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 압박…‘후계’ 위한 부회장제 폐지 촉각
12일, 금감원장·금융지주 이사회 의장단 간담회
CEO 선임 가이드라인 제시로 지주사 압박 나서
2024-12-11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연말 주요 금융지주사의 인사 시즌이 본격 도래한 가운데 ‘회장 승계 ’의 핵심 코스로 거론됐던 부회장직의 존폐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 정부가 출범한 뒤, 금융지주 회장 인사에 대한 이른바 ‘셀프연임’ 논란이 지속된 상황에서 일각에선 부회장직을 통해 차기 회장 후보군을 특정해오던 관행에도 제동이 걸릴 거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아울러 금융당국은 금융지주사 이사회 의장들을 불러모을 예정인데, 이 자리에서 CEO 선임 모범규준을 발표할 거로 보인다. 금융사의 지배구조 개선을 손 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2일 주요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을 만나 CEO 선임절차 개선방안 등 지배구조 관련 모범관행을 발표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 당국과 지주사 이사회 의장단은 △CEO 선임 및 승계절차 △이사회의 독립성·전문성 강화 등을 주제로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금융당국은 금융지주사 회장의 ‘셀프연임’ 등의 관행을 꾸준히 문제로 제기해왔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지난해 하반기 우리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등 주요 금융지주사 회장 인선을 시작으로 꾸준히 지주사 회장 인사와 관련해 목소리를 키워왔다. 공정하고 투명한 검증절차 없이 사실상 기존 회장의 입김에 차기 인사가 좌우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당국의 입장은 금융지주사의 현재 관행이 지속되면, CEO가 되기 위한 다양한 경험과 경력을 갖추지 못한 소위 ‘자격요건 미달’의 인물이 갑작스럽게 CEO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이날 간담회에서 발표될 ‘지배구조 모범안’ 또한 이러한 문제 의식이 반영된 내용이 대거 포함될 전망이다.
대표적으로 CEO후보군이 선정되고 해당 인물이 실제 CEO에 임명될때까지의 과정을 모두 문서화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후보군 선정 당시의 근거와 평가 내용 그리고 이후 과정을 모두 기록해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하겠다는 취지다.
현재 주요 금융지주사들은 차기 CEO선정 과정에서 CEO후보 선정 및 평가를 진행하는 ‘회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회추위)’를 운영중이다. 외부인사들을 회추위원으로 두고 내부 규정에 따라 투명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정작 회의 과정에서 필수로 남겨야 하는 회의록등 문서에는 회의 개최 일자, 참석 인원, 주요 안건 등의 사안만 기재되고 있다.
이밖에 △역량 미달 후보 추천 시 추천자 실명 공개 △현직 임기 만료 최소 3개월 전 차기 선임 절차 가동 △CEO후보군이 갖춰야 할 기본 조건 명문화 등의 내용도 이번 지배구조 모범안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바로 금융지주사의 ‘부회장’직의 존폐 여부다.
그동안 금융지주사에서 부회장직은 지주사 핵심 전략의 총괄책임자이자 사실상 차기 회장 후보군을 발굴‧육성, 경쟁을 유도하는 직책으로 여겨져온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사내 계열사 CEO로서 일정기간 경험을 쌓고 역량을 인정받은 인사들이 대부분 임기가 끝난 후 부회장직으로 승진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금융지주사 입장에서는 부회장직 운영이 안정적인 승계를 돕고, 내부적으로도 혹시 모를 ‘낙하산 인사’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방안이라는 입장이었다. 현재까지 부회장직을 운영하는 금융지주사는 KB금융과 하나금융이다. 양종희 KB금융그룹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 모두 회장 취임 직전 지주 안에서 부회장 직을 역임했다. 두 인사 모두 지주 내부에서 큰 잡음없이 회장 선임에 찬성표를 받은 바 있다.
다만, 최근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부회장직이 사실상 차기 회장 후보군을 결정한 탓에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따라서 이번 모범관행에 언급될 회장 승계절차 관련 내용 유무에 따라 금융지주사 내 부회장직의 존폐여부도 판가름 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가뜩이나 당국이 금융권을 향해 유례없는 고강도 압박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CEO인사’ 부분까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경우 금융지주 입장에서도 이를 거스르긴 어려울 거라는게 중론이다.
일단 KB금융의 경우, 부회장직 폐지 여부에 대해 숙고할 거로 보인다. 부회장 3인 중 1인이었던 양 회장이 빠진 허인·이동철 부회장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현재 부회장직이 공석인 만큼 자연스럽게 폐지수순을 밟을 수도 있지만, 윤종규 전 회장 시절 부활한 이후 분명 긍정적 역할을 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는 평가다. 하나금융의 경우 함 회장의 임기가 오는 2025년 3월 종료된다. 사실상 내년 말부터 차기 회장 선임 절차를 개시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그룹사 내 후보군 검증을 위해서라도 부회장직 운영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부회장직을 승계를 위한 코스로만 여길 순 없고 지주사별로 상황에 맞게 운영되는 직책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며 "당국이 어떤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금융사들의 고민도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