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제2의 김운용’ 되나?

대한축구협회 5대 의혹 추적

2005-09-30     권민경 기자

“협회, 대표팀에만 집중…프로축구 위기”
'정몽준 장학금' 기자 금품으로 둔갑

“정몽준 회장은 국제축구외교에만 전념하고 국내축구는 한국축구 발전을 실천할 만한 사람에게 권한을 넘겨주는 용단을 보여주길 바란다". 지난 9월 5일 열린우리당의 체육특별위원장인 안민석 의원은 지난 9월 5일 평화방송 라디오 시사프로 <열린 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당시 안 의원은 "정 회장이 만약 (협회장직 사퇴를) 주저한다면 일각에서 그동안 제기했던, 정 회장이 정치 수단으로 축구를 이용만 한다는 비판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고 '사퇴' 주장의 배경을 시사했다. 안 의원은 또 "만약 정 회장이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과거 IOC 부위원장이던 김운용과 같은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도 국제스포츠외교만 하고 국내체육은 다른 사람에게 넘겨줘야 한다는 요구를 체육계로부터 끊임없이 받았지만 이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다는 게 안 의원의 설명이다. 안 의원의 이 같은 주장의 배경에는 최근 불거지고 있는 대한축구협회와 정 회장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이 그 근간이 됐다. 지난 9월 27일 열린 문화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감사가 있었고 같은 날 밤 MBC ‘PD수첩’은 ‘회장님의 왕국, 대한축구협회’를 통해 축구협회의 감춰진 의혹과 정 회장이 협회를 정략적으로 운영하고 있음을 집중적으로 보여줬다. 양쪽에서 지적된 사안들은 한마디로 축구협회가 정 회장의 독선으로 운영되고 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축구협회 조중연 부회장이 증인으로 참석한 국정감사에서는 축구협회의 회계 부정과 공문서 위조, 또 영국계 에이전트사인 KAM과 스폰서 대행사 FC네트워크와의 커넥션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또한 현대중공업 출신의 간부급 인사가 대거 포함된 축구협회의 사조직 여부도 논란이 됐다. 이날 MBC에서 방송된 PD수첩에서도 정 회장과 축구협회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PD수첩은 전현직 기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축구협회의 언론 홍보전략, 또 정치적 목적을 띤 대표팀 우선정책 등 정 회장의 행적을 중심으로 한 축구협회의 치부를 집중 조명했다.

“축구협은 정치적 도구”

PD수첩은 정 회장 재임 12년 동안 협회에 대한 의혹이 끊이지 않았고, 이에 축구협회에 대한 의문을 풀어본다는 취지 아래 올해 초 4선 연임에 성공한 정 회장의 행적을 추적했다. PD수첩은 먼저 협회가 대표팀만 키우는 것이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로 정 회장은 지난 대선 때 대권주자로 나서면서 협회를 이용해 정치 적 야망을 표면화시키기도 했다며 접근했다. 협회가 특정한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축구와 축구인을 위한 단체가 되어야 함에도 정 회장이 대표팀에만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는 게 PD수첩의 지적이다.

신문선, 최경식 등 축구 해설위원들은 인터뷰를 통해 "협회가 온통 대표팀에만 집중한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대표팀에만 집중적으로 지원을 하다보니 프로축구가 위기를 맞고 있고 구단들이 적자를 면치 못하는데도 협회는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표선수 차출에 있어서도 국제축구연맹(FIFA)의 규정보다 빨리 프로구단에 소집을 요구하는 등 구단들의 사정은 외면한 채 대표팀만 챙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정 회장의 충신들인 협회 내부의 '현대파'와 협회 직원들간의 뿌리 깊은 적대감도 소개됐다. 한 협회 직원은 "10년 일해도 대리도 못다는 판인데 현대에서 내려온 직원들은 과장 이상급을 단다. 중요 정책도 죄다 '현대파'들한테 맡겨지는 등 주인의식이 희미해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 직원은 또 “‘현대파' 평균 연봉이 5000만 원대인데 반해 일반 채용 직원은 2000만 원대”라는 사실도 덧붙였다. 이밖에도 문제가 되고 있는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 대한 의혹도 추적했다. 전 협회 직원은 "대표팀 선임 문제도 정 회장의 지시를 받아서 뽑는 것이지 기술위원회가 뽑는 것은 아니다"라고 폭로했다. PD수첩은 또 협회 관계자들이 정 회장에 관한 좋지 않은 언론 보도가 나올까 무척 신경을 써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그 일례로 김영주 전 국제 심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협회는 장기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당일 협회 고위관계자로부터 강한 질책을 받았으며 쫓겨나다시피 했다고 전했다.

