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군기…식품업계, 재점화된 정부압박에 노심초사
농식품부, 식품사에 물가 안정 협조 요청…사실상 인하‧동결 권고 수입의존 국내 식품, 국제 유가 불안정성‧고환율 등 직격타 불가피
매일일보 = 김민주 기자 | 식품업계가 재점화된 정부 압박 조짐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국내 주요 식음료업체들은 올 초부터 정부 차원의 권고로 인상안 보류 및 가격 인하를 단행해왔다. 서민 일상과 밀접하다는 특성상, 정부의 대대적인 물가 안정 작업의 주요 타깃이 된 모습이다. 내년 총선을 앞둔 만큼 민심을 의식한 정치권의 기업 압박 수위가 더욱 높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0일 한국식품산업협회에서 간담회를 열고 식품업계 대표, 임원들을 대상으로 물가 안정에 적극 협조하라고 요청했다. 간담회에는 김환석 매일유업 대표이사, 김성용 동원F&B 대표이사, 임정배 대상 대표이사, 전창원 빙그레 대표이사 등 식품사 16곳의 대표, 임원 등이 참석했다.
앞서 한훈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추석을 앞둔 지난달 8일에도 식품업계와 만나 한 차례 제품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한 바 있다.
정부가 기업을 상대로 실태조사를 벌이고 업계와 잇따른 간담회를 열며 전방위로 압박할 시, 기업 입장에선 수익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더라도 권고를 따를 수밖에 없단 게 업계의 전언이다. 실제로 지난 6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라면 가격에 대해 기업들이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언급하자, 업체들은 곧바로 반응했다.
국내 라면 시장 점유율 1위 농심을 필두로 삼양식품, 오뚜기, 팔도 모두 지난 1일부로 줄인하를 단행했다. 농심은 신라면과 새우깡의 출고가를 각각 4.5%, 6.9%씩 인하했다. 삼양라면도 삼양라면, 짜짜로니, 맛있는라면, 열무비빔면 등 12개 대표 제품 가격을 평균 4.7% 내렸다. 오뚜기는 라면류 15개 제품 가격을 평균 5% 내려잡았다. 팔도는 ‘일품해물라면’, ‘왕뚜껑봉지면’, ‘남자라면’ 등 11개 라면 제품에 대해 소비자 가격 기준 평균 5.1% 인하했다.
일각에선 기업들의 가격 줄인하 및 동결이 ‘보여주기식’에 그치고 이에 따른 N차 후폭풍을 우려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장기적으로 내다봤을 때 소비자에게 더 큰 가격 부담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제기된다. 대다수 재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국내 외식·식품업체들 특성상 가격 인상 요인은 더욱 가중된 탓이다. 이스라엘-하마스 간 확전에 따른 국제 유가 불안정성, 고환율 등 대내외 악재가 여전히 산재한다. 유가와 환율이 오르면 원부자재 가격과 물류비 상승 등 제조 부담이 가중돼 물가 상승 촉발 요인이 된다.
지난 1일부터 낙농진흥회가 원유 기본가격을 L당 88원(8.8%) 올리며, 우유를 재료로 하는 빵, 아이스크림, 커피 등 식음료 제품들의 가격이 연달아 치솟는 ‘밀크플레이션’의 물꼬도 트이고 있다.
최근 정부는 특히 설탕을 주목하고 있다. 설탕가격이 오를 시 과자, 빵, 음료수 등 주요 가공식품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원당가격 급등에도 불구하고, 대한제당협회는 내년 초까지 설탕 가격 인상을 최대한 자제하기로 입장문을 발표했다.
주류 업계도 제품 출고가 인상을 둔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오비맥주는 지난 11일부터 카스, 한맥 등 주요 맥주제품의 공장 출고가격을 평균 6.9% 인상한다. 환율 불안이 지속하는 가운데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각종 원부자재 가격의 상승과 국제유가 급등으로 인한 물류비 상승 등이 영향을 미쳤다. 선두업체의 인상안 발표를 기점으로 하이트진로, 롯데칠성음료 등 경쟁업체들의 공급 가격 상향 조정이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최종 소비자 가격이 결정되기 까진 다양한 이해관계 및 유통절차 등이 반영된다”며 “우리나라 기업 입장에선 ‘가격 인상’ 외엔 마땅한 대안이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