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유료방송 송출수수료 갈등 '만성화 우려'…“상생안 마련 시급”
현대홈쇼핑-KT스카이라이프 송출중단 잠정 연기됐지만 갈등 최고조 대가검증협의체 가동에도 협상 ‘지지부진’…연내 타결 ‘불투명’ 유료방송·홈쇼핑업계, 실적 악화로 골머리…내년도 반복 가능성 높아 특단 대책 마련 시급…“생태계 지속 위한 상생 방안 모색해야”
매일일보 = 이태민 기자 | KT스카이라이프와 현대홈쇼핑의 송출수수료를 둘러싼 갈등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중재에 나서며 블랙아웃(송출중단)은 잠정 연기됐지만, 양사의 입장차는 첨예하다. 이와 관련 유료방송업계에서는 특단의 대책 없이는 내년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란 지적과 함께 업계 간 상생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홈쇼핑은 KT스카이라이프 방송 송출 중단 일정을 잠정 연기했다. 현대홈쇼핑은 지난 20일 공지사항을 통해 “KT스카이라이프와의 프로그램 송출 계약과 협의가 종료됐으나 과기정통부의 시정 명령에 준하는 행정지도(대가검증협의체 종료 시까지 방송 송출 중단 금지)에 따라 송출 중단 일정을 협의체 종료 이후로 잠정 연기한다”고 밝혔다. 방송 송출 중단이 연기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과기정통부는 지난 17일 대가검증협의체(협의체) 첫 회의를 열며 중재에 나섰다. 이는 지난 9월 KT스카이라이프가 과기정통부에 협의체 구성을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협의체의 운영 기간이 최대 3개월에 불과해 올해 안에 협상이 원만히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과기정통부의 홈쇼핑 방송 채널 사용계약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협의체는 가동 이후 60일간 운영되며, 필요시 30일이 추가될 수 있다.
양사의 갈등 이유는 송출수수료다. 현대홈쇼핑은 최근 송출수수료 인하와 현재의 채널 번호(현재 6번)를 티커머스보다 뒷자리로 배치해 줄 것을 요구했다. 실적 악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현재 수준의 높은 수수료를 감당하기엔 부담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KT스카이라이프는수수료 인하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대홈쇼핑에서 제시한 '다년 계약'에 대해서는 "송출수수료 계약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KT스카이라이프는 입장문을 통해 “현대홈쇼핑이 주장하는 채널번호 이동은 해당 번호와 가이드라인에 따른 협의를 진행하고 조건을 합의해야 한다”며 “다른 사업자들과의 계약이 이미 끝난 상황에서 정부의 가이드라인 위반이 우려되는 또 다른 분쟁 발생에 대한 고려 없이 일방적인 번호 변경을 수용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사는 수년간 현대홈쇼핑의 의견을 고려해 송출수수료 인상 없이 합리적 조정을 해 왔다”며 “하지만 올해에는 조정과 협의가 아닌 번호 이동만을 강요하고, 대가산정에 대한 의미 있는 산식 제공이나 협의를 회피해 가이드라인을 형해화시키는 협상만을 고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송출수수료를 놓고 대립했던 다른 유료방송사와 홈쇼핑사 간 분쟁은 대부분 소강 상태다. 대부분 업체는 협상을 마무리했거나 막바지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유료방송업계는 벌써부터 내년도 협상을 걱정하고 있다. 양측 모두 실적 부진이 이어지면서 성장이 정체된 만큼 내년에는 갈등 양상이 한층 더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에서다.
과기정통부가 최근 발표한 ‘2023년도 상반기 유료방송 가입자 수 및 시장점유율’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유료방송 가입자 수는 3634만7495명으로, 전년보다 0.27%(9만9098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홈쇼핑업계도 상황은 녹록찮다. 한국TV홈쇼핑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TV홈쇼핑 매출은 3조171억원으로 2.5% 줄었다. 그런 만큼 올해는 위성방송과 케이블TV를 상대로 송출수수료 분쟁이 진행되는 양상이지만, 내년부터는 가입자가 많은 IPTV까지 확전될 가능성도 적잖다.
유료방송업계 한 관계자는 "직전까지는 대부분 ‘블랙아웃만은 막자’는 취지로 연내 협상을 마무리하려고 했던 만큼 올해 대립 양상은 다소 이례적"이라며 "양 업계 모두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사업환경을 고려하면 내년엔 어떤 이유와 조건으로 갈등을 빚게 될지 우려스러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두 업계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합리적인 수수료 산정 기준을 마련하는 등 지금보다 적극적인 중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생태계 공멸을 막기 위해 양 사업자 간 배려를 통한 상생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유료방송업계 관계자는 “과기정통부는 강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중재를 진행하고 있지만, 특단의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송출수수료 분쟁은 만성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시기적인 측면을 감안할 필요는 있겠지만 홈쇼핑사도 요구사항만 관철하기보단 모바일·인터넷 매출 등 자료를 공개하는 등 투명하게 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