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행정전산망 ‘셧다운’과 하인리히 법칙

2024-11-27     조석근 기자
조석근

매일일보 = 조석근 기자  |  지난 25일 토요일. 행정안전부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바로 일주일 전 전국민에게 큰 불편을 끼친 행정전산망 셧다운 사태의 원인에 대한 긴급 브리핑 성격이다.

굳이 휴일을 골라 이뤄진 브리핑에서 행안부 고위 관계자들이 공개한 전산망 마비 원인은 이런 것이다. 행정망을 관리하는 행안부 산하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전산망 라우터에 문제가 생겼다. 통신선을 꽂는 포트 몇 개가 불량이라는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가정집으로 비유해보자. 집집마다 각 방의 인터넷을 연결해주는 중계기가 있다. 그 중계기에는 케이블을 꽂는 부분이 여러 개 있다. 무선 인터넷이라면 전원 케이블만 연결할 것이고 유선 인터넷이라면 각 방에서 쓰는 기기마다 선을 따서 꽂아야 한다. 그 포트가 달았든, 낡았든, 애초 불량이었든 문제가 생긴 것이다. 대규모 데이터를 처리하는 서버, 그 저장이 이뤄지는 클라우드 서비스, 시스템을 가동하는 OS 소프트웨어 등 중요 인프라상의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포트라니, 생각보다 사소한 지점이다. 정작 더 허무한 지점은 이런 것이다. 그러니까 그 포트가 왜 문제인지는 '아직' 모른다. 그 문제가 왜 전국 전산망 셧다운으로 번졌는지, 서비스 재개통까지 왜 3일이나 걸렸는지 '아직' 알 수 없다. 지난 20일 재개통 이후로도 서비스는 일시 중단되는 불안정을 보였다. 별도로 모바일 신분증 서비스가 중단되는가 하면 공공조달 창구인 나라장터 서비스 장애도 발생했다. 이것도 그 포트 때문인지, 행안부의 설명만으로는 납득이 어렵다. 그러는 사이 당정은 정부 전산시스템 조달 시장에 대기업 참여를 추진한다고 한다. 그것이 이 사태의 대책이라면 작년 카카오톡 대규모 전산장애를 부른 카카오와 SK C&C는 중소기업인가. 국내 전산 분야 중소기업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당정의 이런 시각은 과연 납득할 만한 것인가. 그런 문제제기와 별개로 지난 주말 긴급 소집된 고위 공무원들의 브리핑에 장관의 모습은 없었다. 이 풍경만큼은 익숙하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같은 날 부산 벡스코 '2023 대한민국 정부 박람회'에 참석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혁신에 동참해달라"는 디지털정부를 향한 의지가 이 장관의 이날 메시지다. 1:29:300. 대형 재난에서 자주 언급되는 하인리히 법칙은 의미심장하다. 한 번의 대형 재난이 발생하기 전까지 같은 원인의 29차례 재해가 발생한다. 그 이전도 마찬가지. 같은 원인의 300차례 경미한 사고들이 선행된다. 경미한 사고들, 일견 가벼워 보이는 문제들을 절대 방치하지 말라는 게 하인리히 법칙의 경고다. 작년 핼러윈은 악몽이었다. 희생자 159명의 유가족들이 다시 차가운 겨울을 맞고 있다. 지난 7월 오송 지하차도에서 14명이 사망했다. 그 다음달 잼버리는 세계적 망신을 자초했다. 그나마 사망자가 없어서 다행이다. 거듭되는 대형 사고의 원인은 제각각이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재해예방과 수습의 중추기관인 행정안전부는 물론 정부 각 부처의 존재감이 보이지 않는다. 책임은 실무 단위 몇몇만이 진다. 사고 전반의 원인 규명, 제도 개선은 금세 여론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재난과 사고는 늘 벌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대처하는 관계자들의 태도다. 그 태도가 무성의할수록 다음 재난은 더 빨리, 더 크게 다가온다. 남북 사이의 9·19 군사합의가 깨졌다. 경제성장률은 1%대로 추락 중이다. 더 큰 재난 속에서 국민과 정부가 시험당할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