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빅테크에 잠식되는 K-콘텐츠…독점 방지 전략 시급

규제 장치 없는 넷플릭스…토종 OTT·유로방송사 볼멘 소리 전문가들 "유료방송 규제 완화하고 해외 사업자 규제책 세워야"

2024-11-26     이태민 기자

매일일보 = 이태민 기자  |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 등 '빅테크 공룡'이 방송 콘텐츠를 빨아들이면서 토종 콘텐츠 기업들의 성장 정체가 심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빅테크의 독주를 막기 위한 합리적인 전략을 마련함과 동시에 방송에 대한 규제 완화를 통해 경쟁력 제고를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26일 포브스코리아와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사용자수가 포화 상태임에도 공중파나 IPTV 등 기존 플랫폼 대비 OTT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중은 더 커지고 있다. 최근 3년간 국내 OTT 시장의 사용 시간은 2020년 7월 기준 14억3446시간에서 올해 7월 현재 17억6350시간으로 3년 사이 약 23%나 증가했다. 시장 양상은 넷플릭스의 독주 체제가 굳어진 가운데 토종 OTT들이 2위 자리를 놓고 경쟁을 펼치는 모양새다. 넷플릭스의 올 7월 기준 국내 월간활성사용자수(MAU)는 1174만명으로, 2·3위 사업자인 티빙(522만명)과 쿠팡플레이(519만명)를 합친 것보다 많다. 그 사이 유료방송은 침체기를 맞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유료방송 가입자 수는 3634만7495명으로, 지난해 하반기보다 9만9098명(0.27%)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 중 인터넷TV(IPTV)는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사용자 증가 폭이 둔화되고 있다. 또한 시장조사기관 닐슨아리아나에 따르면 가구 기준 유료방송 서비스 일평균 이용시간은 2014년 534분에서 지난해 433분으로 줄어드는 등 유튜브·넷플릭스 등 ‘공룡 OTT’의 등장 이후 이용 시간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유료방송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거치면서 콘텐츠 이용시간이 늘면서 OTT로 가입자가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며 “유료방송 특성상 사람들이 TV 앞에 있어야만 하는데, 이동성 측면에서 밀린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흐름에 토종 OTT와 유료방송업계는 생존 전략을 다방면으로 모색 중이다. 국내 OTT 업체들은 충성고객을 늘리기 위해 오리지널 콘텐츠 경쟁력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콘텐츠 제작비가 나날이 상승하는 상황에 수익성이 악화하며 넷플릭스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유료방송에서 IPTV업계는 최근 인공지능(AI)와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해 이용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케이블TV(SO)와 위성방송 역시 지역 콘텐츠를 강화함과 동시에 콘텐츠 다양화에 나서는 등 경쟁력 강화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법상 사전 규제가 많아 글로벌 OTT가 주도하는 시장 변화를 따라가기 벅차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이러한 흐름에 세계 각국에서는 ‘공룡 OTT’의 콘텐츠 업계 독주를 막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온라인 스트리밍법(Bill C-11)’ 제정을 본격화하고 있으며, 미국·일본 등에서는 글로벌 OTT 플랫폼과의 대등한 경쟁을 위한 ‘콘텐츠 연합군’이 형성됐다. 캐나다 정부는 최근 스트리밍 업체의 자국 내 콘텐츠 투자를 의무화하는 ‘온라인 스트리밍법’ 세부 사항 논의에 들어갔다. 지난 4월 말 캐나다 의회에서 해당 법안이 통과됐으며, 정부 차원에서 구체적인 투자액 산정 방식을 정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에선 넷플릭스에 맞서기 위해 기존 OTT들이 서로 합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미국의 미디어그룹 WBD는 지난 5월 자사 OTT 서비스 ‘HBO맥스’(가입자 약 7400만명)와 ‘디스커버리플러스’(약 2000만명)를 통합한 거대 OTT 플랫폼 ‘맥스’를 내놨다. 운영·관리 비용을 절감하고, 1억명에 가까운 통합 OTT 가입자를 확보해 넷플릭스를 추격하겠다는 구상이다. 지난 3월 일본에선 OTT ‘U-NEXT’를 운영하는 유선 방송사업자 ‘유센’이 타사 OTT인 ‘파라비’를 인수했다. 일본 OTT 업계에서는 드라마·애니메이션 콘텐츠가 강점인 U-NEXT와 다양한 예능 콘텐츠를 보유한 파라비가 통합되며 콘텐츠 라인업이 한층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국내에서도 OTT 플랫폼과 방송사업자 사이 의무·규제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OTT는 방송사업자가 아닌 부가통신사업자로 분류되며, 유료방송에 비해 규제가 거의 없다. 반면 방송법 규제의 영향을 받는 국내 IPTV(인터넷TV)나 케이블TV 등은 준 세금처럼 방송 매출의 1.5%를 방송통신발전기금으로 납부해야 하며, 새로운 요금제를 내놓기 위한 신고 수리에만 통상 한 달이 소요된다. OTT의 경우 인터넷망을 이용하는 주문형비디오(VOD)라는 점에서 방송 심의나 규제에 있어서도 자유롭다. SO나 IPTV사업자는 공공성, 공익성, 윤리성 등을 판단기준으로 하는 강한 내용규제를 받는데, 인터넷동영상서비스사업자는 정보통신망법상 위법성을 판단기준으로 하는 제한적 내용규제를 받는다. 이에 규제를 상대적으로 덜 적용받는 넷플릭스·유튜브 등 ‘공룡 OTT’는 급속 성장했지만, ‘칸막이 규제’ 안에 갇힌 유료방송업계는 저성장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러한 현상을 타개하려면 전통 유료방송도 OTT 수준으로 정책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KISO 위원인 정경오 변호사는 “OTT에 대한 규제 강화로 방송의 경쟁력이 제고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OTT가 일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나, 방송의 경쟁력은 외부가 아닌 방송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며 "오히려 방송에 대한 규제 완화가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방송에 관한 규제 중 재허가·재승인 제도 폐지, 채널 및 편성규제, 광고규제를 혁신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디어업계 전문가는 "현재 해외 플랫폼 사업자들은 국내 사업자보다 차별을 덜 받고 있는데, 이 때문에 망 사용료 등 국내 규제를 교묘하게 피해 가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해외 사업자들이 국내 법에 저촉되도록 하는 정책을 세부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면 개정된 새로운 방송법과 전기통신사업법을 통해 규제하는 방향이 가장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