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인요한식 정치혐오'는 '혁신'이 아닌 '퇴행'이다

2024-11-12     이설아 기자
이설아

매일일보 = 이설아 기자  |  또 '혁신'이 화두다. 정당들은 굵직한 선거철이 닥치거나 지지율에 큰 위기를 겪으면, 혁신위원회를 꾸리는 레퍼토리를 수십 년째 반복하고 있다. 혁신을 위원회 설치 따위로 할 수 있다는 안일함에서인지, 당연히 '혁신위원회' 이름 붙은 위원회가 '지지율 제고'라는 제 몫을 해낸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올해도 레퍼토리는 반복된다. 더불어민주당은 김은경 혁신위를 반짝 띄웠다가 흐지부지 없앴고, 국민의힘은 인요한 혁신위를 발족시켰다. '현재 진행 중' 인요한 혁신위는 제법 이것저것 혁신안을 내놓고 있다. 이가 정치권의 관성을 이겨내고 통과될 지도 일단은 미지수지만, 통과가 돼도 문제다. 인요한식 혁신안은 대부분 '정치혐오'에 기댄 혁신안이기 때문이다. 일단 '다선의원 용퇴론'. 민주당에서는 '586 퇴진론' 등의 이름을 달고 나왔던, 지난 몇십 년간의 '혁신 단골메뉴'다. 이런 용퇴론은 한 가지를 전제로 한다. '정치를 한다'는 자체가 '사익을 추구한다'와 동의어라는 정치혐오적 해석이다. 그러니 당연히 오랫동안 정치를 한 다선의원들은 관록이 있고 경험을 물려줘야 하는 어른이 아닌, 젊은 사람들에게 빨리빨리 자리를 내줘야 하는 기득권에 불과하다. 이러니 '청년 할당'도 비슷한 맥락으로 흘러간다. 새로운 사람들이 소신이나 정치적 식견을 검증하자는 이야기는 없다. 아무나 유명한 사람들을 데려다 썼다가, 소신 없는 이들이 '사고'를 치면 "너희도 똑같았구나"로 흘러간다. 그러고선 또 다른 새로운 청년을 등용하잖다. 인요한 혁신위도 이전의 'XXX 혁신위'와 판박이처럼 청년을 들고 나왔다. 국회의원 세비와 보좌진 정원 축소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가 인당 의원 수가 전세계적으로 최하권에 가깝다던가, 의원 수가 적어지면 권력이 더욱 집중된다던가 이런 '정론'은 필요가 없다. 정치를 하는 이들은 어찌 됐든 자기 욕심으로 하는 사람이니까, 월급을 줄이거나 심지어 무급으로 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이런 논리를 전개하면서 "그럼 돈 많은 사람만 정치를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은 애써 무시한다. 시민들에게 "정치인 나쁘다"고 선동하는 것은 쉽고 간편하지만, "정치에 직접 참여하세요"하면 오히려 표가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포퓰리즘성 혁신안은 두말할 것 없이 '퇴행안'이다. 정치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인데, 정작 중요하고 필요한 의제들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회피하다 또 '퇴행위'를 발족시키는 정치권은 오늘도 반성이 없다. 과연 진짜 혁신은 언제쯤 이뤄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