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버 위한 삼성 입맛에 맞는 지분법”

위원회 7명 중 4명 삼성과 직·간접적 관련

2006-09-29     권민경 기자

회계기준 변경, ‘삼성 봐주기’ 의혹 증폭

삼성을 위한, 삼성의 입맛에 맞는 회계기준이 만들어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삼성에버랜드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 주식에 대한 지분법 적용을 막기 위해 회계처리기준까지 변경됐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이명규 의원은 지난 9월26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감위·원 국정감사에서 “기업회계기준 지분법 규정 의결 당시(2003년 12월∼2004년 2월) 회계기준위 위원 7명중 4명이 삼성그룹과 인연을 맺고 있는 인물이었다”며 “삼성에버랜드 보유 삼성생명 주식에 대한 지분법 적용 중지 계기가 된 기업회계처리 기준 변경에 삼성의 영향력이 작용했다” 고 주장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2003년 12월12일 열린 회계기준위원회는 ‘기업회계기준서’ 제15호 지분법의 일부 조항을 바꿨으며, 이에 따라 당시 금융지주회사가 될 상황에 처했던 삼성에버랜드는 지주회사 지정을 면했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특히 회계기준을 바꿀 때 회계기준위원회 7명 가운데 4명이 삼성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었다”며 “기업회계처리 기준 변경이 삼성이 만든, 삼성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이 삼성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는 회계기준위원은 최인홍 현 삼성전자 부사장, 에버랜드 회계감사를 맡아온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신용인 대표, 삼성재단의 송인만 성균관대 교수, 삼성그룹 과장출신의 임석식 현 금감원 전문심의위원 등 4명이다.현행법에 따르면 보유 중인 금융 자회사의 주식 가액이 모회사 전체 자산의 50% 이상이면 금융지주회사가 돼 비금융 자회사를 팔아야 한다. 그러나 이 의원에 따르면 삼성에버랜드는 2005년도 회계연도부터 적용된 기업회계기준서 제15호 지분법에 근거해 삼성생명 주식의 평가방법을 기존 지분법적용투자주식에서 매도가능증권으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주식의 가치평가에는 피투자회사의 성과와는 무관한 원가법이 적용되게 회계기준을 변경함으로써 삼성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에 해당되는 일을 막은 것이다.기업회계기준서 제15호 지분법은 2003년 12월 12일 회계기준위원회이 제정안을 의결하고 2004년 2월 13일에 지분법 기준서에 대한 금감원의 수정의견에 대해 회계기준위원회의 검토·의결을 거쳐 2004년 2월27일에 공표됐다. 제정안 의결이 있었던 2003년 12월12일은 공정위가 2003년 말을 기준으로 비금융회사 지분 소유 위반행위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려 삼성에버랜드가 이미 금융지주회사가 되어 있을 때였다. 삼성으로서는 금융지주회사로 판명 날 경우 에버랜드가 보유하고 있는 (주)e삼성, 삼성테크윈, 삼성엔지니어링 등 비금융회사의 주식 모두를 매각해야 할 입장이었다. 

의원은 "지분법 기준서에 대한 금감원 수정의견을 검토, 의결한 날인 2004년 2월13일에는 앞서 지적한 최외홍, 신용인, 송인만 세 사람 이외에 수년간 삼성그룹의 과장으로 재직했던 임석식 금감원 전문심의위원이 상임위원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결국 지분법 마지막 결정일에는 삼성그룹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이 회계기준위원회 위원의 과반수(7명중 4명) 이상을 차지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삼성에버랜드가 종전과 같이 지분법을 적용했다면 이미 금융지주회사로 판결이 났을 것이고, 비금융일반회사의 주식을 모두 매각했어야 할 것이다“ 고 주장했다. 따라서 “누가 보더라도 삼성에버랜드를 위한, 삼성의 입맛에 맞는 회계기준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라며 "회계기준위원회 위원 구성에 문제가 있었던 점을 인정하고, 회계기준위원회를 새로 구성해 논란이 되고 있는 지분법에 대해서 재심의,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유재규 실장은 "회계기준을 변경한 것은 국제기준에 맞추기 위한 것이며 위원 선정에 금융감독당국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지분법→원가법적용이란?>

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의 주식 19.34%를 소유한 최대주주다. 지분법은 지분율이 20%를 넘을 때 적용된다. 그럼에도 그동안 지분법을 적용한 것은 에버랜드가 삼성생명 빌딩관리를 맡는 등 내부거래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부터 피투자회사(삼성생명) 입장에서 중요한 내부거래일 경우에만 지분법을 적용하도록 회계기준이 개정됐다. 연간 몇백억원의 거래는 삼성생명 입장에선 중요한 거래로 볼 수 없어 에버랜드는 올해부터 지분법 대신 원가법을 적용한 것이다. 자회사 실적에 따라 지분가치가 늘어나는 지분법 대신 피투자회사의 성과와는 무관한 원가법으로 평가하게 되면 에버랜드 장부상 삼성생명 주식가치는 취득원가로 고정된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의 실적과 상관없이 에버랜드 자산총액에서 차지하는 삼성생명 지분가치가 항상 50% 이하로 유지돼 금융지주회사 적용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지난 5월 “계열사 소속의 회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20% 미만의 지분을 갖고 있다 해도 중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로 판단해 지분법을 계속 적용해야 한다” 고 주장한 바 있다. “또 새로 제정된 기업회계기준에 지분율 20%를 밑돌 경우에도 지분법이 적용되는 5개 기준중 하나인 ‘투자회사가 피투자회사의 재무, 영업정책에 관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임원선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를 내세워 지분법 적용을 요구” 해 왔다. 그러나 당시 회계업계 일각에서는 삼성이 새로 바뀐 회계기준에 맞춰 삼성생명 지분을 원가법으로 처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 등에서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자의적 판단일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에버랜드가 새 회계기준에 맞서 삼성생명 주식을 지분법으로 회계처리할 경우 역(逆)분식회계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원가법을 적용해야 할 주식을 지분법으로 처리하게 되면 에버랜드의 기업가치가 삼성생명 실적으로 인해 부풀려지고 이는 결국 에버랜드의 소수주주에게만 혜택을 주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에버랜드는 회계처리를 지분법에서 원가법으로 변경하면서 지난 2004년과 2003년 재무재표상의 삼성생명 투자주식 평가이익 금액을 각 3천800억원, 5천660억원 줄여 수정했다. 만약 다시 지분법을 적용하게 되면 이 금액만큼 에버랜드의 기업가치가 부풀려져 또 다른 분식회계 논란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주식을 지분법이 아닌 원가법 적용대상으로 분류한데 대해 회계업계의 대체적인 의견은 “법적으론 하자가 없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