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54만 고립·은둔 청년들 더는 손 놓고 방치할 때 아니다

2024-12-18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박근종

매일일보  |  지난달 취업자 수 증가 폭이 석 달 만에 다시 20만 명대로 내려앉았다. 지난 12월 13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1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2023년 11월 15세 이상 취업자는 2,869만 8,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27만 7,000명(1.0%) 증가하였고, 고용률은 63.1%로 전년 동월 대비 0.4%포인트 상승하였지만, 증가 폭에 있어선 둔화하고 있다. 

지난 7월 21만 1,000명으로 바닥을 찍은 취업자 수 증가 폭은 10월 34만 6,000명까지 확대됐지만 지난달 다시 20만 명대로 내려앉았다. 지난 8월 26만 8,000명 이후 3개월 만이다. 전년 동월 대비 증가 폭은 지난 7월 33만 3,000명에서 21만 1,000명 이후 넉 달 만에 축소됐다. 20만 명대 증가 폭이 연간 단위로 볼 때 낮은 수준은 아니라는 게 당국의 분석이다. 그러나 청년층(15~29세) 취업자와 제조업 취업자는 각각 13개월, 11개월째 줄었다. 성장동력이 급속히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낙관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경각심을 갖고 근본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문제는 60세 이상을 빼면 취업자가 증가한 게 아니라 도리어 줄었기 때문이다. 사회초년생인 20대는 4만 명 넘게 감소했다. 학업을 마치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의 서글픈 모습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다. 전체 청년층 취업자는 6만 7,000명 줄어들었다. 청년층 인구 자체가 감소한 영향도 있겠지만 전부는 아니다. 대내외 여건의 불확실성으로 기업 투자가 줄고 채용 문이 계속 닫히고 있다는 방증이다. 열악한 취업환경에서 청년들은 무기력이 더욱 심각해 가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최근 전국 4년제 대학 재학생 및 졸업(예정)자 3,224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2023년 대학생 취업인식도 조사’ 결과를 지난 11월 22일 밝혔는데, 올해도 대졸 채용시장 어려움 지속되는 가운데 전년보다 나아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라는 분위기다. 지난해 대비 올해 대졸 신규 채용 환경에 대한 대학생의 응답을 살펴보면, ▷지난해보다 어렵다(30.3%) ▷지난해와 비슷하다(25.9%) ▷지난해보다 좋다(3.6%) 순으로 나타나 청년들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 부족과 취업 기회 감소 때문에 청년들의 구직 기대가 크게 꺾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이들 10명 중 6명이 구직 기대가 낮은 소극적 구직자로 나타났다. 이들은 의례적으로 구직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거의 안함’이나 ‘쉬고 있음’에 해당했다.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는 이는 20%에 불과했다. 산업 현장에 청년들 진입이 그 정도로 힘들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어 이대로 손 놓고 방치해선 안 된다. 통계청이 지난 8월 27일 발표한 ‘경제활동인구 조사 청년층 부가 조사’에 따르면, 15~29살 청년층 고용률은 같은 기간 46.4%에서 제자리걸음 중인데다 일자리를 찾지 않고 그냥 ‘쉬었음’ 청년층이 41만 명에 달해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전체 청년 인구의 5% 수준으로 청년 20명 중 1명꼴이다. 2년 넘게 쉬었다는 청년만 10만 명에 육박했다. ‘쉬는 기간’이 길어진 청년을 장기간 방치(平放)하는 경우 이들의 고용가능성은 점점 작아지면서 잠재성장률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냥 ‘쉬었음’ 기간이 늘어나면 고용가능성이 줄고 일자리의 질도 나빠질 뿐만 아니라 고립·은둔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사회생활을 포기한 젊은이가 늘어나는 것은 일자리 부족으로 인한 취업난과 극심한 경쟁 사회에서의 심리적 부적응 등이 원인이다. 전산화·자동화 등으로 기술과 경험이 적은 젊은이들의 취업이 어려워졌다. 청년들의 취업이 늦어지게 되면 이로 인한 임금 손실과 경력 상실의 피해를 보게 되고, 이후에도 임금과 취업 기회가 줄어드는 이른바 ‘이력효과’에 빠지게 된다. ‘이력효과’는 실업률이 높고, 경제성장률이 낮은 상태가 지속하게 되면 실제 경제성장률마저 하락해 잠재성장률도 더 낮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대학 졸업 후 첫 취업이 1년 늦어지면 향후 10년간 임금은 4~8%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전국 19~39세로 고립·은둔 경험이 있는 청년만을 타켓으로 한 전국단위 첫 조사 결과를 내놓았는데 이 속엔 세상과 단절된 청년들의 고통이 그대로 묻어나 참으로 충격적이다. 전국 56,183명을 링크 접속해 33,570명이 조사에 참여했고, 21,360명이 응답을 완료했는데. ‘방에서도 안나온다’로 응답한 초위험군이  504명이나 되었다. 삶의 만족도와 정신건강이 매우 낮은 상황으로 청년 평균 6.7점을 크게 밑도는 3.7점에 그쳤다. 더구나 자살을 생각한 비율은 75.4%(8,436명 중 약 6,300명)로 전체 청년 평균 2.3%의 32배에 달했다. 