축구계 정 회장 및 축구협 비난

축구 에이전시 KAM(캄)과의 유착설도 언급됐다. 가삼현 대외협력국 국장은 "10년 동안 일하면서 공교롭게도 캄에서 추천을 받은 사람이 선임된 것이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며 "프리미어리그나 국제축구연맹(FIFA)에서도 다 아는 에이전시"라고 설명했다. PD수첩은 존 듀어든 영국 출신 축구기자가 "영국에서 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반박한 인터뷰가 함께 보도됐다. PD수첩은 협회를 향한 축구계 내외부의 비난도 전했다. 박종환 대구 FC 감독은 "밖에서는 (대한축구협회가 아니라)현대 축구협회라고 부른다"고 했고 한 협회 전 임원은 "한마디로 왕조라고 할 수 있다"며 비난을 가했다. 투명성에 큰 의혹을 받고 있는 협회의 자금 출처내역도 파헤쳐졌다. 신문선 해설위원은 협회 이사로 재직할 당시 "홍보비에 대한 질문에 협회 관계자가 무척 당혹스러워 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고 모 신문사 체육 담당 기자는 "정 회장이 적어도 2주에 한 번씩 언론사 편집국장이나 부장 등과 골프 회동을 한다"고 밝혔다. 또한 형편이 어려운 축구꿈나무에게 준다는 소위 '정몽준 장학금'이 실제로는 기자에게 금품을 건네는 식으로 흘러들어간다며 PD수첩은 '축구협회의 힘이 언론의 힘을 능가한다'라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또 정 회장이 5월까지 협회를 법인화 하겠다고 내세운 공약이 늦어지는 이유도 언급됐다. 전문가들은 법인이 되면 문제가 생길 경우 상급 기관에 감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협회가 비법인 상태로 남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제기했다. ]

축구협회 아니라 현대협회인가

한편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조 부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한 가운데 안민석, 이광철 열린 우리당 의원 등 문광위 소속 의원들이 협회의 불투명한 회계처리와 운영 등을 질타했다.

이 자리에서 의원들은 KAM과의 유착설 및 비자금 창구설, 스폰서십 대행사인 FC네트워크와의 커넥션 의혹, 역분식회계를 통한 탈루 및 비자금 조성, 협회 회장의 사조직화, 축구의 정치도구화 등 '축구협회 5대 의혹설'을 중심으로 협회를 추궁했다. 이날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의혹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회계 투명성 의혹=가장 먼저 제기된 문제점은 축구협회 재정의 투명성이었다. 안 의원은 “2003년 정산보고서에는 132억의 사업이익을 거뒀음에도 2004년 정산보고서에는 이월적립금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또 결산보고서에는 축구대표팀 용품 공급업체에서 받은 현금만이 표시됐을 뿐 물품은 전혀 반영돼있지 않다고 전했다. 안 의원은 협회의 회계장부 사정에 대해 정회장과 측근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비자금 창구설, 역분식 회계를 통한 세금탈루 등의 의혹을 주기에 충분하다“ 고 지적했다. 안 의원은 또 축구협회 휘장 사업자인 '빅터코리아'에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은 점이나 일반관리비·인건비 등이 3년 사이에 2배나 증가한 것도 추궁했다.이에 대해 조 부회장은 "대한축구협회는 매년 공인회계사에게 감사를 받아 '적정' 판정을 받아왔다"고 밝혔으며 "대표팀 용품 업체와의 물품 공급 계약은 서로 간에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기로 한 것이기 때문에 장부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 공문서 위조 제기=이 의원은 이어 2002년도와 2003년도 축구협회 총회에 모두 참석한 전형두 유문성 김휘 유인갑 등 4명의 대의원들이 총회 참석 명부에 서명한 필체가 서로 다르다며 축구협회가 서명을 위조한 뒤 대한체육회에 증빙자료로 보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조 부회장은 "이 4명은 모두 참석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총회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서명 위조에 대한 의문에 반박했다.

