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스핀 오프로 미래 연다"…재계, 분사 통해 덩치 키운다
삼성전자 'C랩 스핀오프' 8주년…경쟁력 갖춘 스타트업 60여개 발족
현대차그룹 사내 스타트업 30개 매출액, 2800억·800명 이상 고용
2024-11-01 박규빈 기자
매일일보 = 박규빈 기자 | 환경·사회·지배 구조(ESG) 경영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자 국내 대기업들이 주주 가치 제고와 경영 효율을 기하고자 일부 사업부문을 독립시키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새로운 자회사를 통해 신 사업에서 전문성을 확보하면 시장 확대도 가능해 국내 대기업들이 관련 분야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들은 기존에 영위하고 있던 사업부를 분사시켜 나가고 있다. 모기업의 특정 사업부가 독립 법인이 되는 것은 '스핀 오프'라고 불린다.
기업들이 스핀 오프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부진한 사업부를 떼어내 리스크 관리를 용이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도유망한 사업부를 스핀 오프 하는 경우 분할된 자회사가 모기업을 제치고 급격한 성장세를 보일 가능성이 점쳐져서다.
2010년대에는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사업부 분할이 스핀 오프의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사내 벤처 독립형이 대세로 자리잡아가는 모양새다. 사내 벤처는 모회사의 판로를 바탕으로 자금과 경험치를 바탕으로 급속 신장을 이뤄낼 수 있고, 대기업은 출자한 스타트업의 지분을 갖게 돼 투자금 회수도 가능해진다.
삼성전자는 2012년부터 사내 벤처 육성 프로그램 'C랩 인사이드'를 운영해오고 있고, 2015년에는 이들의 우수 과제를 선정해 스타트업 창업을 지원하는 'C랩 스핀 오프' 제도를 도입했다.
삼성전자는 임직원들에게 스핀 오프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초기 사업 자금 지원, 5년 내 재입사 기회 부여 등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적극 도전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펼치고 있다. C랩 스핀오프는 올해로 8주년을 맞이했다. 그간 상당수의 사내 인재를 발굴하고, 자체 경쟁력을 갖춘 스타트업을 60여개나 발족시켰다는 설명이다.
현대자동차 스핀 오프 기업인 '포엔'은 전기 자동차 업사이클링 스타트업이다. 이곳은 2년 전 73억 수준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고, 현대차와 모빌리티의 배터리팩과 무정전 에너지 공급 장치 배터리 팩 등 메이커스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포엔은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창업자 경영 능력 △사업성 △독창성 등을 인정 받아 퍼스트 펭귄형 창업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임직원을 대상으로는 사내 스타트업 제도도 운영한다. 지금까지 사내 스타트업 30개사가 분리 독립했고, 이들의 누적 매출액은 2800억원이고 신규 인력 채용은 800명이 넘는다. 또한 전 세계 유망 스타트업 발굴 목적으로 현대차그룹은 미국·독일·이스라엘·중국·싱가포르 등 5개국에 '크래들(CRADLE)'이라는 혁신 거점을 두고 있고, 국내에는 오픈 이노베이션의 허브 역할을 맡는 '제로원(ZER01NE)'을 세웠다.
이 외에도 현대차그룹은 2017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보스턴다이내믹스·모셔널·슈퍼널 등 대규모 해외 투자를 제외하고도 200여개 이상 스타트업에 1조3000억원을 투자하는 등 신 사업 발굴에 진심을 보이고 있다. 모빌리티 분야에 7537억원, 전동화 2818억원, 커넥티비티 1262억원, 인공 지능(AI) 600억원, 자율 주행 540억원, 수소 등 에너지 253억원을 들였다.
HD현대는 사내 벤처 1호인 아비커스를 2020년 12월 선박 자율 운항 시스템의 고도화와 전문성을 기하기 위해 스핀 오프 형태로 분사시켰다. 이곳은 정기선 HD현대 사장이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는 회사로, 지난해 6월 세계 최초로 대형 선박의 태평양 횡단에 성공하는 등 첨단 항해 보조·자율 운항 솔루션 분야의 선도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제2의 아비커스를 육성하고자 HD현대는 사내 벤처 제도 '드림 큐브'에 참여할 5개 팀을 지난 7월 최종 선발했다. 향후 1년 간 이들에게 HD현대는 팀당 사업비 1억5000만원을 지원해 사업 추진을 돕고 금속 3D 프린팅이나 전장 회로 설계 등 사업 아이템을 보다 구체화해 시제품 출시·시범 서비스 런칭 등을 진행하며 사업 타당성·가능성을 타진하게 된다.
대한항공은 전용기 사업 분야를 전문화 하고자 자본금 50억원을 납입해 소형 항공기 운송업을 담당할 자회사 '케이에비에이션'을 설립했다. 운송 사업의 특성상 기재가 필요한 만큼 대한항공은 891억원 상당의 현물 출자를 단행했고, 케이에비에이션의 주식을 취득했다.
이미 헬리콥터는 케이에비에이션에 넘겼고, 총 4대였던 고정익 전용기 중 우선 2대가 넘어간다. 기종은 보잉 737-700과 봉바르디에(Bombardier) BD-700 글로벌 익스프레스 모델로, 대당 조종 인력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차후에는 전용기 사업부 전체를 케이에비에이션으로 통합하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전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