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태영건설 ‘대마불사’론 vs “혈세 낭비하지 말아야”

정부, 채권시장안정펀드 20조→30조원 확대 검토 HUG·산업은행 등 혈세 투입 현실화에 낭비 우려

2024-01-04     나광국 기자
태영건설이

매일일보 = 나광국 기자  |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정부와 건설업계는 부동산 PF발(發) 건설사 연쇄도산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일부 건설사 관계자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강력한 자구의지가 없는 기업에 혈세를 투입하는 것은 시장경제에 역행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4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일 ‘F(Finance)4’ 회의로 불리는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를 개최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태영건설 이슈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들여다봤다.

정부는 태영건설의 PF 리스크가 금융권·건설업계 전반으로 확대돼 국내 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태영건설 PF리스크가 국내 경제 전반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채안펀드의 규모를 확대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채안펀드는 금융권이 공동으로 출자해 우량 금융채와 회사채에 투자함으로써 기업의 유동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채안펀드의 운용 규모를 현행 20조원에서 30조원으로 늘리고 건설회사채 등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도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시장안정조치는 향후 100조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지난달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과 관련해 기존 85조원 규모의 시장안정 조치를 필요하면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시장변동성의 확대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필요하면 한국은행도 공개시장운영으로 유동성 지원을 뒷받침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또 정부는 태영건설의 강도 높은 자구노력을 전제로 경영 정상화를 위한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특히 태영건설이 분양한 주택의 수분양자를 위한 보호 조치도 이행한다. 태영건설이 공사하고 있는 주택사업장 중 분양이 진행된 곳은 22개 사업장(1만9869가구)이고 이중 HUG의 주택 분양보증에 가입된 곳은 14개(1만2395가구) 사업장이다. 총 보증 잔액은 약 2조원이다.

정부는 태영건설이 공사를 지속할 수 있도록 돕거나 시공사를 교체하는 등 입주가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되, 사업의 정상적인 추진이 어려운 경우 HUG의 분양보증으로 분양계약자에게 분양대금을 환급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김태준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고금리 기조가 계속되고 있고 건설 원가 역시 높은 상태로 올해 건설업의 부실은 더욱 악화할 것”이라며 “건설 경기의 반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올해 이후 건설업체의 전반적인 부실은 본격화할 것이므로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연쇄 부도 및 흑자도산이 발생하지 않도록 생태계 관리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HUG 또한 재무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 본격화된 전세사기 사태로 HUG가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 돌려준 전세보증금 규모가 치솟아서다.

지난 2022년 13년만에 적자 전환한 HUG는 지난해 1~8월 누적 순손실 1조8761억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HUG가 손실에 처하면서 보증발급 중단 위기도 커졌다. 상황이 이렇자 전문가들도 태영건설 리스크가 건설업계로 확대될 경우 HUG의 재정 부담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서진형 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경인여대 교수)는 “경기 침체로 건설사들의 사업장이 멈추게 된다면 HUG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HUG의 손실이 커지게 되면 결국 국가가 세금으로 메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현 사태가 중소건설사로 확대되면 HUG에 충분히 재정 부담이 되고 결국 국민 혈세로 메꿔야하기 때문에 혈세 낭비를 가져 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건설업계 한 관계자도 “워크아웃에 들어가면 기존 여신의 만기 연장 및 신규 자금 지원, 우대금리 적용 등 특혜가 따르고 채권단 자금에는 혈세로 운영하는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그리고 HUG 돈도 포함된다”며 “물론 건설사 줄도산을 막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필요하지만 돈을 벌어도 이자를 내기 어려운 좀비기업 위기를 위한 혈세 투입은 신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