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인공지능 시대에 새롭게 읽는 기술철학의 고전 『에른스트 카프』

- ‘인간은 자기가 발명한 기술을 통해 새로운 자기를 발명한다’

2024-11-16     김종혁 기자

매일일보 = 김종혁 기자  |  보통 우리는 기술을 고찰할 때 유용성을 기준으로 삼는다. 쓸 만한지, 다루기 쉬운지, 잘 작동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기술도구주의 관점이다.

반면 에른스트 카프는 기술과 인간의 관계성에 주목한다. 카프에 따르면 모든 기술은 인간 신체의 복제, 즉 객관화·외부화된 인간이다. 인간은 자기 밖의 자기, 곧 기술을 경유해 비로소 자기 자신을 인식한다. 기술이 인간을 통해 진화하듯 인간은 기술을 통해 도야한다. 이 책은 기술과 인간의 공진화 관계를 밝히며 근대 기술철학의 초석을 세운 카프의 사상을 요약·소개한다. 손이나 눈 같은 신체 기관이 기술로 복제되는 과정인 ‘기관투사’부터, 인간과 기술의 깊은 관련성을 보여 주는 ‘형식적 유사성’과 ‘추상적 유사성’, 기술철학 관점으로 바라본 ‘문화’와 ‘언어’와 ‘국가’ 개념을 간추려 설명한다. 새롭고 놀라운 기술이 거의 날마다 출시되고 있지만 정작 인간과 기술의 관계에 대한 고찰은 방기되는 상황이다. 기술은 쓰이거나 혹은 버려지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과 늘 상호 작용하는 대상이다. 카프의 기술철학에서 인공지능 시대에 여전히 유의미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에른스트 카프(Ernst Kapp, 1808∼1896)
기술철학을 최초로 체계화한 독일의 철학자다. 고전문헌학을 전공하고 김나지움 교사로 활동하다가 미국으로 이민해 농장과 신문사를 경영했다. 이후 다시 독일로 돌아와 사강사로 일하며 기술철학 연구에 매진했다. 자연철학과 기술철학이라는 두 기둥으로 자신의 학문을 정립했는데, 카프에 따르면 이 둘은 모두 인간의 자기 인식에 이바지한다. 저서로는 ≪아테네 선박에 관하여≫(박사학위논문, 1830), ≪비교 일반 지질학≫(1845), ≪구성된 독재체제와 헌법적 자유≫(1849), ≪기술철학 개요≫(1877)가 있다. 주창 초반에는 활발히 논의되다가 이후 거의 망각되기에 이르렀던 카프의 독특한 기술철학 관점은 현재의 기술 논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지은이 조창오는 부산대학교 철학과 교수다. 중점 연구 분야는 예술철학과 기술철학이다. 헤겔과 베냐민의 예술철학, 분석 미학을 중점적으로 연구했으며, 이외에 사회철학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현재는 기술철학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