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각본 없는 예능의 주인공
2023-11-07 김철홍 자유기고가
매일일보 | 우리는 요즈음 사회 각 분야에 많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 중 방송가의 프로그램, 장르의 변화는 상상 이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며 은퇴한 스포츠 스타들은 지도자의 길을 걷거나 방송해설에 뛰어들곤 했는데 이젠 그들이 출연하지 않는 예능프로를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바야흐로 스포츠 스타들의 예능 프로그램 전성시대가 열린 셈이다.
기존 축구, 농구, 골프 등 스타플레이어 출신 아니 레전드급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인기리에 방영된 스포츠 예능이 시청률은 물론 해당 종목 저변확대 등 1석2조 이상의 크나큰 수확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후 ‘최강야구’라는 야구 예능 프로그램의 등장은 리얼리티 예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외연을 한 번 더 확장한 콘텐츠로 드라마 수준의 회당 제작비를 쏟아부어 SBS ‘스토브리그’가 좋은 각본의 드라마였다면, JTBC ‘최강야구’는 각본 없는 전문야구 예능 프로그램으로 Win or Nothing, 오직 승리만을 추구하는 최강의 야구팀 ‘최강 몬스터즈’를 탄생시켜 프로야구팀에 대적할 11번째 구단으로 전국의 야구 강팀과 양보 없는 치열한 진짜 승부를 펼치고 있다. 단장을 맡고 있는 장시원 PD는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와 같은 슈퍼스타를 합류시키고, 대규모 트라이아웃을 실시해 엔트리도 확장했다. 무엇보다 초대 이승엽 감독이 두산 베어스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2대 감독으로 다시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한국야구의 산 역사로 꼽히고 야구의 장인, 야구의 신이라 불리는 81세의 김성근 감독을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영입하여 김성근 감독의 변함없는 열정과 치열한 승부욕이 사람들에게 쏠쏠한 재미와 감동을 전해주어 스포츠 만화 같은 서사도 기대할 수 있게 되었고 한국야구를 호령하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뜨겁게 장식하고 떠났던 전설들이 유니폼을 바꿔 입고 다시 구슬땀을 흘리며 승부욕을 불태워 시청자들에겐 추억의 향수와 큰 감동을, 자신들에게는 과거의 영광 재현과 함께 야구를 널리 알리고 있다. 이와 함께 승률 7할을 달성해야 다음 시즌을 계속하고 매 10경기마다 승률 7할을 달성하지 못하면 부진한 선수를 방출한다는 공약은 프로그램 존속을 위한 전력 유지와 프로그램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시스템으로 출연자들은 선수로 나서고 실전을 통해 이기면 이기는 대로, 지면 지는 대로 그 내용과 결과를 모두 책임져야 하기에 승부에 임하는 출연자의 도전과 노력은 모두 진심이다. 반면 제작진은 본 촬영 중에 운동장 이곳저곳을 충실히 담아내는 중계외엔 게임을 진행하거나 개입할 수가 없는 것이 기존 예능과 분명히 다른 점이며, 직관 경기의 경우 시청률 하락을 우려해 관람객들의 촬영·스포 금지 등을 안내하고 있다. ‘최강야구’가 지난 시즌부터 발휘해 온 순기능은 진심으로 한국야구를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 유망주들이 대중에 소개되었고 이승엽 감독부터 코치진, 한경빈, 윤준호, 류현인, 박찬희 등과 2024 KBO리그 신인 드래프트에는 정현수, 고영우, 황영묵이 지명을 받는 등 최강 몬스터즈 소속 출연자들이 KBO리그로 진출하는 확실한 아웃풋도 한몫했고 이런 실질적인 영향력에 힘입어 시즌2에서는 독립리그, 아마 선수뿐 아니라 야구 유튜버로 활약 중인 비선출 사회인 야구 선수의 꿈까지 품게 되었다. 김성근 감독은 지도자 은퇴 후 한 방송에서 감독시절 알려지지 않은 세 번의 암 수술과 수술 후 새는 피를 막기 위해 기저귀를 차고 훈련장에 나간 놀라운 사실과 “내게 야구는 심장과도 같다. 심장이 움직여야 사람이 살 수 있듯 나는 야구가 있어야 산다”며 “내가 편해지려고 하면 절대 리더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야구에 대한 열정과 대한민국 최고 다운 소신을 밝혀 야구를 떠나 많은 사람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 감독은 처음엔 최강야구 출연을 거절했지만, 최고 스타였던 은퇴한 선수들의 뛰는 모습에서 진지함이 느껴지고 사회적으로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출연하게 됐다면서 TV 출연을 안 했다면 전국을 돌면서 초중고 선수들을 지도했을 것이라고 말했듯이 출연 중인 프로그램에서도 틈만 나면 상대 팀 선수들에게 원포인트 레슨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새 시즌이 시작되고 직관 경기를 앞두고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팀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의식과 게임에 지면 제작진 200명, 제작진 뒤에 가족들은 500명, 600명이 하루아침에 다 없어지고 최강야구는 아무것도 아니다. 시합은 상대가 프로가 되든 아마추어가 되든 관계가 없이 이겨야 된다”는 등 울림이 되는 어록을 계속해서 탄생시키기도 한다. 사실 김 감독은 과거 프로지도자 시절에도 이기면 인센티브와 연봉이 올라가고 선수들의 가족도 행복한데 이를 위해서 감독은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한편으로 김 감독은 비록 발음은 좀 어눌해도 달변가로 다양한 비유에 능하고 현상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비상하며, 팀의 전지훈련 캠프에서도 수시로 ‘정신교육’을 했는데, 이게 외부로 알려져 청와대, 국정원, 감사원, 현대자동차 등 정부 기관과 기업체 등 안 가본 곳이 없고 쓴소리하는 강사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