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예견된 전세사기, 또 방치하는 정치권
2024-10-31 안광석 기자
매일일보 = 안광석 기자 | 하반기 전세사기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수원에서 발생한 전세사기 피해액은 1000억원, 대전은 2500억원으로 추정된다. 아직 통계에 잡히지 않는 피해자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피해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상반기 일명 ‘빌라왕’ 전세사기 수법은 수년간 지속된 거래절벽으로 매매가가 낮아지고 전세가가 급등해 깡통전세가 발생한 점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본인 자산은 거의 들이지 않는 갭투자 방식으로 세입자들의 전세보증금으로 주택을 매입했는데 집값이 하락해 보증금을 돌려줄 여력이 없어지자 잠적하는 방식이다. 생계형 사업자가 시황에 따라 얼마든지 빌라왕으로 변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경우 범행동기를 입증하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이 다소 애매한 점이 있었다. 상반기 빌라왕 전세사기 피해를 겪고도 정부 측에서 “형평성 문제가 대두될 수 있기 때문에 투자실패로 인한 피해를 정부가 모두 보전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수원이나 대전에서 불거진 전세사기 사례는 처음부터 조직적이고 계획적이라는 점에서 맥락이 아예 다르다. 1소유주 다세대 주택의 경우 각 세대의 근저당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현행법의 맹점을 이용해 쪼개기 대출로 세입자들을 안심시킨 뒤 사기를 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공인중개사까지 동원됐다. 재정건전성을 우려해 형평성을 운운하기에는 문제가 너무 커졌다. 전세사기 확대가 예고된 것이었다고 하면, 지금이야말로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좀 더 세밀히 귀를 기울이고 법의 무서움을 각인시켜야 할 때라는 것이다. 수원이나 대전 사례에서 확인한 것처럼 전세계약 유형이 워낙 다양하고 파생되는 사건도 많은 만큼 법을 아무리 촘촘히 만들어도 부족할 판에 머리를 맞대야 할 정치권은 정쟁으로 반년가량을 허비해 왔다. 지난 6월부터 적용된 전세사기특별법은 올해 초 빌라왕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당연히 수원이나 대전처럼 계획적인 전세사기에 당한 피해자들은 구제될 수 있는 길이 요원하다. 그나마 현행 특별법을 적용해도 실제로 구제받는 피해자는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법제도 보완 필요성은 일찍부터 제기돼 왔다. 솜방망이에 불과한 전세사기범 처벌수위 상향 및 공인중개사 자격 강화도 일찍부터 여론에서 제기됐으나, 정치권에서는 함흥차사다. 현재 전세사기 문제는 지자체별로 대응 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이런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전세사기 문제를 놓고 “지구 끝까지 추적해달라”고 주문했다. 정치권에 포탄을 던져놓고 나중에 왜 포탄이 터지도록 방치했느냐 추궁하는 꼴이다. 상반기 빌라왕 사건이 터졌을 당시 기시감이 든다. 최근 국민연금 개혁안 관련 국무회의 발언에서도 확인했듯 모든 것은 전 정부 탓이라는 꼬리표도 반드시 따라붙는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수십번 강조하고 촉구해왔지만, 대통령이나 정치권이 총선 프레임에 갇혀 이분법적 사고를 버리지 않는 한 문제는 또 다시 발생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