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인 칼럼] 국가 R&D 카르텔과 의대
2024-11-16 매일일보
국가 연구개발 예산을 R&D 카르텔이라며 내년도 예산에서 5조2000억원(16.6%) 대폭 삭감했다가, 거센 반발로 국가 R&D 예산이 일부 증액될 모양이다.
R&D 카르텔은 연구개발 사업에 대한 투자는 GDP 대비 4.9%로 세계 최고인데 정작 과학기술 성과는 형편없다는 논리이다. 납득하기 어렵다. 1인당 국민소득 60달러였던 세계 최빈국(最貧國)을 반세기 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춘 민주화된 선진국으로 우뚝 일으켜 세운 것이 바로 과학기술이다.
세계 최고의 기술이 만들어지는 선진국의 연구개발 현장을 어렵사리 기웃거리던 '우리 과학자'들이 '추격형 국제협력'으로 이룩한 혁혁한 성과다.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반도체‧배터리‧디스플레이‧자동차‧조선‧가전‧석유화학 등의 산업이 모두 그렇게 성장한 결과다. LPG 운반선의 수주도 우리가 독점하고 있다.
장기화하고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최근에 다시 시작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대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는 글로벌 방위산업의 현장에서 놀라운 성과를 내는 'K-방위산업'도 사실은 과학기술의 성과다.
소총은커녕 소총의 탄환도 생산하지 못했던 우리가 이제는 미국·러시아·프랑스·중국·독일·이탈리아·영국·스페인‧이스라엘과 함께 당당하게 '10대 무기 수출 대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지난 5년간 무기 수출 점유율에 따르면 그렇다. 수출 증가율이 74%로 14%의 미국, 44%의 프랑스를 확실하게 넘어서고 있다. 2020년 20억7000만 달러였던 K-방산 수출액이 작년에는 173억 달러를 기록했다.
수출 품목과 수출국도 놀라운 수준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이제는 소총이나 포탄은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실정이다. 2001년부터 수출을 시작했던 K9 자주포(튀르키예·인도 등 8개국)를 비롯해서 K2 전차(폴란드), 레드백 장갑차(오스트레일리아), FA-50 경전투기(폴란드), 장보고 잠수함(인도네시아), 천궁II(아랍에미레이트) 등이 주요 수출 품목이다.
우리나라가 부국강병을 이루는 초석이 되었던 과학자, 연구원이 이권 카르텔로 내몰리고 이를 보고 있던 미래의 과학자, 연구원들이 흔들리고 있다.
오는 16일 치러지는 2024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고등학교 졸업생 지원자 수가 2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정부의 킬러 문항 배제 방침에 따라 반수에 뛰어든 수험생이 늘어난 영향으로 파악된다. 여기에는 의대 쏠림도 한몫했을 것이다. 반수를 포함한 재수는 상위권 이과 학생들에게 의대 진학을 위한 당연한 과정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대접받지 못하는 과학기술계를 보면서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한국 영재들의 의대 진학은 개인적으로는 합리적일지 몰라도 인적자본만이 거의 유일한 자원인 한국에서 의대 쏠림은 단순히 사회 현상이 아니다. 이제 누가 국가를 방어할 무기를 개발하고 오대양을 누빌 거대한 배를 연구하고 개발할 것인가. 과연 우리는 우주개발에 나설 수 있는 것인가.
1인당 국민소득 60달러였던 세계 최빈국(最貧國)에서 3만달러의 소득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과학기술에 대한 애정과 투자, 그리고 과학자, 연구원에 대한 존경과 대우가 있어 가능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