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갑진년(甲辰年) 슬기로운 K-가족관계
2025-01-10 김철홍 자유기고가
매일일보 |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인성교육이 화두인 시대가 되었다. 최근 사회 전반에 만연되고 있는 학교 폭력, 집단따돌림, 게임 중독, 패륜적 범죄, 자살 등의 반사회적, 반인륜적 행태는 물론 사람을 해치고 상대를 괴롭혀 자살로 몰아넣은 가해자들이 조금이라도 죄책감과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등 우리 교육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스포츠 스타나 국무위원 후보자 등 지도층 인사 자녀들의 학교 폭력 문제 등으로 종종 사회적 논란거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정부는 인성 부재의 사건·사고 방지를 위해 2015년 인성교육진흥법을 발표했교 세계 최초로 인성교육을 의무화하도록 제정했지만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성 부재의 사건·사고들은 여전한 실정이다. 영국에서는 인간관계 교과서가 있는데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인간관계 교육을 12년 동안 정규교과과목으로 하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가족관계이다. 가족처럼 좁은 관계에서 잘 지내면 타인과 잘 지내기가 쉽다는 논리다. 좋은 가족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잘 싸우는 것이 중요하고 싸우지 않는 가족이 제일 힘들며 잘 싸우지 못하고 대화가 단절된 부부가 위험하고 이혼율이 높다고 한다. ‘멀리서 쏜 화살은 내 심장을 적중할 수 없어도 가까이서 쏜 화살은 내 심장에 적중한다.’는 가족친밀도를 표현하는 말이 있는데 20년간 5살 어린이부터 90대 노인까지 상담을 해온 심리상담가의 말에 의하면, 모든 사람의 고민 1순위가 압도적으로 인간관계이고 인간관계에서도 가장 어려운 게 가족관계라고 말해 그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나와 타인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운더리다. 미국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관계에 관한 노래를 배우는데 가사가 ‘나는 바운더리가 중요해요. 내 거리를 지켜주세요. 침범하지 말아 주세요. 당신이 싫은 게 아니에요. 나는 내 바운더리가 중요할 뿐이에요.’ 이처럼 심리학용어 ‘쇼펜하우어의 딜레마’에서도 고슴도치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몸에 가시가 많은 고슴도치는 서로 떨어지면 춥고 꽉 끌어 안으면 가시 때문에 피가 난다. 그래서 잠을 잘 때는 가시가 없는 부위인 머리를 맞대고 몸은 떨어뜨려 잔다. 영국의 인간관계 교과서에서도 가장 중요시 가르치는 것은 바운더리로 서로의 경계, 가족사이의 거리 그러나 예의 지키기로 내 안전 지킴은 물론 상대가 미워지는 것 또한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가족관계 중 한 예로 고부관계는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자주 만나는 밀접한 관계를 오히려 위험한 관계로 발전 가능성이 높아 적당하게 거리를 두고 가끔 봐도 반가고 환대하는 친밀한 관계가 좋다고 한다. 그런데 아들을 장가보내는 날은 아들이 완벽한 타인이 되는 날인데 아들을 너무 사랑하는 어머니들이 아들이 며느리의 남편이 아닌 내 아들이라는 심리적 탯줄을 끊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로 끊임없는 융합 갈등 관계로 이어지는 밀착된 관계를 종종 볼 수 있다. 여기서 고민, 의논, 대화할 때는 고슴도치의 지혜와 더불어 동양고전에 있는 “불가근 불가원(无可近无可遠)”이라는 고사성어와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다가갈 때는 타지 않을 정도로 멀어질 때는 얼지 않을 만큼만”이라는 명언을 통해 인간관계의 희망적 해법을 다시금 곱씹어 본다. 이제 우리도 앞에서 언급한 외국 사례처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인간다운 인간을 기르기 위한 끊임없는 교육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타인과 원만하게 소통하는 것이다.한국문화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로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나?”, “말로 안 해도 알아줘야 하는 거 아니야?”인데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강력한 소망이 있는 것이 한국인의 특징이다.
타인의 마음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말하지 않으면, 표현하지 않으면 내 속으로 낳은 자식도, 부부관계일지라도 상대의 마음을 결코 알 수 없다. 그래서 이것을 문화심리학적으로 한국문화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독특한 단어 ‘독심술’이라고 한다.