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저출산 벽 넘을 수 있는 여성의 ‘하이브리드 근무’ 적극 수용을

2023-12-27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박근종

매일일보  |  저출산·고령화에 동력을 잃은 한국이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고 ‘잠재성장률(Potential growth rate)’마저 1%대로 추락한 상황에서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은 내년 성장률을 2%대 미만으로 전망하고 있다. OECD는 1.7%를 제시해 처음으로 1%대 성장률 전망치를 내놓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2023~2027년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평균 2% 수준이지만 지금 추세가 이어지면 2050년엔 0.5%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나마 생산성이 연평균 1% 증가할 때를 가정한 수치다. 하지만 생산성이 0.7%로 떨어지기만 해도 2050년엔 잠재성장률이 0%로 추락할 것으로 KDI는 예상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40년대부터 실질 성장이 멈출 것으로 내다본 것과 궤를 같이한다.

이런 가운데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지난 10월 9일(현지 시각) 노동시장에서 성별 차이의 주요 요인을 발견한 여성 경제학자 클라우디아 골딘(Claudia Goldin) 미국 하버드대 교수를 “수세기 동안 여성의 소득과 노동시장 참여에 대한 최초의 포괄적인 설명을 제공했고, 여성 소득과 노동시장 참여 변화의 원인과 남아 있는 성별 격차의 주요 원인을 밝혔다.”라며 202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골딘 교수의 노력 등으로 성평등 지표로 많이 언급되는 것은 노동시장에서 남녀 간 성별 임금 격차다. 우리나라는 남성의 노동 참여 그래프는 포물선을 띠는 데 반해, 여성의 노동 참여 그래프는 M자형 곡선이다. 이는 육아로 인한 여성의 노동시장 이탈 현상 즉 여성의 경력단절로 보고 고민하고 있으나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올해 고용통계의 뚜렷한 특징은 30대 여성 고용률 증가다. 한국 노동시장에서 여성들이 그려온 M자형 곡선에서 하강하는 부분, 즉 경력단절의 깊은 골짜기를 만들어 온 바로 그 집단들이 이번에는 전체 고용률 증가를 견인했다. 당연히 여성의 경제 활동을 신장하는 여성 친화적 정책이 한국 경제의 유용한 신성장동력으로 여겨져 주목받고 있다. 올해 한국의 노동시장은 경기 부진에도 ‘여성’과 ‘60대 이상 고령층’이 지탱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 12월 17일 한국노동연구원은 ‘2023년 하반기 노동시장 평가와 2024년 노동시장 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노동시장은 견고했던 상반기 노동시장 상황이 하반기에도 이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우선 여성 취업의 힘이 컸다. 지난해에 경우 1~10월 평균 취업자 수 증가 폭은 남성이 45만 7,000명, 여성이 48만 3,000명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지만, 올해 여성 취업자 수 증가 폭은 34만 4,000명으로, 남성 2만 8,000명의 12배를 상회했다. 고용률도 여성은 1.4%포인트 늘어난 반면, 남성은 0.1%포인트 줄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상대적으로 여성 고용비중이 높은 서비스업 위주의 고용 증가가 지속하고 있다는 점, 30대 여성의 경제활동 진출이 활발해진 점 등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최근 서울에 온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Kristalina Georgieva)’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한국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은 2011년 49%에서 현재 55%로 6%포인트 상승했지만, 여전히 성별 격차는 선진국 중 가장 심하다.”라고 전제하고 “남녀 간 경제활동참가율 격차는 18%, 임금 격차는 31%에 이른다”라며 “이런 격차를 완화하는 문제가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려는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2021년 기준 한국의 15∼64살 성별 고용률 차이는 17.5%포인트다. OECD 회원국 평균 14.7%포인트보다 높을 뿐 아니라 OECD 38개국 중 7번째로 높다. 성별 임금 격차(중위값 기준)도 OECD 평균 11.9%의 3배에 가까운 31.1%다. 한국은 1996년 OECD 가입 이래 회원국 중 성별 임금 격차 1위라는 불명예를 26년째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이른바 결혼·임신·출산에 따른 ‘결혼 페널티’가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유엔여성기구 성평등센터는 지난 11월 24일 서울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국제노동기구(ILO)와 OECD, 유엔여성기구(UN Women) 등 국제기구 소속 전문가와 학계 관계자 등이 참여한‘성별 임금 격차 해소와 여성의 경제적 역량 강화 논의’ 정책 포럼에서 세계적으로 성별 임금 격차는 실존하고 한국은 그중 제일 심각하다는 평가다. 2021년 기준 OECD 회원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11.9%로 집계됐는데 한국은 31.1%로 OECD 회원국 중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국가로 나타났다. 성별 임금 격차를 줄이는 데 ESG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EU에는 임금 투명화 룰(Pay Transparency Rules) 같은 ‘임금 투명화’가 강조되기도 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제 30대 여성들은 ‘돌봄을 위해 경력을 포기하는 사람들’로 그려지지 않는다. 단지 미혼 여성들이 고용률 증가를 주도했을 뿐이다. 경력 유지를 열망하는 이들은 가족 만들기를 주저한다. 육아 독박과 차별에 의한 낙오에 대한 걱정과 염려 때문이다. 