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심각한데… 상생금융 압박에 대출문턱 낮추는 은행권
이자장사 경고한 정부 눈치에 주담대 금리 줄인하 "정부의 갈지자 행보가 대출수요 자극해" 비판도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올해 3분기 가계 빚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가운데 은행권을 상대로 한 정부의 '이자장사' 경고에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다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은행채 금리가 하락한 가운데 정부가 '상생금융'을 이유로 은행권에 금리인하 및 이자감면 등을 주문하면서 가계대출 수요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부채 증가에 이어 연체율까지 치솟으며 부실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다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을 자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가계부채 잔액이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연체율, 특히 주택담보대출 연체율도 올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가계부채가 한국경제의 뇌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부채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0.2%였다. 올해 2분기(101.7%)와 지난해 3분기(104.8%)보다 각 1.5%포인트, 4.6%포인트 떨어졌지만 조사대상 34개국 중 가장 높다.
가계부채의 심각성은 다른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한은이 발표한 2023년 3분기 가계신용 자료에 따르면 3분기 말 가계대출 잔액은 1759조1000억원으로 전분기 말 대비 11조7000억원(0.7%) 늘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대출 포함)이 같은 기간 17조3000억원(1.7%)이나 늘어난 1049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주담대를 제외한 기타대출은 이 기간 5조5000억원 줄어든 710조원으로 조사됐다.
가계대출 증가의 핵심은 부동산대출이다. 한은이 24일 발표한 ‘우리나라의 가계부채와 소득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한국의 가계대출은 소비 목적이 아니라 주택으로 대표되는 비금융자산의 취득 목적에 집중되어 있다. 보고서는 “2004~2021년 한국노동패널 자료를 사용해 우리나라 가계부채를 분석한 결과 2018년 이후 신규 부채 대부분이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었다”며 “고소득 가구가 주담대를 늘려 원리금 상환액 증가로 소비가 감소했고, 이는 소득불평등도를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가계대출 연체율도 점차 올라가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이 23일 발표한 9월말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 현황에 따르면, 9월 중 가계대출 연체율은 0.35%로 전월말 대비 0.03%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분기말에 있는 상·매각의 영향 탓이 크다. 9월 가계대출 연체율은 전년 동월 대비로는 0.16%포인트 올라갔다. 주담대 연체율은 0.24%로 전월말과 유사했는데, 이는 주담대 연체율이 가라앉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당국이 은행권에 가계대출 수요 억제를 압박하면서도 저금리 정책을 쏟아내는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가계부채가 완전히 잡히지도 않았는데 금리를 낮추면 대출수요를 자극할 수 밖에 없다"며 "서민과 직결된 경제·금융정책이 내년 '포퓰리즘'으로 전락되선 안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