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ESG 공시 의무화, 2026년 이후로 연기… 기업들 체질 변화 모색
금융위, 2026년부터 ESG 공시 단계별로 의무화 유럽 “ESG 미준수 기업 규제할 것”… 글로벌 표준 따라야 ESG경영, 일부 대기업만 준수… 문화 확산 급선무
2023-11-12 이용 기자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가 2026년 이후로 연기되면서, 국내 기업들이 ESG 경영 체질 변화에 나서고 있다.
12일 정부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당초 2025년부터 도입 예정이던 ESG 공시를 2026년 이후로 연기했다. 금융위는 미국 등 주요국의 ESG 공시 의무화가 지연됐고, 국내 참고 기준인 IFRS-ISSB가 지난 6월에야 확정된 점을 고려해 공시 시점을 연기한다고 전했다. 구체적인 도입 시기는 관계부처 협의 등을 거쳐 추후 확정될 예정이다. 정부는 제도 도입 초기인 만큼, 기업들의 준비 상황을 고려하고 제재 수준을 최소화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대형 상장사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국제 동향과 국내시장 여건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대상기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는 사실상 국내 기업계에 ESG경영을 확산하겠다는 의도다, 정부도 글로벌 사회가 관련 규정을 강화함에 따라, 국내 산업계가 낙오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라 강조했다. 금융위는 "유럽연합(EU)·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ESG 공시규율을 강화하고 이를 자국 시장 발전과 보호를 위한 레버리지(지렛대)로 이용하고 있다"며 "글로벌 가치사슬에 편입돼 영향을 받는 우리 기업이 해외 주요국의 규제 강화에 적응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SG란 기업경영에 친환경(E), 사회적 책임 경영(S), 지배구조 개선(G)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미로,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지표다. ESG평가 결과는 투자자들에겐 기업 투자 의사를 결정하는 주요 요소로 작용하며, 대중에게는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기업’의 기준을 제시하는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평가 등급이 낮게 나온다면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 현재 유럽연합(EU)과 글로벌 대기업은 해당 지수를 활용해 ESG 관련 규제를 강화하고 사업 파트너를 선정하고 있다. 지난해 유럽연합(EU)은 기업에게 인권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공급망 실사 의무를 부여하고 위반 시 제재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특히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재작년 ESG 등 비재무적 요소가 취약한 기업들을 펀드 구성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 측은 공급망 ESG 실사법이 올해 독일에서부터 시행되고 내년부터 EU 전체로 확대되면서 국내외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협력업체에 ESG 실사를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실사 결과에 따라 고객사와의 거래나 계약이 중단될 수도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경제 특성상 대기업은 물론, 관계사와 하도급까지 ESG경영을 실시해야 하는 셈이다. 그러나 국내의 ESG 경영 문화는 아직 극소수의 대기업만 실천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ESG기준원이 최근 발표한 2023년도 ESG등급에 따르면, ‘탁월’을 의미하는 통합 S등급을 받은 기업은 한 곳도 없다. ‘매우 우수’인 A+를 받은 곳은 19곳이다. 기준원의 등급은 가장 높은 S부터 A+, A, B+, B, C, D 순으로 총 7개다. 환경, 사회, 지배구조 분야별로 등급을 매기며, 이를 종합해 ‘통합등급’을 산출한다. 2023년도 평가대상기업은 1049개사로, 2%도 안되는 극소수의 기업만 우수 평가를 받은 것이다. 문제는 ESG 경영은 장기간의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사실상 대기업 외에는 관련 경영 문화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 A+를 받은 기업들은 삼성, SK, 현대, 롯데의 계열사나 네이버, 포스코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이들은 ESG 공시 의무화 안건이 나오기 이전부터 이미 ESG 전담 부서를 설립하거나 글로벌 기준에 맞춰 경영 체질을 개선해 왔다. ESG경영의 대표적인 예로는 ‘친환경 공정 확산’과 ‘오너 중심 경영 문화 개편’, ‘임직원 인권 개선’ 등이 있다. 그러나 자금력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보통 탄소를 저감시키는 스마트 공장 설립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고질적인 인력난에 시달리는 탓에 노동 환경도 뒤떨어진다. 영세한 규모 탓에 전문 경영인을 중용하기도 어렵다. 지난해 기술보증기금(KIBO)이 중소기업을 대상(종사자수 10인 이상 기업 3724개)으로 저탄소・친환경 경영 관련 실태조사 결과, 탄소 중립 준비가 됐다고 응답한 업체는 3.2% 뿐이었다. 금융위 측도 "ESG 공시가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기술혁신의 디딤돌이 될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기업 경영에 부담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정부와 대기업은 중소협력사들이 ESG 경영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에 나서고 있다. 최근 동반성장위원회는 따르면 '협력사 ESG 지원사업'의 참여 대기업·공공기관이 2021년 11개에서 2023년 29개까지 늘었다고 밝혔다. 협력사 ESG 지원사업은 예산과 인력이 부족해 ESG 대응이 어려운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ESG 경영 인식 및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계획이다. 다만 주요 대기업 중에서도 ESG경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곳도 있는 만큼, 공시의무가 시작되는 2026년에도 기업계의 전반적인 ESG 수준이 급상승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ESG기준원으로부터 C등급을 받은 H제약사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과는 관계없는 내수용 산업에만 집중하는 기업 특성상, ESG에 관심이 없는 상황”이라며 “금융위의 ‘공시 의무 제재 수준을 최소화 한다’는 방침을 악용하는 기업들이 나올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