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비상 상황'의 진짜 책임은 어디에 있나
2024-12-19 문장원 기자
매일일보 = 문장원 기자 | 국민의힘이 '비상' 상황이라며 '비상대책위원회'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김기현 전 대표가 "우리 당이 지금 처한 모든 상황에 대한 책임은 당 대표인 저의 몫"이라며 사퇴했지만, 듣는 사람들은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게다가 김 전 대표가 사퇴해야 할 시점도 지난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수도권 위기론’을 확인한 때나,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당 지도부와 중진의 희생을 요구하던 때였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한마디로 사퇴 시기마저 실기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비상이긴 비상이다. 내부에서는 내년 총선에서 ‘이러다가 다 죽는다’는 곡소리가 심상치 않게 들린다. 충청 이북으로 모두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고, 영남에서도 TK(대구·경북)를 제외한 PK(부산‧경남)에서도 상당한 의석을 더불어민주당에 빼앗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부 심판론'이 '정부 지원론'을 앞지르고 있다. 서울 지역구 49곳 가운데 '강남 3구' 6곳을 제외한 43곳에서 민주당에 모두 밀린다는 내부 자체 보고서는 이러한 위기감에 기름을 부었다. 이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며 김 전 대표가 사퇴했다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 비상의 책임은 김 전 대표가 모두 짊어질 필요가 없었다. 비상 상황 지분 80%는 사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다. 애초부터 한 자릿수 지지율이던 김 전 대표가 '윤심의 낙점'을 받고 당 대표에 당선되면서 이러한 사태는 이미 예견됐다. 김기현 체제 9개월 동안 끊임없이 지적받은 '수직적 당정 관계'로 사실상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용산의 개입이 정점에 이른 것이 바로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다. 시나리오부터 배우 캐스팅에 연출까지 모두 용산의 책임이지만, 흥행 실패의 책임은 김 전 대표에게 돌아간 셈이다. 작금의 비상 상황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초했으면서도 국민의힘은 다시 용산을 바라보고 있다. 정확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다.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한 장관을 추대하는 데 형식적인 절차를 착착 밟고 있다. 시간을 들여 의원총회와 원외당협위원장 연석회의를 열어 의견을 수렴하지만 사실상 이미 한동훈 비대위는 기정사실로 보는 분위기다. 그 뒤에는 용산이 있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정말 비상 상황은 누가 만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