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이·팔 전쟁에 속타는 산업계…피해 현실화 우려

국내 대기업, 이스라엘에 총 8개 현지법인 운영 중 이스라엘 현지 직원 귀국조치, 재택 전환 등 안전 확보 車 중동 수출 타격 우려도…“확전 시나리오 점검해야” 일부품목 이스라엘 수입 의존 90%↑…대응책 마련 필요

2024-10-16     김명현 기자

매일일보 = 김명현 기자  |  러·우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하 이·팔 전쟁)으로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확산하면서 국내 산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이스라엘 현지 법인의 피해가 보고되진 않았지만 이·팔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타격이 불가피할 것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기업의 대응책 마련에 한계를 지우는 가운데 우리 기업들은 확전 가능성과 사태 추이를 예의주시하며 피해 최소화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이·팔 전쟁으로 이스라엘 현지 한국 기업에 발생한 피해는 아직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이란의 참전 등 확전 가능성과 전쟁 장기화 전망이 제기됨에 따라 기업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국내 대기업이 이스라엘에 세운 현지 법인은 총 8개다. 기업분석전문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이스라엘 현지 법인은 삼성 5개, SK 1개, LG 1개, OCI 1개 등으로 조사됐다. 한국CXO연구소 오일선 소장은 "향후 이·팔 전쟁이 장기화되거나 중동 전쟁으로 확전될 경우 국내 기업들에 미치는 피해도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어 향후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내 최다 법인을 보유한 삼성은 현지에서 마케팅, R&D(연구개발), 카메라, 오디오제품 생산 등 다양한 부문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삼성은 현지 주재원에 대한 재택근무 전환 등으로 안전을 확보하고 정부 방침에 따라 대응책을 꾸릴 계획이다. 앞서 LG전자는 이스라엘 텔아비브 판매지점 직원과 가족 등을 귀국 조치했다. 이스라엘 판매법인 한 곳을 운영 중인 SK하이닉스는 현지 한국인 직원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현지 법인이 없지만 대리점 피해 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현지에서 자동차 1, 2위를 차지하며 시장 장악력을 높여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중동 지역에 자동차 수출 여건이 악화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스라엘 자동차 시장 자체는 크지 않지만 이·팔 전쟁이 중동 전체에 영향을 주게 돼 향후 타격이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신차뿐 아니라 중동으로 가는 중고차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러·우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듯 향후 중동 확전에 따른 수출입 시나리오 등을 면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특정 항목에 대한 공급 차질 문제도 해결 과제다. 이스라엘과의 전체 무역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일부 품목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분석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난연제, 석유·가스 시추 등 다양한 산업에서 활용되는 브롬의 1~8월 이스라엘 수입 의존도는 99.6%에 달했다. 드론용 레이더, 위성항법장치(GPS) 등 항공기용 무선방향 탐지기의 의존도는 94.8%다. 브롬의 경우 미국, 중국, 일본 등 다른 생산국으로 전환해 대체가 가능할 전망이지만 항공기용 무선방향 탐지기는 분쟁 장기화 시 공급 차질이 우려되는 실정이다. 같은 기간 이스라엘이 우리나라 수출·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0.37%, 0.27% 수준이다. 도원빈 한국무역협회  연구원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우리나라와 직접적인 교역 비중이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네온·크립톤 등 특정 품목의 공급망 교란, 에너지 가격 상승 등 다양한 경로로 우리 경제에 영향을 미쳤다"면서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파악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팔 전쟁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 시티' 수주에도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고 진단한다.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공개적으로 팔레스타인 지지를 선언하면서 변수가 생겼다는 것이다. 미국이 공개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원 중인 상황에서 전쟁이 장기화한다면 한국 기업의 네옴시티 수주에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다. 네옴 시티 프로젝트는 빈 살만 왕세자가 2017년 석유 중심의 경제 구조를 탈피하겠다며 발표한 초대형 신도시 사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