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대기업 ‘R&D 주도권’ 싹쓸이… 기업 규모별 빈부격차 우려

2024-10-12     이용 기자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국내 R&D(연구개발) 대부분이 대기업에서 집중되는 가운데, 정부의 R&D 지원이 축소되면서 중소기업의 기술 주권이 소실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상위 5개 기업의 R&D 투자가 전체의 75.5%에 달해, 사실상 국내의 연구 대부분을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글로벌 R&D 투자 상위 2500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국내의 연구개발 투자 비용집중도가 주요 국가에 비해 높아 1위 기업에 대한 ‘쏠림 현상’이 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삼성전자의 R&D 투자는 총 한국 기업의 R&D 투자 중 49.1%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위 기업의 집중도가 6.3%에 불과했으며, 중국 10.0%, 독일 17.1%, 일본 7.6%, 영국 21.7%, 프랑스 19.8%로 조사됐다. 문제는 투자 한파가 몰아치는 현재, 벤처 및 스타트업은 연구개발비를 충당할 방안이 딱히 없다는 점이다. 중기부는 올해 1분기 벤처투자액은 9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0.3% 감소했다고 밝혔다. 실물경기 둔화 지속, 고금리에 따른 자금조달 비용 증가, 금융시장 불확실성 고조, 경기회복 부진 등이 주요 요인이다. 경제 전문기관들은 R&D 투자에 대한 세제 지원을 추가해 관련 업계를 활성화해야한다고 지적한다. 전경련은 “산업 전반에 걸친 R&D 투자 활성화와 1위 기업에 대한 쏠림 현상 완화를 위해 정부 차원의 인센티브 확대 정책 등 적극적인 R&D 투자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소규모 연구실 및 과학자에게 절실한 연구개발 관련 정부 예산은 축소되고, 대기업에 대한 혜택은 늘어난 실정이다. 지난 7월 정부는 내년 R&D 분야 예산이 25조9152억원으로 편성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는 올해(31조778억원)와 비교하면 5조1626억원, 16.6% 가량 줄어든 액수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7조원가량의 R&D 예산이 정비됐는데, 이중 2조∼3조원은 다른 사업으로 이관했고 4조∼5조원은 삭감됐다고 설명했다. 또 한편으론 국가첨단전략산업과 관련된 연구개발에 세재 혜택을 주는 방안이 마련됐다. 기획재정부는 '2023년 세법개정안'를 발표, 바이오의약품 관련 8개 기술과 4개 시설을 국가전략기술·사업화시설에 포함하고, 하반기 R&D 지출·시설투자 분부터 적용한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5월에는 기존 3개 산업(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에 바이오를 더해 국가첨단전략산업을 확대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중소벤처기업의 연구 자금줄은 끊기는데, 대기업에 유리한 정책만 나온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가첨단전략산업 각 분야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곳은 대기업이다. 실제로 특허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기전자(이차전지), 반도체, 정보통신(디지털통신) 등 12개 분야 기술에서 가장 많은 특허출원을 한 곳은 대기업이었다. 이에 따라, 제조업에 특화된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소기업연구원이 2021년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하도급기업 비중은 45.6%이며, 이들의 수급기업에 대한 매출액 의존률은 2009년 76.7%에서 2018년 81.8%로 증가했다. 벤처는 신기술 개발을 통해 경쟁력을 입증하고 수익을 확보해야 하는데, 자금이 없어 당장 사업 존폐부터 걱정해야 하는 판이다. 최근 러-우 전쟁의 장기화에 이-팔 전쟁까지 겹치며 에너지 가격 폭증이 우려되고 있는데, 중소기업의 경영난이 가중돼 연구개발 역량이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강남의 의료 솔루션 업체는 “최근 벤처는 대기업에 인수 합병 연구비를 지원받거나, 차라리 인수합병 당하길 원하는 실정”이라며 “결국 핵심기술은 모두 대기업이 챙기게 된다. 현재는 제조분야 하도급만 대기업에 종속된 상태지만, 특정 기업이 모든 기술의 독점적 지위를 갖게 되면 국민 모두 그 영향력에 끌려 다닐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