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벤처업계, 복수의결권 호재에도 웃지 못해

복수의결권, 까다로운 발행 조건 갖춰도 양도세 부담 장벽

2024-12-26     이용 기자
지난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벤처업계의 숙원인 복수의결권이 올해 국회를 통과한 가운데, 복잡한 적용 조건과 창업주의 세금 부담 등으로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벤처기업협회는 최근 올해 10대 이슈 중 하나로 복수의결권 주식제도 도입 및 시행을 꼽을 정도로 해당 법안 통과를 크게 환영했다. 복수의결권은 자본 부족으로 경영권까지 빼앗기는 사례가 잦았던 벤처 업계의 숙원으로, 지난 4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지난달 17일에 본격 시행됐다. 복수의결권은 1주당 최대 10개의 의결권이 부여되는 제도다. 벤처기업이 대규모의 투자 유치로 인해 창업자의 지분이 희석되더라도 창업자가 안정적인 경영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다만 법 적용 조건이 까다로워 법률 및 조세 전문가 없이는 해당 법안의 혜택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우선 일정한 요건을 갖춘 창업자가 대규모 투자유치로 인해 경영권에 영향을 받게 되는 경우에만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다. 복수의결권주식을 발행할 수 있는 특정 요건은 △비상장인 △벤처기업의 △창업주로서 △현재 회사를 경영하는 자다. 창업주란 회사 설립 시 발기인으로 참여한 경우로, 등기이사로 재직중이면서 지분 30% 이상을 소유한 최대주주(공동창업이어서 복수의 발기인이 있는 경우 이사로 재직 중인 발기인 지분을 합산해 50% 이상이면 각 공동창업자)를 의미한다. 언제나 발행이 가능한 것은 아니고, 대규모 투자유치로 벤처기업에 대한 창업주의 지분이 30%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거나, 최대주주 지위를 상실하거나 상실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등에만 발행이 가능하다. 또 복수의결권주식 발행을 위해선 발행주식총수 4분의 3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는 조건에서도 모순이 발생한다. 서울의 AI 벤처 관계자는 “해당 주식 발행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이미 주주들이 경영권을 원하는 상태일 것이다. 굶주린 호랑이들을 상대로, 생닭이 ‘다른 음식이 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설득하는 격”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발행 조건을 갖췄다 해도, 창업주에겐 큰 조세부담이 남았다. 개정안에 따르면, 창업주가 보유 중인 기존 주식을 회사에 현물 출자한 후 복수의결권 주식을 신주로 발행해야 한다. 본래 현금 납입 방식은 양도소득세 부과가 없다. 그러나 기존 주식을 매각함으로써 차익을 올리고 새 주식을 획득하면 양도소득이 발생할 수 있다. 정부 측도 양도소득 발생을 인지한 상황으로, 현재 중소벤처기업부는 복수의결권 발행 시 발생하는 양도세 부과 시기를 미루는 제도를 검토 중이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 탓에 현재 벤처 투자 한파로 관련 회사들이 어려움에 처했어도 해당 제도의 혜택을 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중기부는 올해 상반기 벤처투자액은 4조4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2% 감소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지난 2월부터 벤처캐피탈(VC) 업계의 투자 대상 기업 발굴이 급감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환경에서 창업주들은 자사 주식을 희생하며 투자금을 확보하는 중이다. 이 와중에 비상장 기업이 복수의결권주식을 보유했거나 발행 여건을 갖췄다면, 투자자 입장에선 자금을 투자 의욕이 생기기 어렵다. AI 벤처사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유망 벤처의 경영권을 송두리째 빼앗는 사례를 막기 위해 탄생한 법이니 그 취지엔 공감한다. 그러나 연구개발은 뒷전이고 법을 악용하는 사례가 자주 나타난다면, 벤처업계에 대한 투자가 전반적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