사회경제의 급격한 변화와 경쟁 압력에 탈진해 긴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고립’ 상태 청년이 54만 명, 그중 거주공간에 스스로를 가둔 ‘은둔’ 상태 청년이 24만 명에 달할 걸로 정부는 추산했다. 이제 더는 개인의 문제로 방관하거나 방치할 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고립’은 사회적 관계가 현저히 적은 경우를, ‘은둔’은 사회적 관계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외출도 극히 적은 사례를 뜻한다. 이 실태조사를 보면 고립·은둔 청년은 지역별 인구 규모에 비례하여 전국적으로 고루 분포되어 있다. 여성 비율(72.3%)이 남성의 약 2.6배로 많고, 연령은 20대 후반~30대 초반 비율이 가장 많다. 고립·은둔 청년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25~34세가 대부분이고, 2명 중 1명꼴로 심리적·신체적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응답했다. 다인 가구에서 사는 비율은 70%에 달했다. 이들의 고통이 개인과 연결된 가족과 공동체의 고통일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10명 중 8명은 고립·은둔 상태를 벗어나고 싶다고 답했지만, 67%는 복귀를 시도했지만, 일상 복귀에 실패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경쟁이 극심한 입시·취업·대인관계 등에서 실패한 청년들은 자발적으로 ‘은둔’을 택하지만, 만성화되면 자기효능감이 낮아지면서 빠져나오기 어려워한다. 고립·은둔의 삶은 개인적 고통과 더불어 사회적 손실도 막심하다. 저출생·고령화를 심화할 뿐만 아니라 생산가능인구의 경제활동 참여가 줄어들면서 전반적인 사회 활력도 떨어지게 된다. 청년재단에 따르면 청년 고립·은둔을 지속 방치할 때는 사회적 비용 손실이 연간 약 7조 원에 이른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19~34세 청년 중 ‘고립 청년’은 약 54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은둔 청년’은 24만 명으로 추산된다. 청년들이 스스로를 외부와 단절시키고 있는 사회는 결단코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없다.  이들을 따뜻한 손길로 사회 품으로 끌어내야만 한다. 이것이 국가가 할 일이자 책무다. 다행히 정부는 12월 13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청년정책조정위원회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수립한 ‘고립·은둔 청년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국가 차원의 지원책으로 은둔·고립 청년을 조기에 찾아내는 상시 발굴체계를 구축하고, 고립ㆍ은둔 청년 전담 기구인 가칭 ‘청년미래센터'를 4개 시·도에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정책을 내놓기를 바란다. 청년들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려면 신뢰할 만한 지속적 지원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직장이 없는 청년, 외톨이가 되어 숨어드는 청년 문제는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이자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국가소멸을 걱정해야 할 정도의 심각한 저출산 병폐까지 앓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2월 2일(현지 시각) ‘로스 다우서트(Ross Douthat)’ 칼럼니스트가 쓴 ‘한국은 소멸하나?(Is South Korea Disappearing?)’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0.7명대로 떨어진 한국의 합계출산율을 흑사병이 돌던 중세에 빗대기도 했다. 정부와 기업은 청년세대를 품고 보듬을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의 지원 없이 기업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고 기업의 성장 없이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리 없다. 아직도 여전히 산업계 구석구석에서 기업의 숨통을 옥죄는 대못이 그대로 박혀 있을 뿐만 아니라 제조업, 유통업의 발목을 잡는 모래주머니 법안들이 수두룩하다. 서둘러 혁파해야만 한다. 

청년층의 고용불안을 자극하고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진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일자리 엇박자(Mismatch)’, 극심한 입시 경쟁, 수도권 집중 등을 해소하려는 노력도 강화해야 한다. 연구개발(R&D) 투자를 포함한 필요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지원체계도 세심하게 운용해 청년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손을 내밀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청년들이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적 풍토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높은 기대치에 부합하지 못해 실패라는 벼랑과 나락에서 스스로 회복은 요원하다며 아예 불가능하다며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과 ‘넘사벽(넘기 어려운 사차원의 벽)’으로 체념하고 좌절하는 청년세대가 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도 뒤돌아봐야 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