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영끌족’ 폭증에 가계 빚 역대 최대, 정교한 ‘정책 조합’에 나서야
매일일보 | 고금리 장기화 기조에도 빚을 내 집을 사는 사람이 크게 늘며 3분기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사상 최대 규모로 늘었다.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하며 올 초 주춤했던 가계 빚은 ‘영끌·빚투’ 열기가 이어지던 2021년 4분기 17조 4,000억 원 이후 가장 큰 증가 폭이자 가장 높은 수준까지 불어났다.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잡히지 않아 고금리 장기화가 불가피해진 상황에서 개인 신용의 양과 질이 모두 악화하는 모양새여서 참으로 우려스럽다. 기준금리 인상 카드가 사실상 멀어진 상황에서 막대한 규모로 늘어난 가계 빚이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될 것이란 불길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와 소비 심리가 함께 되살아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지난 11월 2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3/4분기 가계신용(잠정)’ 통계에 따르면 금융권 가계 빚이 2분기 연속 늘면서 1년 만에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가계가 은행·보험사·대부업체·공적 금융기관 등에서 받은 대출에 결제 전 카드 사용 금액(판매신용)까지 합한 ‘포괄적 가계 빚’인 3분기 가계신용 잔액은 1,875조 6,000억 원으로 2분기 말 1,861조 3,000억 원 대비 14조 3,000억 원(0.8%)이나 늘었다. 종전 최고였던 지난해 3분기 기록인 1,871조 1,000억 원을 1년 만에 갈아치운 것이다. 가계 빚이 늘어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주택담보대출이다. 고금리 환경에도 부동산 경기 회복 기대감이 커지며 올해 3분기에만 주택담보대출에 17조 3,000억 원이 몰린 데다 여행 등으로 인한 카드 사용 규모가 커지면서 전체 가계 빚은 1년 만에 최대 규모를 다시 썼다. 주택담보대출도 17조 3,000억 원이나 급증하면서 1,049조 1,000억 원으로 2분기 1,031조 8,000억 원에 이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 초 정부가 부동산 시장 경색을 막기 위해 각종 부동산 규제 완화 조치를 내놓고, 특례보금자리론 등 정책모기지와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등이 출시되면서 고금리에도 ‘빚내서 집 사자’는 기조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엇박자 정책과 집값 떠받치기가 이른바 ‘영끌 심리’를 자극하면서 집값이 오를 것이란 신호로 해석되자 실제로 전국 주택 거래량은 지난해 4분기 9만 1,000가구에서 올해 1분기 11만 9,000가구로 늘더니 2분기에는 15만 5,000가구로 증가했다. 3분기에도 14만 9,000가구로 여전히 높은 거래량을 기록 중이다. 반면 신용대출을 포함한 기타 대출은 5조 5,000억 원 줄어 8개 분기 연속 감소세를 유지했다. 신용대출 등은 새로 대출을 늘리기보다 갚아나가는 추세가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서민 고통 경감을 이유로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대출금리를 높이지 말아 줄 것을 주문하자 가계 빚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창구별로 보면 예금은행에서 가계대출이 10조 원 늘어 지난 2분기보다 증가 폭이 두 배 가까이 확대됐다. 상호금융·상호저축은행 등 비은행예금취급기관에서는 4조 8,000억 원 줄어 2분기보다 감소 폭이 줄었다. 3분기 신용대출 등 감소세는 이어졌지만 주택 경기 회복과 함께 주택담보대출이 늘고 판매신용도 세 분기 만에 증가세로 돌아서면서 전체 가계신용 규모가 커졌다. 지난 11월 22일 금융감독원 발표를 보면, 지난 9월 말 국내 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0.35%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교해 0.16%포인트 올랐다. 올해 9월 말 주택담보대출 연체율도 전 년 동기 대비 0.12%포인트 상승했다. 카드빚 돌려막기도 급증하고 있다. 올해 10월 신용카드 9개 사의 카드론 대환대출 잔액은 1조 4,903억 원으로, 직전 달인 지난 9월 1조 4,014억 원보다 6.3% 증가했고, 1년 전인 지난해 10월 1조 101억 원과 비교하면 47.5%나 늘어났다. 카드사 연체율도 2%를 넘었다. 특히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은 제도권에서 밀려나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몰리는 실정이다. 