우리는 이 와중에도 일과 양육이 병존하고 직장과 가정이 양립하는 공존과 상생의 해법은 없는지 고심해야 한다. 눈을 돌려보면 글로벌 기업들은 새로운 근무체계에 대한 고민들이 많다. 2023년은 이른바 ‘근태(勤怠) 전쟁’으로 머리가 아팠다고 한다. 팬데믹이 물러가고 엔데믹에 들면서 재택근무를 폐지하려는 경영진과 사무실 복귀를 거부하는 직원들 사이의 줄다리기가 연중 계속 이어졌다. 지난 5월 아마존(Amazon)은 ‘주3일 사무실 근무’에 반발하며 파업에 나섰고, 구글(Google) 은 본사 인근 숙박 혜택으로 출근을 유도하는 회사 측에 ‘고맙지만, 됐어(No, thank you)’라는 밈(Meme)으로 대응했다. 놀이터처럼 꾸민 ‘꿈의 오피스’로 유명한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마저 사무실 출근을 거부하면서 ‘어디서 일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그러던 차에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근무(Hybrid Work)’ 형태로 일하는 직원이 업무 참여도, 직원 경험, 근속 의향, 포용성, 복지 만족도 등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만족도를 보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 12월 5일 경험 관리(Experience Management; XM) 분야 글로벌 기업인 ‘퀄트릭스(Qualtrics)’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4 퀄트릭스 직원 경험 트렌드 보고서(2024 Qualtrics Employee Experience Trends Report)’를 발표했다. 퀄트릭스의 이번 보고서는 한국에서 1,022명 이상의 정규직 및 시간제 근로자의 설문조사 응답을 기반으로 한 연구 결과로, 2024년 한국 직원 경험에 대한 5가지 트렌드를 강조했다.  한국은 긍정적인 직원 경험을 나타내는 5개 핵심 경험 지표 중 ▷업무 참여도, ▷기대치 이상의 경험, ▷포용성, ▷복지 만족도와 같은 4가지 항목에서 글로벌 평균보다 낮게 나타난, 반면 ▷근속 의향 지표는 69%로 글로벌 평균보다 4% 포인트 높게 나왔다. 직원의 사무실 출근 일수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조사에 따르면 재택 근무와 사무실 근무가 혼합된 하이브리드 근무 형태의 직원이 타직원보다 5개 핵심 경험 지표 중 참여도, 경험, 근속 의향, 포용성, 복지 만족도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또한 응답자들은 주 5일 사무실 출근이 아닌 이상, 사무실에 출근하는 날이 있는 것이 아예 없는 것보다 낫다고 답했다고 한다. 연차에 따른 차이도 나타났다. 1년 미만의 신입 직원이 참여도, 근속 의향, 복지 만족도, 포용성 등에서 더 낮은 수치를 보였으며, 경험에 비해 기대치가 충족된다고 응답한 비율도 낮았다. 팬데믹은 확실히 전통적 근무 방식을 흔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시차출퇴근, 재택근무 등을 통칭하는 ‘유연근무’ 제도의 올해 8월 기준 사용 비율 15.6%는 코로나가 극심했던 2년 전 16.8%에 비해 조금 하락했지만,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비해서는 약 5%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유연근무 유형 중 팬데믹 시기 가장 주목을 받았던 재택근무의 활용 비율은 올해 8월 기준 임금 노동자의 3.1%에 불과하다. 2019년 0.5%로보다는 증가했지만 2021년 5.4%에 비해서는 꽤 낮아졌다.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 경력 유지에 대한 열망 증가는 한국 사회 전환의 중요한 축이다. 다른 한편, 다양성을 지원하는 유연한 근무 방식과 노사 간 신뢰와 소통, 참여에 기반한 일터는 남녀를 떠나 누구나 원하는 변화이며 조직에도 꼭 필요한 혁신 과제다. 클로디아 골딘 교수는 “한국의 기록적 저출산율을 해결하려면 가부장제를 혁신하고 여성의 고용안정 등 일터에서 성(性)적으로 평등한 환경을 과감히 조성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소위 ‘탐욕스러운 일자리(Greedy work)’가 아니라 ‘시간 유연성이 있는 일자리’를 선택할 수 있도록 노동과 돌봄 시스템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니컬러스 블룸(Nicholas Bloom)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조선일보 WEEKLY BIZ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하이브리드 근무’가 시대의 대세라고 주장하면서도 “100% 재택근무는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라며 선을 그었다. 재택과 사무실 근무를 적절하게 병행해야만 최적의 효율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블룸 교수는 “여러 차례 현장 실험을 진행해 보니 100% 재택근무는 직원들의 고립감을 키우고, 조직 관리에 문제가 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했다. 그리고 여전히 경영진은 직원의 근면 성실함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길 원한다. 일론 머스크(Elon Musk)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재택근무는 단지 생산성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했고, 데이비드 솔로몬(David Solomon) 골드만삭스 회장도 “재택근무는 뉴노멀이 아니라 일탈일 뿐”이라고 했다.  미국경제연구소(NBER)가 지난해 발표한 ‘출산의 경제학; 새로운 시대’에 따르면 여성의 경제참여율과 출산율이 반비례로 나타난 1980년도와 달리, 2000년대 들어 여성의 노동참여율(LFP │ Labor Force Participation)이 높아질수록 출산율도 반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여성의 일과 육아·직장과 가정 양립’을 가능케 하는 요소가 곧 출산율 반등을 만드는 요인이라며, 워킹맘에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 ▷육아휴직 활성화, ▷남성의 육아 참여 확대, 육아를 마친 남녀를 위한 ▷유연한 노동시장을 전제 조건으로 내세웠다. 따라서 이제는 저출산 벽 넘을 수 있는 여성의 ‘하이브리드 근무’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때가 온 것이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