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약탈적 불법 사금융’ 철퇴 내리되, 취약계층 보호 근본대책 강구를

2023-11-14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박근종

매일일보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 9일 금융감독원을 전격 방문 불법 사금융을 겨냥해 “법이 정한 추심 방법을 넘어선 대부 계약은 이자뿐 아니라 원금까지 그 자체가 무효”라며 “약자의 피를 빠는 악질적 범죄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죄를 평생 후회하도록 강력하게 처단하고 필요하면 법 개정과 양형 기준 상향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불법 사금융에 따른 범죄 수익은 철저히 환수하도록 하라며 광범위하고 강력한 세무조사도 지시하고 불법 추심에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적용 등도 주문했다. 경기 부진과 고금리 여파로 개인 파산이 사상 최고로 치솟는 등 민생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시의적절한 행보다. 가뜩이나 오른 고물가와 고금리로 벼랑 끝에 서서 울부짖는 취약계층을 이중, 삼중으로 약탈하고 착취하는 악의 무리에 대하여 철퇴를 내리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이기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의 금감원 방문은 12년 만의 일이다. 지난해 8월에도 윤 대통령은 “불법 사금융 척결을 위한 강력한 단속과 처벌”을 지시했다. 이에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법무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행정안전부, 방송통신위원회, 국세청, 경찰청 등 9개 기관이 ‘범정부 TF’를 구성하고 단속과 처벌에 나섰는데 지난 10월 23일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불법 사금융 특별단속 기간’을 운영한 결과 올해(1~9월) 불법 사금융 관련 검거 건수는 전년 대비 35% 증가하고, 구속 인원도 3.6배나 늘었다. 범죄 수익 보전 금액도 전 년 동기 대비 2.4배 증가했다. ‘불법 사금융 피해신고센터’의 올해(1~9월) 불법사금융 관련 신고·상담 건수는 47,187건으로 전년 동기 45,454건보다 3.8%인 1,733건이나 늘었다. 특히 불법 대부·유사수신 등 피해 신고·상담 건수가 10,062건으로 전년 대비 23.6%나 큰 폭으로 증가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같은 지시가 15개월 만에 되풀이된 것이다. 이는 ‘불법 사금융 척결’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금융 폐해가 더는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다는 해석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대출 절벽에 내몰린 서민들을 노린 악질적인 범죄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문제의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불법 사금융은 제1금융권으로 분류되는 시중은행은 물론 카드, 캐피털사 등 제2금융권까지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서민들을 대상으로 빠르게 세를 불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센터에 접수된 피해 건수는 6,784건에 달한다. 상반기 기준으로 최근 5년 중 가장 많은 수치다. 불법 사금융 피해 건수는 2019년 2,459건, 2020년 3,955건, 2021년 4,926건, 2022년 5,037건으로 꾸준히 증가하다 올해는 상반기만 7,000건에 육박할 정도로 급증했다.  범죄의 질도 매우 나빴다. 폭언, 협박은 물론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나체 사진을 요구한 사례도 있었다. 이 일당은 기간 안에 돈을 갚지 않으면 사진을 가족, 지인에게 뿌리겠다고 협박했다. 대출금을 빌미로 성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시도 때도 가리지 않는 독촉 전화 정도는 이제 양반이고 상환이 조금만 늦으면 살인적 이자를 추가로 물려 빚의 굴레를 씌운다. 악랄한 불법 채권 추심과 함께 차주를 먹잇감으로 노예화·인질화 한다. 정부는 고금리 장기화로 취약계층 대상 경제범죄가 확산할 가능성이 있어 ‘특별 단속 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며, 경제 상황에 그 책임을 돌리는 모양새다. 하지만 단속 기간에 지인 연락처를 담보로 급전이 필요한 취약계층 3,600명에게 연 5,000%의 고리 대출을 하던 일당이 최근 적발된 것이나 30만 원을 빌렸다가 1년 만에 변제액이 1,000만 원까지 불어난 경우만 봐도 단속과 엄단만으로는 불법 사금융을 근절하기는 분명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법 사채가 증가한 데는 2017년 연 27.9%에 달했던 법정 최고금리가 연 24%로 한차례 낮춘 데 이어 2021년 7월 7일부터 연 24%에서 연 20%로 4%포인트나 더 낮아진 데 따른 ‘풍선효과’의 영향도 크다. 