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기업에게 더 가혹한 ‘경제형벌’… 경영 악화 주범으로

검찰 법원, 중처법 유죄 여부 지나치게 쉽게 인정 기업계, 징벌적 상속세, 과도한 공정거래법 개정 요구 IMD "한국, 기업 법‧규제 경쟁력 64개 국가 중 61위"

2023-12-13     이용 기자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현행 경제 관련 법률들이 기업의 경영 활동을 악화시킨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3일 산업계에 따르면, 일선 경제 단체들은 현행 중대재해처벌법, 상속세, 공정거래법 등이 모두 기업에게 지나친 책임을 전가한다며 비판의 목소릴 냈다.

중소기업계에서 가장 논란인 법률은 과도한 상속세율과 내년 1월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되는 중처법이다. 중기중앙회는 상속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기업승계 활성화법'과 ‘중처법 유예’를 정부와 정치권에 요청하고 있으나, 노동계의 반발로 통과 여부는 미지수다.

중처법은 본래 안전 문제에 대해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해 산업재해를 줄이겠다는 취지로 시행됐다. 그러나 불명확한 의무와 과도한 처벌수준은 오히려 기업의 경영 악화에 일조하는 형국이다.

특히 최근 중처법 관련 사건에서 검찰과 법원이 기업의 안전보건확보의무 이행수준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형사책임을 묻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대한상공회의소와 법무법인 세종은 검찰이 중처법 사건 91%(32건 중 29건)에 대해 기소처분을 내렸고, 법원은 선고한 12개 사건에서 모두 형사책임을 묻는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검찰·법원이 안전보건확보의무 이행 여부에 대한 판단이 지나치게 엄격해 사업장이 안전보건확보의무를 일정 정도 이행했어도, 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사례들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법원이 쉽게 유죄를 인정한다는 의미다.

상속을 부의 세습으로 보고, 징벌적 과세를 부과하는 현행 상속세법도 중소기업계가 꼽은 대표적인 악법이다. 현재 국내 상속세법에 의하면 과세표준 금액에 따라 최대 50%(최대주주 할증 시 60%)세율이 적용된다. 이 최고세율은 OECD 국가 중 일본(55%) 다음으로 높고, OECD 평균(약 25%, 2022년 기준)의 2배 수준이다. 한국은 기업 승계 시 최대주주의 주식 가격에 20%를 가산해 최고세율 60%가 되므로 사실상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셈이다.

대기업 및 유통업계는 과도한 공정거래법으로 경쟁력을 소실하는 형국이다. 일례로 식품위생법상 손님을 끌어들이는 호객행위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앞서 지난 10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사익편취 행위를 적발해 해당 기업을 고발할 때 총수 일가도 고발하도록 하는 고발지침 개정한 바 있다.

당시 한국경제인협회, 한국무역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6개 경제 단체가 거세게 반발해 공정위는 개정안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다만 완전히 무효로 돌아간 것은 아니며, 재계 의견을 수용한 제도 개선안을 다시 마련한 뒤 최종 지침을 내놓을 예정이다. 내용에 따라 향후에도 경제계의 반발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제약바이오 업계는 불균형한 ‘리베이트 쌍벌제’로 몸살을 앓는다. 해당 법안은 리베이트를 제공한 기업과 이를 받은 의료인 모두 처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업은 과태료에 제품 판매 정지 처분을 받는 데다가 기업 이름까지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반면, 의료인은 자격 정지 수개월에 벌금 처분만 받고 끝나는 솜방망이 처벌만 이뤄졌다.

기업계 뿐 아니라 자영업자들도 불리한 법체계로 인해 일방적 손해를 보고 있다. 최근 한 식당에서 16만원 어치 음식과 술을 시켜 먹은 학생들이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았으니 영업정지 대상이라는 쪽지만 남기고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행 식품위생법상 신분증 위조·변조·도용으로 사업주가 손님이 청소년인 사실을 인지하지 못 했을 땐 행정처분을 면제받을 수 있다. 그러나 가해자가 형사처벌 대상이 아닌 미성년자라면 그 부모에게 책임을 따로 물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또 아직 숙박업계는 청소년이 업주를 속이고 혼숙하다가 적발되면, 업주가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을 받는 형편이다. 무고한 숙박업소 주인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법안은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그간 경제형벌 등 국내 기업법제 정비의 필요성이 경제계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 세계경제포럼 부설 IMD(국제경영개발대학원)의 세계경쟁력 지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한국은 ‘기업 법‧규제 경쟁력’ 부문에서 64개 국가 중 61위로 최하위권에 위치했다. 특히 한국은 2013년 32위에서 29계단 하락한 반면, 미국은 같은 기간 18위에서 12위로 6계단 상승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저성장시대 경제 활력 회복을 위한 규제 혁신 토론회'에서 "노란봉투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징벌적 상속세제, 과도한 경제형벌 규정 등 각종 노동·환경·경영 규제가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막고 기업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