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내기 미대생들의 학교 밖 생애 첫 전시, 동국대학교 서양화전공 4학년 그룹전 「선명하지 않아도」!
- 동국대 서양화전공 졸업반 6명의 학생 작품 삼청동 갤러리 민정서 선보여 - 자본과 거리 있는 순수 미술, 우직하게 탐구해온 신예들의 진면목 발견하는 전시 - 제도권 미술계 진입 어려운 초짜 예술가들의 창작 의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자리
매일일보 = 김종혁 기자 | '풋내기'는 경험이 없거나 나이가 어려서 일에 서툴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이를 얕잡아 지칭하는 단어다.
순수 미술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좌충우돌하던 풋내기 미대생들과 그들을 지도해온 선생이 일을 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미술은 자본이나 실용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그래서 순수 예술을 전공한 학생들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고달픈 현실 속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더 큰 불안감을 느낀다. 그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선배이자 스승인 정윤영(36) 작가는 미술 현장의 제도적 문턱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갖고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밥벌이가 되지 않는 미술
누구에게나 생계의 문제는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매년 평균적으로 1만 명 이상의 학생들이 미술대학에 입학하지만 순수한 열정 하나만으로 예술 활동을 지속하기에는 현실적 제약이 너무나 많다. 이처럼 녹록치 않은 현실 앞에서 순수 미술 전공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빛나는 재능보다는 미래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창작에 관한 의지를 다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몇 해 전부터 미술 대학에서 시간 강사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지도해 온 정윤영 작가는 누구보다 이 같은 문제를 깊이 고민해 왔다. 특히 그는 교육 현장에서 대학 졸업을 앞둔 4학년 학생들이 느끼고 있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불안감과 무기력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공감한다. 미술계 안에서도 전시 기회가 가장 절실한 이들은 바로 졸업을 코앞에 둔 학생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졸업을 한다고 해도 화려한 전시 경력이 있을 리 만무하므로 미술 현장에 진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하찮은 전시회라도 작품을 출품할 기회가 생기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의 미술계 관계자들은 풋내기 창작자들을 외면한다. 이 같은 현실적이고 구조적인 한계에 관해 정윤영 작가는 솔직한 목소리를 냈다.--"제가 미술대학 학부 과정을 막 졸업했을 때가 생각이 납니다. 정말 순수한 열정 하나만으로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작품 제작에 몰두했지만, 막상 졸업이란 것을 하고 나니 어수룩한 미술 대학 졸업생에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지금껏 학교에서는 좋은 그림을 그려야만 한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그 좋은 그림을 어떻게 세상에 선보이고 그것의 가치를 인정받도록 노력해야 하는지는 배우지를 못 했어요. 그렇게 막막해하던 중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지요. 자신을 인사동의 한 갤러리 갤러리스트라고 소개하는 이였는데, 저의 졸업 전시 카탈로그를 보고 작품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며 전시에 출품하지 않겠냐고 묻더군요. 전시 기회 한 번이 절실했던 저는 당연히 그 제안을 수락했었지요. 그리고 작품 한 점을 출품하는 데 20 만원을 내야 한다는 말에 순진하게 승낙했습니다. 대망의 전시 설치 당일 부푼 마음을 안고 정성스레 포장한 작품을 들고 갤러리에 가보니 위치만 인사동이었을 뿐이지 제대로 된 간판 하나 없는 창고만도 못한 형편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때는 미술계 실정에 어두운 미대 졸업생으로서 멋모르고 응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판단 착오였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적어도 순수 미술 작업에 관한 진심 어린 창작자의 의욕이 이용당하지는 않게 도와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주변에도 동시대 미술계에서 얻은 명성과 달리 생계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작가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대다수의 작가들은 금전적인 측면에 욕심을 내기보다 순수한 열정으로 기꺼이 창작에 임한다. 쉽지 않은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선 고단한 현실에 불만만을 토로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그는 미술이라는 전공 분야와 연계된 최소한의 상업적 토대를 마련하고 창작 활동에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실질적인 방향성을 제시하고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도록 시도하는 것이 미술 교육 현장에 있는 교육자로서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여러 구조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예술 활동을 해 보겠다며 의욕을 보이는 학생들의 뜻을 모아 전시를 직접 기획했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으니 내가 보여주겠다는 당찬 포부가 엿보인다. 이번 전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신진 작가들의 독립적이고 뚜렷한 개성을 지닌 순수 회화 작품들을 직접 발굴하여 대중에 선보이고 작품 판매로까지 이어지는 산실로 키우겠다는 작지만 의미 있는 첫 시도인 것이다.미술 대학의 미래를 묻는 목소리