법정 최고금리가 낮아지면 서민들이 이자 부담이 줄어 좋아해야 할 듯도 하지만 수익성이 낮아진 대부업체들이 대출 자격 기준을 더 높이게 돼 저신용 서민들은 돈 빌리기가 오히려 더 어려워져 취약계층은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훨씬 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해 7월 26일 발간한 ‘금리 인상기에 취약 계층을 포용하기 위한 법정 최고금리 운용 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조달금리가 추가로 1%포인트 더 오르면 2021년 말 기준 2금융권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사람 중 약 97만 명이 대부업이나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날 수 있다. 이들이 지고 있는 신용대출 규모는 약 9조 4,000억 원이다. 다른 대출까지 합치면 49조 6,000억 원에 이른다고 추산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빚을 많이 진 사람의 사정이 어렵다고 해서 당장 법정 최고금리를 낮추는 것도 해결책이 못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정 최고금리를 현행 연 20%에서 연 18%로 2%포인트 인하하면 약 65만 9,000명이 2금융권의 대출 거절로 대부업이나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난다. 이들이 지고 있는 다른 채무까지 합쳐 최대 33조 2,000억 원의 연체도 발생할 수 있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 폭이 커지면 피해도 함께 불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연 20%에서 연 16%로 4%포인트 법정 최고금리를 낮추면 약 108만 4,000명이 대부업이나 불법 사금융에 내몰리고 최대 55조 3,000억 원 연체가 발생할 수 있다고 KDI는 전망했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만기 연장을 통한 월 상환 부담 축소 ▷정책금융이나 재정을 통한 보조 등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제로(0) 금리 시절에 만든 20% 법정 최고금리부터 기준금리 3.5% 시대에 맞게 고쳐야 한다.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법정 최고금리를 시중금리 연동제로 바꾸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연체자에게도 채무조정권을 부여하고, 연체한 금액에만 연체 이자를 매기도록 하며, 금융사와 채권 추심회사가 추심·양도할 수 없는 채권도 규정해 채무자 보호를 강화하는 개인채무자 보호를 위한 입법도 화급하다.  한편, 대검찰청은 윤석열 대통령 지시에 따라 지난 11월 13일 서민과 취약계층을 상대로 한 불법 사금융 범죄에 강력히 대응할 것을 각급 검찰청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대검은 “불법 추심을 금지한 채권추심법을 엄격히 적용해 확인된 위법행위는 빠짐없이 기소하겠다.”라며 “강요·공갈·성폭력·개인정보 유출·명예훼손 등 불법 추심 과정에서 발생한 다른 범죄들도 철저히 규명해 엄벌하겠다.”라고 말했다. 특히 “악질적 불법 추심 행위자에 대해서는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조직적으로 여러 사람이 관여된 불법 대부업체는 ‘범죄단체’로 적극 의율(擬律)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추심을 핑계로 채무자와 그 가족에게 부당하게 접근하는 불법사채업자에게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적용하고, “100m 이내 접근금지, 전기통신 접근금지, 유치 처분, 전자장치 부착 등 잠정조치를 적극 청구하겠다.”라며, “공판단계에서는 피해자의 진술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가해자에게는 중형을 구형하는 한편 낮은 선고형에 대해 적극 항소하겠다.”라면서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보았을 경우 구조금 지급, 경제적 지원, 심리상담 등 피해자 지원에도 만전을 기하겠다.”라고 밝혔다.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으나 다행스럽다. 당연히 불법 대출 단속과 처벌 강화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하지만 불법 사금융에 내몰리게 될 수밖에 없는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방안도 함께 강구되어야 한다. 금융기관 3곳 이상에서 대출받은 다중 채무자가 448만 명으로 역대 최대인 상황에서 이들의 불법 사금융 피해를 막으려면, 정부는 서민 대상 정책금융 대폭 확대와 금융연체자 신용 회복 지원 확대를 서둘러야 한다. 특히 금융 취약계층을 위한 대출 상품의 문턱을 더 낮추고 지원 규모와 범위는 더 넓히는 실행력 있고 실효성 있는 구제방안도 함께 검토해야 할 것이다. 단속과 지원을 동시에 병행하지 않고는 불법 사채 근절은 요원하다. 또 2021년부터 연 20%에 묶여 있는 법정 최고이자율은 최근 고금리 상황을 감안하여 기준금리와 연동해 변동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최고이자를 인상하면 취약계층이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릴 여지가 늘어나며, 불법 사금융 희생자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금융 시장은 매우 복잡하다. 악질 사범에 대한 엄단은 기본이고, 금융 취약계층을 보호하면서 모럴해저드를 줄이는 등 종합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