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동산 PF 절반 손실 경고음, ‘위기의 싹’ 빨리 도려내 연착륙 시켜야

2024-12-11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박근종

매일일보  |  고금리 장기화로 금융시장의 뇌관으로 꼽히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험이 커지는 가운데 부실 리스크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현실화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건설경기가 얼어붙으면서 공사가 중단돼 자금경색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부동산 PF는 크게 금융과 시공이 핵심인데 두 가지 모두 차질을 빚고 있어 여느 때보다 위기감이 크다는 게 작금의 시장 분위기다. 이에 따라 내년에는 경매와 공매 시장에 만기를 미룬 사업장이 대거 등장할 것으로 분석됐다. 최악의 경우 전국 부동산 PF 사업장 중 절반에서 손실이 날 수 있다는 암울한 관측이 나온다. 특히 총선 이후 진짜 위기가 닥칠 것으로 우려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올해 PF 대출 만기를 연장하는 방식 등으로 ‘시간 벌기’를 해왔지만,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부실 정리 및 재구조화 작업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권에서는 단기 자금(브리지론 │ Bridge Loan)을 장기 자금(본 PF)으로 전환하는 것이 날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신용평가 업계는 토지 매입 등을 위한 사업 초기대출(브리지론) 약 30조 원 중 많게는 절반가량이 손실 처리될 수 있다고 추산한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금융당국은 최근 5대 금융지주를 비롯해 건설사와 시행사, 2금융권 등 시장 참가자들과 잇따라 만나 릴레이 회의를 열고 상황 점검과 대응책 모색에 나서고 있다. 우리 경제에 폭탄을 터뜨릴 수 있는 ‘뇌관’인 PF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금융위기 상황이 닥칠 수 있음을 각별 유념해야 한다. 지난 12월 7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12월 5일 KB,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의 PF 담당 부사장들을 소집해 내년 시장 전망, 대주단 협약 진행 상황 등을 논의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듬해 PF 정책을 수립하기에 앞서 현장의 목소리, 건의 사항 등을 주고받은 자리였다”며 “부동산 PF 현황을 살펴보는 차원에서 수시로 회의를 갖고 있다.”라고 설명하고 수익성이 떨어져 돌파구를 찾기 쉽지 않은 PF 사업장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지난 12월 4일에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 KAMCO)의 ‘PF 정상화 펀드’ 운용사 5곳 관계자를 만나 집행 상황 등을 확인했다. PF 정상화 펀드는 사업장의 정상화와 재구조화를 지원하기 위해 조성됐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금융권 PF 대출 잔액은 133조 1,000억 원으로, 지난해 말 130조 3,000억 원보다 반년 만에 2조 8,000억 원 늘었고 올해 3월 말 131조 6,000억 원보다 1조 5,000억 원 늘었다. 이 중 증권사의 연체율은 6월 말 기준 17.28%까지 치솟았고, 저축은행의 연체율은 1년 새 3배로 뛰었다. 저축은행에만 부실이 집중됐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달리 이번에는 제2금융권 전반으로 부실이 번지는 모양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내년에 만기가 몰린 브리지론(Bridge Loan)이다. 브리지론은 ‘본 PF 대출’을 받기 전 중간다리를 놓아주는 개념으로, 부동산 개발사업 초기 부지를 매입할 자금이 부족하거나 시행사의 운영 자금이 부족할 경우 ‘본 PF 대출’을 받기 전 일시적으로 자금을 대여해 주는 것을 말한다. 부지도 매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금을 대출해주기 때문에 ‘본 PF 대출’보다 금리가 높지만 우선 대출을 받고, PF 대출이 승인되면 금리가 높은 브리지론을 상환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사업자들이 토지 매입 등을 위해 고금리 단기대출인 브리지론을 받은 뒤 공사 비용 상승과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착공까지 이어지지 못한 경우가 많아졌다. 사실상 사업은 하지 않고 이자만 내는 ‘좀비 사업장’이 된 것이다. 이들이 이자 부담을 버티지 못하고 한꺼번에 무너지면 돈을 빌려준 중소 증권사와 저축은행 등 금융권으로까지 위기가 번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21년 말까지 1%를 밑돌던 부동산 PF 연체율은 지난 6월 말 2.17%로 갑절 이상 늘었다. 경기 급랭과 신용 경색에 따른 건설사 등의 연쇄 도산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부동산 PF 시장은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로 극심한 위기를 겪다가 정부가 50조 원 이상의 자금 지원을 약속하면서 한 차례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이후 1년이 넘도록 여전히 금융기관의 지원에만 의존해 연명하고 있다. 당초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올해 하반기면 금리 인상 기조가 끝나고 부동산 경기도 회복될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보고 대출 만기를 연장해주며 부실을 미래로 떠넘겨 왔다. 하지만 고금리 장기화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착공과 분양이 늦어지면서 대출 이자도 못 갚는 부실 사업장만 늘어나고 있는 최악의 상황이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이 이를 틀어막고 있는 형국인데 이러한 시간 벌기식의 임시 대응은 빙족방뇨(氷足放尿)의 미봉책으로 더 이상 해결은 불가능해졌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미루기만 하다 보면 나중에 더 크게 터지기 마련이다. 경제에 정치가 개입하면 경제가 망가지고, 결국 온 국민이 피해를 본다는 사실을 각별 유념해야 한다. 지난해 말 이후 상당수 브리지론이 살얼음판을 걷다 3개월과 6개월씩 가까스로 만기 연장을 해왔던 터이기에 내년부터 잠재 부실이 줄줄이 현실화할 것을 업계 쪽은 우려하고 있다. ‘불패 신화’로 꼽혔던 서울 강남구와 용산 등 노른자위 땅에서도 브리지론 기한이익상실(EOD │ Events Of Default), 디폴트 사례가 나오자 건설업계 도미노 부도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그야말로 부동산 PF 리스크가 정국의 ‘태풍의 눈’으로 부상했다. 문제는 정작 부동산 PF 부실을 막을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부동산 PF 정상화를 지원하는 펀드 결성이 늦어져 부실 사업장을 신속하게 정리하는 ‘배드뱅크(Bad bank)’ 역할을 다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PF 시장은 그야말로 풍전등화다. 환부를 빨리 도려내는 것이 몸 전체의 감염을 막는다는 교훈을 우리는 1997년 IMF 외환위기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며 뼈저리게 체험했다. 근본적 대책 없이 대출 만기만 미뤄주다 보면 이자 부담만 누적돼 향후 더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부실 사업장이 제때 정리돼야 저렴한 토지가 시장에 다시 나와 주택 공급이 원활해지는 측면도 있다. 지금부터라도 냉철한 사업 평가를 통해 풍선에서 서서히 바람을 빼듯 사업성이 낮은 곳부터 순차적으로 정리해 나가야 한다. 금융당국은 한계기업의 옥석 가려 사업성이 있는 곳은 신규 자금 지원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살리고, 가능성이 없거나 사업성이 떨어지는 곳에 대해선 경매와 공매 처분 등을 통해 자산을 매각하고 정리를 추진하는 등 ‘위기의 싹’을 빨리 원천적으로 도려내 연착륙시켜야 한다. 부동산 PF 부실이 금융과 실물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선제적이고 질서 있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