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국내서 주춤’ 주류업계, 동남아로 눈 돌린 까닭
고물가·회식문화 축소 등 대내외적 변수 증가 영향 동남아 시장…지리적 요건, 인력확보 용이 등 장점
2023-10-25 민경식 기자
매일일보 = 민경식 기자 | 국내 주류업체들이 해외 시장에서 수익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요새로 동남아를 주목하고 있다. 동남아 시장을 글로벌 핵심기지로 낙점한 데에는 지리적 입지, 물가, 접근성, 인력확보 용이성 등이 꼽힌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이후 회식 문화와 유행채널 규모가 줄고 있는 것에 더해 일본산 수입 맥주가 강세를 보이고, 젊은세대의 취향이 위스키로 옮겨가는 등 국내 주류 기업의 경영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또한, 고물가·고금리·고환율·고유가 등 여파로 원부자재와 인건비 및 물류비 부담까지 가중돼, 제품 가격 인상 요인이 쌓일대로 쌓였다. 현재 국내 주류 시장 환경이 녹록하지 않은 만큼, 기업들은 동남아 시장을 글로벌 영향력 강화의 전초기지로 삼고 위기의 파고를 돌파하겠다는 구상을 내놓고 있다. 현지 내 K-주류 시장 상승세와 저렴한 인건비(원가 경쟁력), 현지 브랜드 및 제품 출시 가능성, 지리적 조건 등을 바탕으로 효율적인 사업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16일 싱가포르 법인이 사상 첫 해외 생산 공장을 마련하기 위해 베트남 타이빈성 그린아이파크 산업단지 사업자와 전대차 계약을 맺었다. 하이트진로는 글로벌 소주 시장 강화를 위해 지난달 싱가포르 법인을 만들었고, 싱가포르 법인은 첫번재 사업으로 베트남에 소주 공장 구축을 추진하는 것이다.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자사 소주 수출량은 연평균 약 15%씩 오름세를 보이는 가운데, 10년 뒤 해외 소주 판매량은 지난해 대비 3배 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롯데칠성음료는 최근 연매출 약 1조원 규모 필리핀펩시(PCPPI) 경영권 취득에 성공하고, 내년을 글로벌 종합음료기업 도약 원년으로 삼았다. 롯데칠성음료가 2000년대초 해외 사업을 추진하면서 필리핀 시장을 선택했다. 필리핀은 인구가 약 1억명에 이르고, 평균 연령이 20대 초중반으로 젊은세대 비율이 많은 것은 물론 높은 탄산 선호도와 열대 계절성 기후 등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는 앞으로 필리핀펩시에서 밀키스, 처음처럼 등 자체 음료 및 소주 브랜드를 현지 생산·공급하고, 이를 토대로 해외 사업 확장에 나선다. 무설탕 소주 선발주자인 무학은 업계 처음으로 해외 주류회사를 인수하는 것을 넘어 해외 첫 주류 생산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17년 베트남 주류회사 ‘빅토리’사를 거머쥔 이후 현지화된 소주 ‘좋은데이’(영문명 굿데이)를 선보이고 있다. 베트남 외에도 중국,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 대만, 일본, 미국 등 전 세계 30여 개국으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보해양조는 2020년 10월 싱가포르에 과일맛 ‘원샷소주’를 상륙시킨 데 이어 그해 11월 베트남에 수출 전용 제품 ‘아라소주’를 공개했다. 당시 현지에서 BTS와 박항서 축구대표팀 감독 등 한류 열기가 뜨거운 탓에 제품명, 맛 등을 한글로 표기했다. 또한, 소주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동남아 주류 시장에서 보해복분자주를 앞세워 성장을 꾀했다. 복분자주 동남아 수출액은 2020년 29만 달러(한화 약 3억9000만원)에서 2022년 46만 달러(약 6억1870만원)를 달성해 2년 만에 약 60% 신장했다. 이외에도, 말레이시아 시장을 겨냥한 각종 행사와 프로모션도 전개하고 있다. 명인안동소주는 지난달 15일 라오스 메콩라오수출입공사와 안동소주 동남아 시장 진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업무협약을 통해 안동소주 라오스 공장 건립, 시설·장비 구축 등 기술 지원 및 동남아시아 진출방안을 함께 다루기로 했다. 라오스는 중국,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5개국과 인접한 국가다. 특히, 2021년 중국 윈난성 쿤밍과 라오스 비엔티안을 잇는 고속철도가 개통돼 주변국 간 교역이 활발하다. 한편, 정부 당국에서도 국내 주류 세계화에 지원사격을 하고 있다. 국세청은 지난 4월 국내 전통주 및 중소 주류 제조업체의 수출 지원을 위한 민관 합동 ‘K리커(주류) 수출지원협의회’를 출범시켰다. ‘일본-사케’, ‘러시아-보드카’, ‘멕시코-테킬라’처럼 ‘한국’ 하면 바로 생각하는 주류 브랜드 개발을 하기 위함이다. 지난달에는 한국주류산업협회와 함께 수출용 주류에 한국 제품임을 홍보하기 위해 붙이는 통합 브랜드 이름을 ‘K-술(K-SUUL)’로 최종 선정했다. 업계 관계자는 “대내외적 불안 요소들이 늘어난 만큼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외 시장 진출을 꾀하는 거 같다”고 “특히 동남아 시장은 지리적 요건이나 물가 등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