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사법리스크에 발목 잡히는 K-기업
카카오·태광그룹, 경영진 사법리스크 확대…기업 안팎 부정적 기류 맴돌아 KT·삼성, 사법리스크 여파 ‘현재진행형’…경영 활동 제약·주가 불안정 여전 '새판짜기' 등 내부 전략에도 회복 쉽지 않아…뾰족한 대응 체계 없어 골머리
2023-10-25 이태민 기자
매일일보 = 이태민 기자 | 국내 산업계가 여전히 사법리스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카카오·태광그룹 등 주요 기업들의 임원진들이 크고 작은 사건에 연루되면서 기업 이미지 훼손은 물론 주력 사업과 주가 지표 등에도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기업들은 신임 대표 선출 및 조직 개편 등으로 회복을 꾀하고 있지만 주가 지표 및 내부 분위기 등이 쉽게 잡히지 않으면서 '사법리스크 후유증'에서 벗어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창업자이자 이사회 전 의장인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과 핵심 임원진에 대한 사법리스크로 ‘초유의 위기’를 맞고 있다. 금융감독원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은 최근 김 센터장과 홍은택 카카오 대표·김성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 등 주요 임원진들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지난 2월 벌어진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에서 인위적으로 시세조종을 계획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카카오 계열사의 투자를 전담하는 배재현 투자총괄 대표도 지난 19일 구속되면서 신사업 추진 및 내년도 사업 계획 수립 등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카카오의 주가는 사법리스크 발생 이후 연일 신저가를 경신하고 있다. 태광그룹도 이호진 전 회장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으면서 다시 사법리스크에 직면했다. 지난 8월 광복절 특사 복권된 지 불과 2개월 만이다.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지난 24일 이 전 회장의 자택과 서울 종로구 흥국생명 빌딩의 태광그룹 경영협의회 사무실, 경기도 용인시 태광CC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 전 회장은 태광그룹 계열사를 동원해 20억원 이상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전 회장이 특사로 복권되면서 재계에서는 그가 근시일 내에 경영 일선에 복귀, 강력한 오너십을 기반으로 태광그룹의 신사업이 다시 살아날 것으로 예측했다. 이 전 회장이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지역 케이블TV 사업자와 증권사 등을 인수해 사세를 확장해왔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또다시 횡령·배임 의혹으로 경찰의 수사선상에 오르면서 그의 경영일선 복귀에 제동이 걸렸다. 두 기업은 리스크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사태가 완전히 수습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까지 사법리스크를 겪었던 기업들도 새 대표를 선출하고 준법감시기구를 마련하는 등 조직 안정화 작업에 나섰지만 순탄치 않은 상황이다. KT는 ‘이권 카르텔’ 논란에 휘말리면서 사법리스크가 불거졌다. 지난해 11월 정부·여당이 KT 주요 임원들을 이권 카르텔로 지목하면서 차기 대표 선임 절차에 난항을 겪었다. 여기에 구현모 전 대표, 윤경림 전 사장 등 경영진들이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 의혹’에 연루되면서 사상 초유의 경영 공백으로 이어졌다. KT는 올해 초부터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며 경영 로드맵을 구체화하지 못했다. 대표 자리가 공석이었던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22.4% 감소한 4861억원으로 통신3사 중 가장 낮은 성적표를 받았다. KT는 지난달 김영섭 대표를 새 사령탑으로 올리며 6개월 만에 경영 공백을 해소했다. 하지만 ‘이권 카르텔’ 불식과 인적 쇄신, 경영 정상화가 당면 과제로 남아 있다. 김 대표는 취임 직후 일감 몰아주기 의혹에 연루된 임원들을 보직 해임하고 임금 및 단체협상을 단행하는 등 조직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역시 광복절 특사로 복권된 지 1년을 넘었음에도 여전히 사법리스크에 묶여 있다. 이 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부당 합병 과정에서 회계 부정을 지시한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돼 4년째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취임 1주년을 맞이하는 이달 27일에도 재판이 있다. 이 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소송이 장기화하면서 여전히 월 2~3차례 법원에 출석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장기 출장이나 일정 등에 제약이 따르고 있다. 만일 유죄 판결이 나올 경우 이 회장의 경영 활동에 다시 제동이 걸릴 수 있다. 문제는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삼성의 미래 사업 수립 등 과제 해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7년 미래전략실이 국정농단 사건의 근원지로 지목되면서 공식 해체된 후 3개의 태스크포스(TF)가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미래 먹거리 발굴과 육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삼성 역시 2020년 독립 기관인 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 계열사의 준법 감시를 담당하면서 리스크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미전실 해체 이후 전략·기획·인수합병 등 기능을 각 계열사에 맡기다 보니 그룹 차원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조직이 없다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최근 이찬희 준감위원장이 삼성의 컨트롤타워 복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법리스크가 해소되고 컨트롤타워가 재정립돼야 투자와 M&A 등 대형 사업에 속도를 붙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