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의원님들, 제발 일 좀 하세요”
2024-09-20 안광석 기자
매일일보 = 안광석 기자 | 이제는 입이 아프다. 한두해 일은 아니지만 국회의원들이 일을 안 해도 너무 안 한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을 확인하니 20일 기준 21대 국회에서 처리된 법안은 7702건이다. 의원발 정부발 합해 총 2만4572건이 이번 국회에서 발의됐는데 퍼센티지로 따지면 31%에 불과하다.
식물국회 오명을 뒤집어 쓴 20대 국회 시절 최종 법안 처리율이 36.9%로 역대 최저치였다. 이번 국회 법안처리율은 오는 2024년 4월 22대 총선까지 현재와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신기록이 눈앞이다. 아직 남은 기간이 7개월이나 있다는 반박이 있을 수 있겠지만, 거꾸로 겨우 7개월이라는 주석을 달고 싶다. 당장 이달도 정기국회라고는 하지만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을 둘러싼 여야 강대 강 대치는 쉬이 풀릴 것 같지 않다. 교착상태가 지속된 상태로 긴 추석을 쇠고 나면 바로 국정감사에 돌입하고, 국정감사가 끝나면 2024년 예산안 정국이다. 예산안 법정 처리시한은 12월 2일이지만 필자가 아는 한 이 날짜가 지켜진 적은 거의 없다. 여야 대치로 법안처리는 뒷전인 현 상황을 감안하면 올해도 법정시한 준수는 물 건너갔다. 후하게 잡아 연말쯤 겨우겨우 예산안 정국을 끝내고 어수선한 연말연시를 넘기면 바로 총선정국이다. 내년 총선 시기는 윤석열 정부 임기 중간점을 돌기 직전이다. 정권 중간고사나 다름 없는 만큼 여야의원들은 전국 주요 격전 예상지로 흩어져 벼락치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3개월여의 여유가 있지 않느냐 하겠지만 홀수월에는 국회가 열리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기간은 총선이 있는 4월을 빼고 내년 2월 임시국회뿐이다. 그 한 번의 기회에 여야가 지난해 5월 이후 쌓여온 갈등을 털어내고 1만건이 훌쩍 넘는 계류법안들을 이견 없이 일괄처리할 수 있을지? 즉, 현재의 법안처리 성적이 7개월 후의 성적이다. 식물국회를 넘어선 국회는 도대체 어떤 수식어를 달아야 하나.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국회의원은 꿈의 보직이다. 당선되기까지 들 노고와 자본은 차지하고서라도 일단 당선되면 연수당으로 1억5000여만원이 지급된다. 여기에 정책 및 입법활동비 명목으로 받는 플러스 알파를 감안하면 2억원 정도는 우습다. 보좌진들 수당은 세금으로 지급되니 각종 후원금을 빼고도 1선만 해도 최소 8억원 이상의 소득이 보장된다. 범죄를 저질러도 사면받을 수 있는 불체포 특권에 항공기 비즈니스석과 KTX를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법안처리율이 이 모양이어도, 심지어 범죄를 저질러도 돈은 들어온다. 민생은 엉망이 되고 있는데 입법부의 기본업무인 법안처리를 안 해도 이 정도라니. 이쯤되면 당사자들도 연금이 따로 없는 게 아쉽지 않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호구 잡히는 것은 월급 주는 국민들이다.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일을 안 해 아쉬운 현안은 하늘의 별만큼 많지만 현재 사회적 이슈로 꼽히고 있는 부실시공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인들은 부동산의 민족인 만큼 거주문제에 가장 민감하다. 수십년 반복돼온 문제이고 정부도 바보가 아닌 만큼 답은 이미 알고 있다. 부실시공의 근본원인인 불법하도급을 근절하기 위한 법안처리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건설산업기본법이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도 불법하도급한 자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의 복안은 처벌 수위와 책임대상을 원도급사와 발주자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방향은 좋다. 문제는 해당 법안이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도 여소야대에 서로 싸우느라 법안처리가 안 되는 상황쯤은 인식했을 텐데. 그런 것 치고는 거대야당을 적극 설득하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누구 때문에 개혁이 안 된다는 식의 정부 목소리는 너무 커서 귀가 아플 지경이다. 아파트 철근이 빠진 건 전 정권 때문이고, 부동산 통계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고, 대규모 공급대책 발표를 앞둔 이 시점에 왜 터지는지. 결론적으로 지금 공무원이나 국회의원들이나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이제는 공노로서 본업에 충실할 때도 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