우리 사회는 역대 최악의 청년 실업률을 보이고 있다. 대학의 경우에도 의약 계열이나 공학 계열 입학 정원에 관심을 더 많이 두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며, 상대적으로 인문 계열이나 예술 계열은 취업률 조사에서도 찬밥 신세다. 물론, ‘돈 안 되는’ 학과이기에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미술 대학에도 미래가 있는가를 한 번쯤 진지하게 질문해 볼 필요는 있다. 좋은 질문은 그 자체로 해결의 실마리가 되어줄 답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학생들은 이와 관련해 개인적인 생각을 전했다. -- “너 졸업하고 뭐 해 먹고 살 거야? 요즘 제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에요. 학부 졸업장만으로 번듯한 취업이 보장되던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난 것 같아요. 나름대로 열심히 4년의 학교 생활을 보냈지만, 4학년 졸업을 코앞에 둔 지금은 주변 사람들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예비 창작자가 됐어요. 다른 전공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취업 준비나 스펙 쌓기에 최선을 다하는데, 순수 예술가를 꿈꾸는 제가 세상 물정 모르고 허황된 소리나 하고 있는 것 같아 상대적으로 많이 위축됐어요. 하지만 좀 두렵고 불안해도 우리는 아직 젊잖아요. <선명하지 않아도>라는 전시 타이틀처럼 선명하지 않다는 것은 결국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품은 것이라 생각해요.” -- 남현주(24) --“저는 코로나 학번으로 대학을 입학해 수년간 학교라는 공간에 머물 기회조차 없었어요. 모든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으니까요. 학교에 정 붙이기 힘드니 자연스레 바깥으로 돌면서 미술과는 관련 없는 이런 저런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듭하게 됐죠. 그리고 다시 코로나 완화로 학교 실기실로 돌아오게 되면서 ‘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그림 그리기였지.’라고 새삼 깨닫게 됐어요. 당연히 열심히 그린 작품들을 전시장에 걸어보고 싶었지만 그런 기회가 저에게 생기지는 않았어요. 최근에는 컨테이너 박스에서 진행되는 외부 전시 작품을 설치하며 열악한 조건에 조금 힘들었는데, 감히 생각지도 않았던 갤러리 전시에 참여할 수 있어 무척 기뻐요.” -- 변윤주(22) --“막연하기는 해도 미대 졸업하면 예술 관련 활동을 하면서 살게 될 거라 짐작만 했어요. 그림 그리는 걸 너무 좋아했어서 창작은 저에게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저라는 사람을 쓸모 있게 만들어주는 유일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순수한 창작물만 갖고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것은 결코 쉽지 않기에 방황을 많이 했어요. 어떤 미술 관계자에게 어떻게 내 작업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는 것인지, 전시장에 작품 설치와 운송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전시 홍보는 어떻게 하는지, 작품이 판매되면 갤러리와 어떤 비율로 수익을 나눠 갖는지, 전시 계약서는 어떻게 작성하는지, 정말 모르는 것투성이였죠. 이번 전시는 정말 알고 싶었지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 방법을 몰라 주저하던 예비 창작자인 저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 이승미(24) 이번 전시는 예술이 지닌 진솔한 가치를 추구하면서 작가와 미술관, 학교가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자 하는 변화의 의지가 담겨 있다. 매년 연말 미술 대학 교내에 위치한 전시 공간에서 학생들만의 잔치로 끝나고 마는 형식적인 졸업 전시회와는 차별화되는 점이다. 비용을 지불하고 전시 공간을 계약하는 대관 전시가 아닌 대학 내 전공 수업을 통해 만난 학생과 스승이 뜻을 모아 전시 준비의 전 단계를 함께 추진한 ‘기획 전시’라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이번 전시는 동국대학교 서양화 전공 학생들이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열게 되는 첫 전시회이지만 막연함 속에서도 예술하는 삶의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분투기이기도 하다. 하잘 것 없어 보이는 젊은 예술가들의 작은 목소리가 새 시대를 열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관객과 소통할 준비를 마쳤다. 건강하게 뛰고 있는 청춘들의 전시는 11월 5일까지, 작품이 궁금하다면 ....- 전 시 명 : '선명하지 않아도'
- 전시작가 : 남현주, 변윤주, 이건희, 이승미, 정다겸, 최은진
- 전시장소 : 갤러리 민정 (Gallery MINJUNG)
- 전시일시 : 2023. 11. 1(수) ~ 2023. 11. 5(일) (총 5일, 기간 중 휴무일 없음)
- 관람시간 : [평일] 10:00 ~ 18:00 (수요일 14:00 ~ 20:00)
- 입 장 료 : 무 료
- 전시장르 : 회화 (20여 점)
- 전시기획 : 정윤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