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ELS 사태 ‘일파만파’… 금감원 검사 연장
현장조사 3일 연장해 오늘 마무리...당국, 배상기준안 준비 중
2023-12-05 이재형 기자
매일일보 = 이재형 기자 | 홍콩항생중국기업지수(홍콩H지수)와 연계한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의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면서 금융당국이 해당 상품을 가장 많이 판매한 KB국민은행에 대한 현장 조사를 연장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예상되는 손실 사태에 대해 날선 비판을 가하고 있다. 당국은 현재 손실 발생 사후 관리를 위한 ‘배상 기준안’을 검토 중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0일부터 국민은행을 현장조사하고 있는 금융감독원은 최근 조사 기간을 3영업일 연장했다. ELS는 주가지수 등의 등락에 따라 수익률이 정해지는 금융 상품이다. 2021년 1만2000대였던 홍콩H지수가 최근 5000대로 주저 앉으면서 손실 위험을 키우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ELS는 8조원이 넘는다. 국민은행이 4조7726억원으로 가장 많이 판매했고 NH농협은행(1조4833억원), 신한은행(1조3766억원), 하나은행(7526억원), 우리은행(244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이 가운데 약 30%, 3조원 규모의 손실이 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국민은행에 대한 당국의 조사는 당초 이달 1일까지 계획돼 있었지만 6일까지 조사를 이어간다. 일각에서는 당국이 조사 기간을 연장한 만큼 불완전 판매와 관련해 사안을 심층적으로 들여다 보고 있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이 원장은 ELS를 대량 판매한 금융권을 향해 날을 세우고 있다. 그는 최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저도 눈에 잘 안 읽히는게 ELS 상품 약관”이라며 “노인들이 자필서명하고 질문에 ‘네, 네’ 답변했다고 상품을 권유한 은행이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핵심은 ‘불완전판매’ 여부다. 이 원장은 “묻기도 전에 (은행이) 무지성으로 소비자 피해 (예방) 조치가 마련됐다고 운운하는 것은 자기 면피로 들린다. 자필(서명) 받았다든가, 녹취를 확보했다든가 (말)하는 게 불완전 판매 요소가 없다는 얘기 같은데, 금융소비자보호법상 적합성의 원칙과 본질적 취지를 생각하면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적합성의 원칙은 금융 소비자의 투자성향과 투자 규모 등 투자자의 상황을 확인해 가입 목적에 맞는 상품을 권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는 “고위험 상품이 은행 창구에서 고령자에 특정 시기에 많이 판매됐다는 것만으로 금소법상 적합성 원칙을 지켰는지 의심이 든다”며 “노후보장 목적으로 정기예금에 재투자하고자 하는 고령 투자자에 수십 퍼센트 원금 손실이 벌어질 수 있는 상품을 권하는 게 맞나”라고 꼬집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도 “ELS가 문제가 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상품이기 때문”이라며 “홍콩 지수가 엮인 것 보면 굉장히 위험하다. 일반적으로 80~90%의 확률로 정기예금보다 조금 (수익이) 나오지만 10~20%의 확률로 완전히 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국은 현재 ELS 사태에 대한 ‘배상 기준안’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손실이 확정되고 난 뒤 불완전 판매 피해자들에게 즉시 배상이 이뤄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다만 사태가 불거지고 난 뒤 수습하는 정부의 행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2019년 DLF 사태 당시에도 ELS는 은행에서 판매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피해자들이 주장했고, 금융감독 당국은 은행 ELS 판매에 대해 내부통제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투자자가 직접 입으로 상품과 위험성을 이해했는지 말하게 했는데, 그런 조치들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당국의 점검이 없었던 것 같다. 금감원장은 은행이 면피한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당국이 면피용 발언을 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 당국은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후 은행의 ELS 신탁 판매를 금지하려 했다. 하지만 ELS 신탁 판매 수수료 수입 급감을 우려한 은행들이 반발했고 당국은 상한(총량 규제)을 정하는 조건으로 상황을 정리했던 바 있다. 증권가에서는 알려진 손실 액수보다 더 큰 규모의 손실 발생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홍콩H지수가 어디까지 추락할지 아직 알 수 없다는 설명이다. 정인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홍콩H 지수는 연초 이후 장기 하락 추세가 진행 중이고 지금은 중장기 이평선들이 모두 저항인 상황이다”며 “더구나 지금은 완만하나마 하락 추세가 진행 중으로 아직 바닥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으며 따라서 내년 1분기부터 발생할 홍콩H 지수의 만기 상환은 수익으로 연결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라고 말했다. 홍콩H지수 ELS는 지수가 '녹인(Knock-in·통상 투자 당시 가격의 50%) 지점' 미만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원금과 미리 약속한 수익을 얻게 된다. 기초 자산 가격이 녹인으로 한번이라도 떨어진 뒤 만기에 기초자산 가격이 가입 당시보다 30~35% 넘게 떨어지면 손실이 발생하는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이다. 만기는 통상 3년인데 6개월 단위로 기초자산 가격을 평가해 조기 상환 기준이 충족되면 만기 전에 원금과 이자를 지급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