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긴축종료 전망 나오는데…가계빚도 물가도 안 잡히는 韓

3분기 가계빚 1876조...2분기 이어 사상최대치 경신 IMF, 한국 물가상승률 상향...고금리 기조 유지 권고

2023-11-21     이광표 기자
서울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미국이 물가상승률 둔화가 확인되며 긴축 종료가 앞당겨질 거란 기대감이 나오는 반면 한국은 금리 인하 시점이 더뎌질 거란 전망이 나온다. 가계빚이 역대최대치를 경신하고 물가 둔화도 지연되고 있어서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이 다시 부활하며 가계빚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데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각종 선심성 정책이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로 올해 3분기(7∼9월) 전체 가계신용(빚)은 전분기보다 14조원 넘게 불어 또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높은 금리에도 부동산 경기 회복과 함께 주택담보대출이 17조원 이상 급증한 데다, 여행 등이 늘어나면서 카드 사용 규모도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21일 발표한 '2023년 3분기 가계신용(잠정)' 통계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875조6000억원으로 2분기 말(3월 말·1861조3000억원)보다 0.8%(14조3000억원) 많았다. 기존 기록이었던 지난해 3분기 말(1871조1000억원)을 웃도는 역대 최대 규모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보험사·대부업체·공적 금융기관 등에서 받은 대출에 결제 전 카드 사용 금액(판매신용)까지 더한 '포괄적 가계 빚(부채)'을 말한다. 가계신용은 금리인상 등 통화 긴축의 영향으로 작년 4분기(-3조6000억원)와 올해 1분기(-14조4000억원) 잇따라 뒷걸음쳤지만, 세 분기 만인 지난 2분기(+8조2000억원) 반등한 뒤 3분기에 다시 새로운 정점을 찍었다. 특히 가계대출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잔액 1049조1000억원)이 17조3000억원 급증하며 직전 분기에 이어 최대 잔액 기록을 또 경신했다. 증가 폭도 2분기(14조1000억원)보다 더 커졌다. 3분기 가계 판매신용 잔액(116조6000억원)은 신용카드사를 비롯한 여신전문회사(+2조8000억원) 위주로 2조6000억원 증가했다. 1분기(-3조3000억원)와 2분기(-5000억원) 연속 감소한 뒤 세 분기만의 반등이다. 서정석 한은 금융통계팀장은 "3분기 신용대출 등 기타 대출의 감소세는 이어졌지만, 주택 경기 회복과 함께 주택담보대출이 늘고 판매신용도 세 분기 만에 증가세로 전환되면서 전체 가계 신용 규모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가계빚은 눈덩이로 불어나고 있는데, 물가도 좀처럼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앞서 미국의 지난달 CPI(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2%까지 내려간 것과 상반된 분위기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미국의 디스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 둔화)이 가시화하자 연준이 금리 인하 시기를 앞당길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UBS는 내년 1분기,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도이치뱅크는 2분기 중 미국이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했다. 유럽 역시 경기침체로 인해 긴축 종료 시기가 더 앞당겨질 수 있다.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각각 내년 3월과 5월에 영란은행(BoE)이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달리 올 상반기부터 빠른 속도로 물가가 둔화됐던 한국은 다시 오르는 추세다. 한국의 CPI 상승률은 지난 7월 2.3%를 찍은 뒤 3개월 연속 오름세를 나타냈다. 10월 들어 물가가 다시 둔화될 거란 ‘물가 안정론’이 무색하게 지난달에는 3.8%로 튀어 오르며 미국에도 역전당했다. 국제유가 상승분이 시차를 두고 반영되며 뒤늦게 물가가 오른 것으로 분석된다. 주요 기관들도 한국의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상향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의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3.6%, 내년 물가 상승률을 2.4%로 각각 상향했다. 내년 말에 물가 안정 목표인 2%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상당 기간 고금리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IMF는 매년 회원국의 경제상황 전반을 점검한 뒤 정책을 권고하는 보고서를 낸다. IMF는 이번 보고서에서 올해 한국의 물가 상승률을 3.6%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 10월 '세계경제전망'에서 제시한 3.4%보다 0.2%포인트 높은 것이다. IMF는 물가 상승세가 지속 둔화해 내년 말에는 한은의 물가 안정 목표인 2%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면서 물가 안정을 위해 현재의 고금리 기조를 상당 기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권고했다. 섣부른 통화 완화 정책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한국의 통화정책은 적절하다는 게 IMF의 평가다. 물가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일각에서는 총선용 정책이 통화정책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씨티는 한국의 물가 둔화 속도가 더뎌지면서 기준금리 인하 시기가 내년 8월에서 10월로 늦춰질 것으로 전망했다. 김진욱 씨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총선을 앞두고 은행권의 가계대출 금리가 하락하는 등 긴축 왜곡이 지속되면 금리 인하 사이클을 지연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