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불경기 속 심화되는 유통업계 ‘超양극화’ 현상

소매유통기업 “내년 소비시장 1.6% 성장”… 불황 우려 “가성비 소비로 돈 아껴 명품 소비”… 소비양극화 심화

2023-12-25     이용 기자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고물가 기조 장기화에 따라 소비자 소비 패턴이 '극과 극'으로 전환됐다. 초고가 명품과 가성비 상품에 수요가 쏠린 가운데, 평균 품질의 상품을 공급하는 사업장들은 도태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소매유통기업들은 내년도 경기 전망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한정된 수요를 둘러싸고 백화점과 슈퍼마켓의 소비 양극화가 심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소매유통기업 250개사를 대상으로 2024년 소비시장을 전망한 결과, 기업들은 올해 대비 1.6% 성장에 머물 것으로 집계됐다.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인 56.8%는 내년 유통시장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 이유로 소비심리 위축(66.2%), 금리 인상 및 가계부채 부담 증가(45.8%), 고물가 지속(45.8%), 원유․원자재 가격상승(26.8%), 소득․임금 불안(26.8%) 등이 꼽혀, 올해와 마찬가지로 대내외 불확실성이 영향을 미치는 형국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내년엔 영업장이 가진 자본에 따라 시장 양극화가 심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규모가 큰 영업장은 실적이 저조한 점포를 폐쇄하고 좋은 점포는 확장하며 새로운 기회를 준비하는 반면, 할인 혜택조차 제공하기 어려운 개인슈퍼는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는 설명이다. 이미 백화점 업계에서도 규모별로 매출 차이가 나는 실정이다. 김인호 비즈니스인사이트 부회장은 “백화점 상위 10개 점포가 전체 매출의 45%를 차지하고 하위 10개는 3.5%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불황이 지속됨에 따라 극한의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체리슈머’가 대세가 됐다. 이들은 보통 할인 쿠폰이 적립되는 애플리케이션과 플랫폼을 통해 저렴한 비용으로 상품을 구매한다. 가성비 시장이 각광 받고 있지만. 정작 고가-명품 시장 위축으로는 이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실제 명품 가방 수입액이 최근 4년 사이 200% 넘게 늘어난 데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에도 증가 추세기 때문이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이 관세청에서 받은 자료에 의하면, 물품 신고 가격이 200만원을 초과하는 가방 수입액은 2018년 2211억원에서 지난해 7918억원으로 258.1% 늘었다. 그동안 명품과는 거리가 멀었던 편의점들도 소비 양극화 트렌드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대기업 계열 편의점 일부는 저렴한 간편식과 함께 1억원에 달하는 주류와 고가 수입차도 선보이는 판매전략을 채택했다. 백화점 1층에는 손님들이 줄을 잇는 명품매장이, 그 아래층에는 저렴한 가격을 강조한 크리스마스·설날 선물세트가 전시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러나 영세 규모 자영업자들은 자체적으로 플랫폼을 개발할 역량이 부족한 데다가, 카카오톡이나 온라인 포털에 광고할 자금조차 없어 소비자의 관심을 받지 못한 실정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초 ‘국내 5대 소비분화 현상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고물가 및 저성장 기조 장기화 우려, 개인소비성향의 변화 등으로 가계를 중심으로 국내 민간부문의 소비 패턴이 점차 양극화 내지는 분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고물가와 경기둔화로 실질 소득이 감소한 소비자는 지출 절감을 위해 필요한 만큼만 소용량·소포장으로 구매하는 소비 전략과 더불어 사람들과 함께 구입하는 공동구매와 중고제품 구매를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절약한 소비를 바탕으로 확보한 자금을 명품이나 초고가의 서비스 이용을 위해 아낌없이 지출하는 소비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향후에도 1인 가구의 증가와 명품에 대한 인식 전환으로 비용 절감을 위한 소량의 제품구매 패턴과 초고가 소비지출 형태는 양립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