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전권 약속' 퇴색...與 혁신위는 이미 실패했다
2023-11-19 이태훈 기자
매일일보 = 이태훈 기자 | "인요한 위원장을 중심으로 꾸려질 혁신위원회는 구성과 활동 범위, 안건과 활동 기한 등 제반 사항에 대해 전권을 가지고 자율적·독립적인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불과 한 달 전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를 당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하며 했던 말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라는 회초리를 맞은 여당은 혁신위에 당 혁신을 일임하며 국민에게 환골탈태를 약속했다. 하지만 지금껏 정치권에 모습을 드러낸 혁신위가 당내 기득권의 반발에 좌초됐듯, 인요한 혁신위도 그 길을 그대로 답습할 것만 같다. 지도부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 등에 대한 징계 취소 내용이 담긴 '1호 혁신안'만 의결했을 뿐, 이후에는 혁신위가 내놓은 혁신안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중진 및 친윤계 험지 출마 또는 용퇴를 요구한 것에는 대상자들을 중심으로 강한 반발이 나오고 있다. 지도부는 "공식 기구에서 논의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유지하며 말을 아끼고 있지만, 지역에서 힘 좀 쓰는 의원들을 중심으로 공개 반발이 터져 나온 상황이다. 친윤계 핵심으로 평가받는 장제원 의원은 지난 11일 SNS에 자신을 지원하는 외곽조직인 여원산악회 창립 15주년 행사에 다녀왔다고 알리며 "경남 함양체육관에 버스 92대, 4200여명의 회원이 운집했다"고 세를 과시했다. 장 의원은 이 자리에서 자신의 성과를 자랑하며 회원들의 환호를 이끌어 냈다. 그러면서 "그런데 (당에서 저보고) 서울에 가란다. 저는 제 알량한 정치 인생을 연장하면서 서울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혁신위를 향한 ‘코웃음’을 넘어, 그들에게 전권을 약속한 지도부에 대한 '반기'로까지 읽힐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장 의원을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전권을 부여받은 주체인 혁신위에서 '혁신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시 조기 해산을 검토하자'는 의견이 나오자 "급발진하지 말라"며 으름장을 놨다. 김 대표는 전권(全權)의 정의에 기초해 혁신위 출범 당시 전권을 부여한 이유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국민 눈높이'에서 혁신을 완수하라는 당부가 담겨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김 대표는 스스로 출범시킨 혁신위를 보호해 주지 못할망정, 오히려 웃음거리로 전락시켰다. 현재 인요한 혁신위에게 '전권 보장 퇴색'은 '혁신 동력 상실'과 같다.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후부터는 "시간 끌기용 혁신위"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