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지도부 험지 출마론' 지속…고심 커지는 김기현·이재명

與는 '혁신', 野는 '지도부 희생' 명분 낙선 시 정치 생명 위기…수용 여부 불투명

2023-11-12     이태훈 기자
김기현

매일일보 = 이태훈 기자  |  여야가 내부에서 일제히 '지도부 험지 출마' 요구에 직면하면서 수용 여부를 두고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름값 있는 인물이 험지에 나서야 총선 승리의 물꼬를 틀 수 있고, 더 나아가 공천 갈등을 예방할 수 있다는 취지다. 다만 위험 부담이 크다는 점과 거부 시 역풍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고심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12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혁신'의 일환으로,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희생'을 내세우며 이같은 요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여야 모두 자당 대표의 결단을 촉구하는 분위기다. 먼저 여당 내에선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지도부 험지 출마론을 주도하고 있다. 인요한 위원장은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5차 전체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당 지도부와 중진, 윤석열 대통령 측근의 내년 총선 불출마 혹은 수도권 험지 출마와 관련해 당에 공식적으로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인 위원장은 "중진,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의 용퇴와 수도권 출마는 어느 시기를 정해서 당에 정식 안건으로 접수할 것"이라며 "어떤 형태든 최고위원회에 접수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 위원장의 지도부·다선 의원들을 향한 압박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인 위원장은 혁신위원장에 임명된 직후 김기현 대표 등 영남 다선 의원의 실명을 거론하며 이들이 내년 총선에서 험지 출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혁신위에 전권을 약속하며 힘을 실었던 김 대표는 수용 여부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김 대표는 9일 관련 질문을 받자 "모든 일에는 시기와 순서가 있다"면서 "요즘 언론 보도를 보니 너무 급발진하고 있는 것 같다. 급하게 밥을 먹으면 체하기 십상이니 잘 한번 보자"고 말을 아꼈다. 민주당에서는 비이재명계(비명계)가 이재명 대표의 험지 출마를 압박하고 있다. 이 대표가 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 대승적으로 결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명계 이원욱 의원은 지난 8일 BBS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나와 이 대표를 향해 "모든 권력을 다 거머쥐고 있어 사당화라는 이야기를 듣는 이 대표가 먼저 험지 출마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이 대표가 가장 좋은 곳에서 또다시 출마하겠다고 하면 비명계 3선 의원들 어디 다른 데로 가라는 걸 어떻게 받아들이겠나"며 "항상 도망가고 최고의 좋은 곳, 말하자면 따뜻한 아랫목을 찾아가는 사람이면 당의 통합을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김두관 의원도 지난 10일 대구·경북 중견언론인모임인 '아시아포럼21'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내년 총선에서 사즉생의 각오로 지도부가 앞장서야 한다"며 사실상 이 대표의 험지 출마를 촉구했다. 다만 친명계 주류는 이 대표에 대한 험지 출마 요구에 선을 긋고 있다. 민주당 총선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조정식 사무총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대표 험지 출마 가능성에 대해 "당내에서 그런 검토가 논의되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친명계 좌장 정성호 의원도 지난 9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이 대표가) 당대표로서 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서 어떠한 선택도 한다고 하셨으니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그게 바람직한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험지에 출마했다가 낙선하면 정치생명에 위기를 맞을 수 있는 만큼, 정치권에서는 두 대표의 험지 출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여야가 '혁신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두 대표가 공개적으로 험지 출마 요구를 거부할 수는 없을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매일일보>가 만난 여야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기반이 확실하지 않은 지역에서 벌이는 선거는 도박"이라며 "대표가 쉽사리 험지 출마를 결정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