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불완전판매’ 논란…금융당국 ‘뒷북 땜질처방’ 되풀이
ELS 6조 손실 가시화에 금감원, 뒷북 정보 공개 금소법상 보상 기준 불분명...제도 보완은 뒷짐
2024-12-25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홍콩 H지수 ELS 피해 규모가 수조원대로 예상되면서 '불완전판매'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뜨거운 감자가 된 '불완전판매'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반복되는 양상에도 금융당국의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뒷북만 요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피해규모가 커질거로 예상되자 부랴부랴 은행·증권사를 상대로 불완전판매 여부와 관련해 전수 조사를 벌인 후 제도 보완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뒷북이라는 지적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이 홍콩 항셍 중국기업지수(HSCEI·홍콩 H지수)를 편입한 주가연계증권(ELS)의 손실 현황을 뒤늦게 공개했다. 손실 발생 구간(녹인·Knock-in)에 진입한 금액만 6조 2000억 원에 달하고 당장 내달부터 손실이 확정돼 피해자 발생이 예상되면서다. 내년 6월 말까지 만기를 맞는 H지수 ELS 규모는 5조 9000억 원에 이른다. 금융당국은 이제서야 투자자 손실 대응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며 긴급 대처에 나섰다. 금감원이 22일 공개한 ‘3분기 증권회사 파생결합증권 발행·운용 현황’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녹인이 발생한 홍콩 H지수 ELS 잔액은 6조 2000억 원이다. 녹인이 발생한 전체 파생결합증권 잔액(6조 8000억 원)의 91.2%에 달한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금감원은 녹인이 발생한 전체 ELS 잔액만 공개했다. 개별 지수 ELS의 녹인 현황을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홍콩 H지수 ELS의 대규모 손실 가능성이 커지고, 불완전 판매 가능성까지 지적되자 뒤늦게 세부 정보를 공개한 것이다. 당장 다음 달부터 투자자들의 손실이 확정될 상황이 닥치자 금감원이 마지 못해 홍콩 H지수 ELS의 실태를 공개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당국의 정확한 정보 공개가 늦어져 투자자들은 전체 손실 규모도 제대로 추산하지 못하고 있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 달 기준 H지수 ELS 총판매 잔액은 19조 3000억 원이다. 이 중 은행권에 판매된 금액이 15조9000억 원(82.1%)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손실이 발생한 홍콩 H지수 ELS 가입자 대다수는 2021년 고점에 투자했다 지수가 연거푸 추락하면서 조기 상환 청구권을 갖지 못했다. 녹인 기준이 없는 상품에도 홍콩 H지수 ELS가 있는 만큼 실제 손실 규모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은 H지수 ELS 손실 사태가 확산할 것으로 예상되자 뒤늦게 이날 합동 점검 회의를 개최하며 대응책을 협의했다. H지수 ELS 손실 현실화 가능성이 높은 만큼 소비자 민원·분쟁 조정, 판매 금융회사에 대한 검사·조치 등에 나서기로 하고 금감원에 ‘H지수 기반 ELS 투자자 손실 대응 TF’를 설치·운영하기로 했다. TF 팀장은 박충현 금감원 은행 담당 부원장보가 맡는다. 한편 금융당국이 가장 눈여겨보는 대목은 불완전판매 여부다. 판매 금융사가 소비자에게 해상 상품 판매 시 원금손실 가능성을 안내하고 상품 위험성을 성실하게 이행했는지를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그간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불완전판매를 근거로 손실액의 최대 80%까지 금융사가 배상 책임을 질것을 권고해왔다 그러나 금융권에서 이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낸다. 금융당국이 지난 2019년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에서 불거진 대규모 원금손실 사태를 계기로 금융상품의 불완전판매를 원천 차단하겠다며 2021년 3월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금융사들은 금소법 시행 이후 녹취 등을 포함해 다양한 내부통제 절차를 마련한 만큼 불완전판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금소법은 금융투자상품 판매 시 6대 원칙 ▲설명 의무 ▲적합성 ▲적정성 ▲불공정영업행위 금지 ▲부당권유행위 금지 ▲허위·과장광고 금지 등을 의무 규정으로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 만 65세 이상 고령투자자와 부적합투자자에게는 모든 금융투자상품 가입 시 녹취와 숙려기간 도입을 의무화했다. 특히 홍콩H지수 연계 ELS상품은 금소법 시행 이후인 2021년 이후에 판매됐고, 당시 H지수에 대한 전망이 좋아 인기가 많았다. 때문에 금융당국이 전수조사에도 불구하고 불완전판매를 가릴 명확한 기준이나 보상의 근거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금소법은 금융상품 가입 과정에서의 위법 발견 시 5년 이내에 ‘위법계약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보상 범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이에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말 은행장들과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홍콩H지수 연계 ELS 상품과 관련해 “불완전판매 제도적 보완 필요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당시 금융위원회도 관련 분쟁에 대비해 구체적인 보상 지급 범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다. 은행권의 불완전판매 사실이 발각된다 하더라도 결국 금융당국을 향한 책임론으로 번질 공산이 큰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