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인 칼럼] 반복되는 국가 전산망 장애, 큰 것을 예고하고 있다
2024-11-30 매일일보
11월17일부터 무려 3일간 행정전산망 장애가 발생했다. 국민의 불편이 컸다. 3일간이나 국가 전산망이 정지된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이번 장애는 앞으로 더 큰 디지털 장애, 디지털 재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우리에게 알려주는 전주곡이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이 정도의 피해로 마무리되었다는 점이다. 해킹에 의한 장애가 아니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니다. 이번 장애 같은 게 자주 발생한다는 건, 언젠가 더 큰 한 방이 올 수 있다는 걸 우리에게 예고하고 있다.
국민이 접속하는 시스템이 먹통이 된 사례는 한두 번이 아니다. 올해만도 국가기관의 전산망 불통이 세 번째다. 지난 3월에는 법원 전산망이 먹통이 됐고, 6월에는 교육행정 정보 시스템인 나이스(NEIS)의 접속이 끊겨 교육 현장에 큰 혼란이 초래됐다. 약 1년 전에는 국세청 통합 전산망에 문제가 발생, 2시간 이상 전국 세무서 업무가 중단됐고 2021년에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예약 과정의 시스템 오류로 많은 이용자가 불편을 겪었다. 2018년에는 서울 KT 아현지사의 지하 통신구에서 화재가 발생, 서울과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 KT를 통한 휴대전화, 유선전화, 초고속인터넷, IPTV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행정전산망 장애 사태의 가장 비극적인 면은 아직 장애의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원인을 모르면 장애는 복구되었으나 복구되지 않은 것 같은 찜찜함이 남는다. 11월23일 조달청에 장애가 발생해 시스템이 1시간이나 또 멈췄다. 국민이 불안하게 생각하는 게 무리가 아니다.
행정안전부가 L4 스위치에 문제가 있었다고 발표했지만, 전문가들은 그 말을 별로 믿지 않는다. 스위치 고장을 바로잡는 데 며칠이 걸렸다는 게 선뜻 납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에 이러저러한 대책이 등장하지만, 원인을 모르는 데 효과적인 대책이 되기 어렵다. 재난복구(DR) 서버가 없었고 스토리지가 서버를 대신했다는데 이게 장애의 원인은 아니지만 신속한 복구를 어렵게 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정부를 구축했다. 그래서 한국인은 아무나 누리기 힘든 디지털 호사와 편리함을 만끽하고 있다. 어찌 보면 한국이니까 이런 서비스 거부 장애를 겪는 것이다. 한국은 1994년에 정보통신부를 만들었고 1996년 전자정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다른 나라보다 한국의 전자정부가 한참 앞섰기 때문에 외국에선 터지기 어려운 서비스 거부 장애가 이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
서비스 거부 장애는 국민을 짜증 나게 한다. 그런데 그 서비스 거부 강도가 높아지면 국민이 큰 피해를 보게 된다. 그래서 이번 장애를 잘 해결하고 그 경험을 녹여내 전자정부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그만큼 한국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이번 장애는 어느 정도 비극적이지만 멋진 연극으로 결말을 지어야 한다. 그 첫걸음이 장애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디지털 재난을 체계화해야 한다. 최첨단 통신, 자율주행차, 인공지능 같은 문명의 이기가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안전하지 않다면 사상누각이나 다름없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행정 전산망 전체에 대한 사전·사후 안전대책을 재점검, 재난 대응 체계를 좀 더 정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전산망의 서버 이중화나 백업 관리 등 데이터 안정성과 보안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신속한 복구 대응 체계를 마련해 국민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철저한 원인 규명을 통해 향후 유사 사고 재발을 방지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