△현대맨 출신의 ‘사조직’화 비판=이밖에도 29명의 축구협회 과장급 이상 간부 중에 13명이 현대중공업 출신이라는 점에 대한 의혹도 있었다.

이른바 축구협회가 정몽준 회장의 사조직이 아니냐는 것이다. 안 의원과 이원이 지목한 13명의 '현대맨'은 김동대 사무총장 외에 대외협력국(가삼현 국장, 대표팀 지원부 전한진, 정재훈 과장, 국제부 고승환 부장, 이영우 과장), 동아시아연맹(김응수 차장), 홍보국(유영철 국장, 이원재 차장), 기획실(이상락 차장), 총무부(지윤락 과장), 사업국(김정만 국장, 박용수 과장) 등이다. 두 의원은 또 2006년 독일월드컵기획단의 과장급 이상 간부 9명 중 6명도 현대 출신이어서 독일 월드컵 준비도 축구인이 아닌 '현대맨'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이에 조 부회장은 "현대중공업 출신은 9명으로 알고 있으며 이들은 정 회장이 2002한일월드컵 유치를 위해 축구협회에 데려왔다"고 전하면서 "그러나 2007년 17세 이하 세계청소년축구대회 유치에 이들의 경험이 필요해 계속 협회에 남게됐다"고 밝혔다. 조 부회장은 이들이 올해 안으로 대한올림픽위원회 산하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KAM’ 에이전트와의 유착설=영국계 에이전트사인 KAM과의 유착 의혹도 제기됐다. 안 의원은 KAM을 통해 국가대표팀의 외국인 감독 영입이나 A매치가 추진돼 왔다면서 독점설을 제기했다.

그러나 조 부회장은 "KAM이 대표팀 경기를 중계한 비율은 20~30%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유럽이나 아프리카 대표팀과의 평가전을 추진할 때 경험이 많고 믿을 수 있는 에이전트를 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 FC네트워크의 독점적 지위=축구협회 스폰서쉽 대행사였던 금강기획(현대계열사) 출신 직원들이 2000년 설립한 FC네트워크와 축구협회가 유착관계에 있다는 의문점도 터져 나왔다.

안 의원과 이 의원은 “FC네트워크 설립시 축구협회의 노흥섭 전무와 김정만 사업국장이 FC네트워크의 이사와 감사로 포함됐다”며 “이런 관계가 FC네트워크로 하여금 축구협회의 스폰서십을 독점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또 이사 및 감사로 재직하고 주식까지 보유했다는 점으로 노 전무와 김 국장을 업무상 배임과 직권남용으로 인한 검찰고발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조 부회장은 "노 전무와 김 국장이 임원으로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하면서도 이와 관련한 비리는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 같은 숱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날 열린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국정감사는 축구협회의 질의에 대한 성의 없는 답변으로 의혹만 제기된 채 끝났다. 조 부회장 등 축구 의원들은 대부분의 질문에 "확인하지 못했다","나중에 자료 제출 하겠다"등으로 일관했다. 특히 이날 함께 국정감사를 받은 대한체육회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의 경우 의원들의 지적에 대한 해명 보도 자료가 즉각 제공됐으나 축구협회 관계자들은 의혹이 제기된 부분에 대해 해명하려는 별다른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