지 사각지대 발굴 체계를 강화하고 보완하겠다며 여러 대책을 밝혀왔지만, 시스템의 허점 사이로 또다시 한 가족이 사망해 아직도 구멍만 여전한 셈이다. 왜냐면 그동안 여러 차례 엿보인 ‘비극의 전조’를 제대로 포착하고 있지 못하고 안이하게 그냥 지나쳐버렸기 때문이다. 경찰에 따르면, 고인의 사망 원인은 지병으로 인한 동맥경화로 추정된다. 부검에서 담석도 발견됐는데, 생활고 때문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부패한 시신 옆에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던 아이는 며칠째 끼니를 거른 상태였다. 아이는 병원에서 깨어나 울먹이며 엄마를 찾았다고 한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출생신고가 안 된 미등록 아동 전수조사를 벌인 바 있었는데, 이 아이는 ‘병원 밖 출생’으로 명단에서 누락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정부가 사고의 징후를 사전에 감지할 기회가 있었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는 공과금을 두 달 이상 체납한 개인 또는 가구를 전국 각 지자체에 통보한다. 고인의 집에서는 20만 원이 넘게 밀린 전기요금 등 각종 공과금의 납부독촉 고지서가 발견됐다고 한다. 고인은 건강보험료 56개월 치를 비롯해 가스비, 빌라 관리비 등을 수개월째 못 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여성이 생활고를 겪다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여성은 이웃들과 왕래가 거의 없었고 최근 소득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7월 관할 주민센터가 추린 위기가구 발굴대상자 87명에도 포함됐다. 전주시는 안내 우편물을 보내고 담당 공무원이 지난달 16일 통화를 시도했는데도 연락이 닿지 않았고 지난달 24일 직접 방문했을 때도 빌라 호수 등 상세 주소가 적혀 있지 않아 만나지도 못했다고 한다. 담당 공무원이 1명뿐이었으니 복지 시스템이 현장에서 작동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정부가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로 사각지대를 없앤다고 하지만 현장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제때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다. 숨진 여성이 속한 주민센터에선 위기가구 발굴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단 한 명뿐이었다. 지난해 ‘수원 세 모녀 사건’과 ‘신촌 모녀 사건’에서도, 위기가구로 발굴하고도 소재지와 연락처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비극을 못 막았다. 정부가 월세와 관리비 체납 등으로 위기가구를 사전에 발굴하는 시스템상에서 2회 이상 반복 발굴된 인원이 전체 위기가구의 절반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인도 2021년부터 올해까지 총 5회 위기가구로 선정된 대상자였다. 지난 9월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혜영 의원이 사회보장정보원으로부터 제출받은 ‘복지사각지대 중복 발굴대상자 현황’ 자료를 보면, 해당 시스템이 개설된 2015년 12월부터 올해 7월까지 대상자로 선정된 인원은 총 595만 3,182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2회 이상 반복 발굴된 인원은 358만 2,499명으로 절반이 넘는 60.2%에 달한다. 정부는 월세·아파트 관리비 체납 등 39종의 위기가구 포착 정보를 통해 위기가구를 사전에 발굴하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는 이를 44종으로 10종 더 확대하고 실제 거주지와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다른 경우에도 사실조사를 할 수 있도록 했고 생활고가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신건강복지센터·자살예방센터-서민금융기관 간 대상자 발굴·지원을 강화했지만, 여전히 생활고 등으로 인한 고독사는 현재진행형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반복적으로 위기가구로 선별된 대상이 전체 발굴 대상의 절반 이상이고 이들에 대한 별도의 관리 방침이 없다는 것이다. 최혜영 의원이 사회보장정보원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10회 이상 반복적으로 위기가구로 선별된 사례도 4,800여 건에 이르고, 이 중엔 19번이나 위기가구로 발굴된 경우도 있다. 시민단체 분석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위기가구로 발굴된 이들 가운데 공적 서비스로 연계된 이들은 겨우 12%에 그친다. 벼랑 끝 한계 상황에 이른 위기가구를 돕는 복지 행정은 언제나 한발 늦었다. 한발 앞선 보다 적극적인 복지행정이 아쉬운 대목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개선책을 내놓고 있지만,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에 머물거나 ‘실우치구(失牛治廐)’나‘망양보뢰(亡羊補牢)’에 그치고 있다. 송파 세 모녀 사건 후에야 체납 정보를 활용한 위기가구 발굴 정책을 마련했고, 수원 세 모녀 사건 후에야 위기가구임을 확인하고도 사는 곳이 주민등록 주소지와 달라 생기는 사각지대 해소책을 강구했다. 이번 사건으로 전입신고 시 주소를 동·호수까지 상세히 적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담당 인력·예산부터 확충해야 한다. 또 ‘발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왜 이런 참담한 비극이 반복적으로 계속 발생하는지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보다 더욱 촘촘한 복지안전망 구축이 필요한 이유다. 위기가구는 지원 프로그램이 있는 줄 아예 모르고 있거나 알아도 쓸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경우가 많다는 것도 챙겨봐야 할 대목이다. 또한 고인과 살아남은 아이에게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출생신고를 꺼리거나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여성을 돕는 제도도 고민해야 한다. 지난 7월 부모가 신고하던 신생아의 출생신고를 의료기관이 대신 지자체에 통보하도록 의무를 부여하는 ‘출생통보제’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익명으로 아이를 낳고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한 ‘보호출산제’ 등 더욱 촘촘한 대책도 시급하다. 추석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른 가운데 긴 연휴를 의지할 곳 없이 보내야 하는 이웃이 없는지 살펴야 할 때다. 취약층을 지원하는 복지제도의 문턱이 여전히 높은 것은 아닌지도 세심하게 살펴야 할 것이다.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선택적으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선별복지’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오히려 복지 사각지대를 좁히기 어렵다. 특히 생활고에 처한 이들은 채무 등 문제로 주민등록지와 다르게 실 주거지를 옮기는 경우가 많다. 지역 사정에 밝은 주민들을 활용해 위기가구 발굴을 돕는 유연한 제도 도입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