대부업체 이용자 120만 명 중 80% 정도가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밀려난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가계 빚이 늘고 있는 가운데 영세 자영업자·기업 대출까지 동시다발적으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결제은행(BIS)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영세 자영업자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392조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 들어서도 353조 원으로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분기 기업 대출잔액은 1,262조 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연체율은 0.37%로 2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3개 이상의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받은 자영업 다중채무자들의 금융기관 연체액이 1년 새 2.5배 증가하면서 13조 원을 넘어 역대 최대 수준이다. 지난 11월 22일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한 ‘시도별 자영업 다중채무자 대출 현황’에 따르면 올해 2분기(6월 말) 기준 전국 자영업 다중채무자의 전체 금융기관 대출잔액은 743조 9,000억 원에 달해 역대 최대를 나타냈다. 이는 1년 전 같은 기간의 700조 6,000억 원보다 6.2% 증가한 것으로 같은 기간 자영업 다중채무자는 3.2% 늘어난 117만 8,000명을 기록했다. 빚이 늘면서 1년 새 자영업 다중채무자들의 연체액과 연체율은 모두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이다. 이들의 올 2분기 연체액은 13조 2,000억 원으로 1년 전의 5조 2,000억 원 대비 약 2.5배나 증가했고, 연체율도 0.75%에서 2.4배인 1.78%로 급등했다. 전국 자영업 다중채무자 1인당 평균 대출액은 4억 1,800만 원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2020년 1분기 4억 3,000만 원 이후 3년 3개월 만에 가장 많은 수준이다.
빚내서 빚을 갚아야 하는 자영업 다중채무자들의 경제적 상황이 1년 사이 급격히 악화했다. 금융감독원은 “신규연체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향후 연체율의 추가적인 상승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하며, “은행 연체율의 급격한 상승 등으로 자금공급 기능이 위축되지 않도록 건전성에 대한 선제적인 관리를 강화할 것”이라며 “연체·부실채권 정리 확대와 함께 최근 거시경제 환경 등을 반영해 취약부문에 대해서는 충분한 대손충당금 적립을 유도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올해 2분기 말 기준 다중채무자 수는 448만 명에 달하고 이들 다중채무자의 평균 DSR은 61.5%다. DSR이 70% 안팎이면 최소 생계비 정도를 제외한 소득 대부분으로 원리금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 당국은 은행이 이자 장사로 돈놀이를 한다고 말로만 질타할 게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취약 차주들을 실질적으로 돕고, 은행의 건전성 대책도 미리미리 두텁게 관리해야 한다.
또한, 매년 갚아야 할 대출 원리금이 연간소득의 40%를 넘지 못하도록 DSR 규제가 적용되고 있지만, 전세대출은 이 같은 규제를 적용받지 않고 있는바 점진적으로 전세자금 대출에 DSR 규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한편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자영업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이자 부담 경감방안을 도출하고 정부는 자영업 다중채무자들의 채무상환 능력을 파악하고 살피면서 이들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의 부채를 유지하도록 유도해 나가야 한다. 금리가 1%포인트 오를 때 자영업 다중채무자의 전체 이자는 5조 2,000억 원, 1인당 평균 이자는 연 291만 원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신용회복 지원 제도와 상생금융을 적극 활용해 부실해진 개인들의 채무 재조정을 서둘러 이자 부담을 완화하거나 감면하는 등 빚 상환을 지원하는 적극적인 대책을 함께 마련하되 도덕적 해이가 유발되지 않도록 책임을 물어야 한다. 금융 부실 뇌관이 한꺼번에 터지지 않도록 촘촘한 모니터링 등으로 선제적 리스크 관리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젊은 세대가 앞으로 집을 사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높은 이자에도 ‘영끌·빚투’에 나서고 있는 현실을 유념하여 집값 상승에 대한 심리가 지나치게 확산하지 않도록 정교한 정책 조합을 통해 실질적이고 실효적인 가계 빚 감축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